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사오정의 관찰 일지] 건화, 느긋한 외계인

작성자
지영
작성일
2019-09-06 23:18
조회
346
이번주는 <청년, 니체를 만나다>의 저자 건화입니다. 책을 읽고 질문하고 생각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건화의 일상을 조금 살펴보았습니다. 건화는 얼핏 보면 느릿느릿 움직이는 듯 보입니다. 세미나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뜸을 뜰 때도 축구를 할 때도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약속 시간에 늦는다거나 글쓰기 마감을 어기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특유의 여유로움(?)으로 문제가 생겨도 문제가 아니게 만들어 버리곤 합니다.

연구실에서 과제나 글쓰기 마감 두 세 시간 전은 핫 타임입니다. 저를 포함해 대개는 평소보다 텐션이 높아지고 마감 시간이 임박할수록 키보드 위 손가락은 탭댄스를 추듯 분주하게 움직이지요. 그런데 건화의 경우 타닥타닥 몇 줄 빠르게 글을 쓰는가 싶다가 틈만 나면 ‘딴 짓’을 합니다. 느릿느릿 머리를 쓸어 넘기다가 한손으로 턱을 괴고 뭔가를 보는 듯 싶다가 커피 한 번 마시고 다시 머리 쓸어 넘기고 고개를 돌리거나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다가 누가 한 마디 말 하면 받아주다가 등...이 모든 행동이 느릿느릿 이뤄지다 보니 보고있는 저도 왠지 나른 하달까요. 그러다 한참을 자리를 비울 때가 있는데, 열에 아홉은 화장실을 간 것입니다. 한 번 가면 한참 동안 감감 무소식이죠. 다시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가 싶으면 또 예의 행동을 반복하다 민호나 한역이에게 가서 시시콜콜 수다도 떨고 과제 이야기도 하곤 합니다. 이러면 도대체 글은 언제 쓰는 건가 싶은데, 신기하게 그런 와중에 제일 먼저 과제나 연재 글을 완성하고 식사 준비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하곤 합니다.

글쓰기 세미나가 적은가? 싶기도 합니다. 건화는 연구실에서 절차탁마NY, 비기너스 세미나를 듣고 규문 톡톡 ‘네 멋대로 읽어라’를 연재 중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일주일에 세미나 두 개, 격주로 연재 글 한 편을 쓰니, 많은 건 아니죠. 보통 3~4개씩 강의나 세미나를 듣고 사전 세미나를 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여유로운 게 당연한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하는 일이 세미나 준비와 글쓰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식사 준비와 청소 같은 기본적인 일부터 딱히 횟수와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글쓰기 관련 코멘트까지. 연구실의 모두가 그렇지만 세미나 준비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각종 그림자 노동(?)에 투입됩니다.



이번주는 글쓰기 부장인 혜림이가 아팠던 관계로 정옥샘과 함께 혜원이의 글을 봐주기도 했고, 글이 잘 안 풀려 답보 상태인 한역의 글을 규창이와 지현샘과 함께 봐주었지요. 어제(목요일) 저녁, 무려 3시간이 넘는 동안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에 혜림이가 감탄을 연발했지요. 사실 어제는 소생 여행기 마감 날이기도 했습니다. 각자 스케쥴과 상황에 따라 매주 2~3인씩 여행기를 마무리 짓기로 한 저희는, 분량상으로도 가장 많이 썼고 마감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민호와 함께 건화에게 첫 주자의 영광(?)을 안겼습니다. 덕분에 건화는 낮동안 예의 ‘딴 짓’을 했지요.



그러다 뭔가를 간간히 썼는데요, 오후 5시 전에 “다 썼다”고 툭 한마디 하고 또 느릿느릿 프린트를 해 채운샘께 드렸습니다. 이 마감 시간은 건화가 며칠 전부터 이때까지 쓸 거라고 가볍게 예고한 시간이었지요.

이렇게만 보면 건화는 뭔가 글쓰기에 관해서는 만능인 존재인가 싶지만 팥쥐가 팥을 품고 있듯 느긋한 와중에 까칠함을 품고 있다가, 건드리면 이렇게 되곤 합니다.



물론 이 사진은 저의 집요한 사진 공세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글 쓸 때 건화도 스트레스를 받는 건 분명합니다. 작년 한창 집필중일 때만 해도 혼자 공부방 밖에서 검은 아우라를 풍기며 모두를 등지고 글을 쓰곤 했지요. 그런데 요즘은 노선이 좀 바뀌었습니다. 민호와 한역이 덕분이기도 한 듯합니다. 가령 방금도 절차탁마 과제 중 예의 행동들을 하더니 훌쩍 나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곧장 민호에게 갔지요. 저녁 8시가 넘어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무렵, 민호가 텍스트 정리 중이었는가 봅니다. 건화가 보더니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이젠 글을 쓰란 말이야~”라고 과장스럽게 재촉하곤 곧바로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야~헤헤”라고 빙구처럼 웃습니다. 그리곤 민호에게 <까라마조프와 형제들>의 등장인물 중에 누구에 대해 뭘 쓰고 싶은지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민호의 글감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민호의 글을 봐주면서 건화가 보모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그 둘의 케미도 빠질 수 없습니다.



가만 보면 건화는 주구장창 책과 글쓰기를 붙들고 있을 생각이 대놓고 없어 보입니다. 이런저런 취미활동도 느릿한 가운데 적극적으로 합니다. 장례식장에 가서 만난 친구를 통해 깨알같이 ‘메시’ 축구복을 구매하고 팔토시까지 준비하고 바쁜 와중에 틈을 놓치지 않고 축구하러 가자고 선동(?)합니다.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열이 오른 터라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호응도가 높습니다. 또 음악을 사랑합니다. 식사시간이나 청소시간에 배경음악과 노동요를 선곡해서 들려주는데 막귀인 저도 귀기울이게 되는 곡들이 많았습니다. 선민샘을 비롯해 혜림과 저도 종종 건화에게 선곡을 요청하곤 하지요.

글을 쓰든 뭘 하든 늘 잘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는데 매번 허덕이며 시간을 어기는 저와 다른 건화의 느긋한 모습에 외계인 같다는 생각을 얼핏 했습니다. 느긋하게 딴 짓을 즐겨 하지만, 최대한 꼼꼼히 책을 읽고 정성스럽게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한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론 시간에 텍스트에서 다르게 느낀 지점이나 질문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제 앞에 그저 머리만 싸매고 전전긍긍하다 금방 나가떨어지는 저에게 느긋함의 필요를 일깨워 준달까요.



(세미나 중 치명적인 척~)
전체 2

  • 2019-09-07 16:47
    딴짓을 그렇게 하는데 마감을 다 해서 외계인이라는 건가? ㅋㅋㅋㅋ 마지막 사진은 정말 치명적이다

  • 2019-09-10 12:03
    역쉬, He is so dangero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