일반 강좌

생각하는 월요일 / 푸코철학 / 4주차 후기

작성자
고영주
작성일
2017-04-01 15:37
조회
266

<규문 Thinking Monday "푸코 철학“ / 4강 후기 / 고영주>


<말과 사물>이 놓인 자리


안녕하세요. 푸코 철학으로 규문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인천에 사는 30살 고영주라고 합니다. 처음 올리는 후기라 어설프지만 성실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글쓰기란 새로운 육체가 부여되는 것! -

“한 권의 책이 생산되는 것은 아주 미세한 사건이고, 그것은 손으로 조작 가능한 작은 물체일 뿐이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것은 끊임없이 반복 작용 속에 들어가, 그 주위로 훨씬 멀리 자신의 분신들이 수없이 우글거리게 된다. 매번의 독서가 이 책에 손으로 만져지지는 않으나 고유한 육체를 부여한다.”(<광기의 역사> 서문)

1966년 여름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실린 푸코에 기사 제목은 “모닝빵 같은 푸코”였다. 이 당시에만 2만부가 팔렸고, 교수자격시험 답안지에 많이 인용이 되었고, 바닷가 모래밭에서도 읽었으며, 심지어 바캉스를 떠날 때에도 가지고 갔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 책이 바로 말과 사물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인기 문학 작품도 1만부가 팔리기 어려운 시대라고 하니, 당시 2만부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보여준 것이다.

- 구조주의 -

인간이란 그 구조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주체가 아니라 법칙, 체계, 코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인간이 의미를 만든다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의미가 인간에게 도래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실존주의자가 아니고 구조주의자이다.”(프랑수아 도스)

사르트르는 ‘주체’를 믿었다. 구조주의와의 대립 형성.

<말과 사물>의 부제는 ‘인간의 고고학’이다. 고고학은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역사의 파편들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이다. <말과 사물>은 ‘인식 주체가 자기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즉 주체이면서 대상은 모순이다. 이 모순을 밝히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의 본질은 웃음에 있다. 웃음은 우리 사고의 전재가 무너질 때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예상 가능한 우리의 전제를 훔치는 것. 웃음이 바로 철학이다.

- 언표와 담론 -

인식이란 사물들의 질서를 명명하는 것. 언표는 타자기이다. 의미가 없는 것을 가지고 배열하고 배치한다. 그 속에서 파편들이 이웃하는 파편들이 있는지를 파악한다. “과거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한 것을 계열화해야 한다. 그 속에 나의 문제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야한다.”

담론은 언표의 집합. 한 시대의 담론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다. 그런데 ‘담론’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어떤 시대이든 모든 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만을 담론화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역사적 선험성’이라고 한다. 우리는 특정한 질서 속에서 경험한다. 그리고 모든 같은 방식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경험이 이루어지는 토대 이것이 <말과 사물>의 목표이다.

- 기호와 외징 -

<말과 사물>은 우리의 지식, 말, 생각 등 근대 학문체계의 중심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있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모든 관념들을 관통하는 유사성이 있었다. 예를 들어 동물 ‘사자’라는 언어 기호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호도 실제 사물과 닮았다. 지식인은 시그니처! 즉 읽어낼 수 있는 자이다. 사물의 ‘외징’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모든 기호들을 해독되어야 하는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이러한 의미들을 찾아가는 자가 바로 지식인이다.

- 세계와 인간 -

세계자체가 하나의 ‘책이다.' 세계를 읽는 것을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세계는 차이와 동일성에 따라서 질서 정연하게 놓인 지식이다.

<말과 사물>은 사물을 표에 어떻게 배치시킬 수 있느냐를 말한다. 일종에 수학과 같다.

인간은 주체가 아니다. 다만 발견자일 뿐이다.
전체 1

  • 2017-04-02 18:17
    저도 책이 매번의 독서를 통해 새로운 육체를 부여받는다는 푸코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읽기는 책을 아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새롭게 문제화하고, 또 동시에 책을 통해 그 자신 또한 생성을 겪는 일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독서는 그 자체로 실천이고 그 자체로 혁명적인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