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12.5 주역과 글쓰기 공지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12-01 19:13
조회
519
역(易)이라는 글자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돌아보면, 재밌게도 카멜레온에서 왔다는 설이 있답니다. 역의 첫 번째 특징은 변화이니, 카멜레온처럼 계속해서 바뀌는 색을 지닌 동물을 떠올리며 만든 글자라는 설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역에는 그 반대되는 '불변'의 의미도 있습니다. 카멜레온이 주변환경에 따라 계속 색이 바뀌더라도, '그렇게 변하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불변이겠죠. 한 동물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우주 역시 변하면서도 불변합니다. 이렇게 보면 사실 변/불변은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이원적 사고를 넘어가는 것이 '역(易)'의 사유라 할 수 있지요.

<주역>이 넘어가는 이원론적 사고는 구체적인 것과 전체적인 것이 있습니다. 한 괘를 볼 때, 효를 읽으면 나의 가장 구체적인 상황을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전체 세계(괘)를 이루고 있지요. 괘 하나도 여러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성괘가 세계라면 그것을 이루고 있는 소성괘는 나라고 할 수 있고, 또 그 안의 효는 나의 구체적인 상황으로 볼 수 있죠. 이렇게 보면 나와 세계는 둘이 아니고,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데,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 것이 바로 <주역>의 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역>을 읽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괘를 읽고, 효를 읽고, 상하의 관계를 읽으며 완(玩)하면 되지요. 이때 봐야 하는 것은 각 효의 위(位)와 효들의 이웃관계, 응함, 그리고 중(中)입니다. 여기서 중(中)이 특히 중요합니다. 효사를 보면 중에 머물면 정하지 않더라도 괜찮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중은 시공간에서 극단에 머무르지 않는 덕입니다. 말하자면 극단을 거부하는 힘이지요.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중(中) 자체가 변화의 국면에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도 끝도 없고, 언제나 '변화 중'인 세계를 알고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것이죠.

<주역>을 읽다보면 항상 초효와 말효에는 그 힘이 끝까지 가지 않으니 경계하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초심을 유지하자'는 말을, 처음 기세를 계속해서 끌고 가자는 말처럼 하곤 하는데 그럼 경험상 늘 작심삼일로 귀결되기 일쑤지요 ^.ㅜ <주역>은 그런 것이 나쁘다거나 의지가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처음 기세가 끝까지 유지되지 못하는 게 당연하고, 그 조건을 알아야 언제나 변화하는 국면 속에서 자만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거지요. 이렇게 보면 항상성은 루틴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기세에 따라 극단으로 머물려 하는 마음을 단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극단을 오가는 게 아니라 변화의 '사이'에 머무는 것이지요.




다음주는 에세이 초고 발표 날입니다. 어느새 7주차! ...<주역>의 괘를 이리저리 완(玩)해서 에세이 한편을 완(完) 해봅시다!


이번 시간 후기는 은정샘.

다음주 간식은 수정, 규창.


일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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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3 18:11
    4ytm2q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