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9. 10 청소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6-09-04 22:23
조회
379
 

이번 시간에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초기에 계획했던 것과 달리 11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졌는데, 딱히 순서대로 읽지 않고 건너뛰면서 읽어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간게쓰의 혼담이나 가네다의 구샤미를 향한 핍박은 순서대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는 그 자신을 등장인물 구샤미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고양이에게 동일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코 합치시키지 않습니다. 구샤미에게는 영어교사이고 위장병을 가지는 등 소세키의 여러 모습이 있기 때문에 ‘구샤미가 곧 소세키 자신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과연 그의 삶이 소세키의 삶처럼 흘러갈까?’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렇다면 소세키는 왜 자신을 구샤미와 그토록 가깝게 그렸던 걸까요? 여기에서 소세키의 글쓰기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사건과 무관한 외부의 존재로 두지 않는다는 것! 비판의 대상에서 자신을 제외하지 않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글쓰기 덕분에 소세키라는 사람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품은 인간사회를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 풀려갑니다. 고양이는 그런 자신의 이야기 방식을 사생문이라고 합니다. 작품을 보다보면 이야기를 세세하게 풀어나가지만 어떤 때는 너무 세세한 탓에 삼천포로 빠집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다가 ‘이 얘기가 왜 나오는 거지?’ 라는 생각을 적지 않게 했습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의 글쓰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서양의 근대 이전, 아직 소설이 등장하기 전인 18세기의 백과전서파입니다. 그들의 글은 철학을 얘기하기도 하고, 하나의 개념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당대에 일어난 뜨거운 사건에 몰입하면서 또 그들의 문학론을 펼치기도 합니다. 어쩐지 프랑스의 백과전서파의 글쓰기 방식이나 다카하마 교시의 사생문이 비슷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하나의 주제로 관통시키기 어려웠던 이유는 단순히 불성실한 읽기 탓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야만 글쓰기가 되지 않을까?’ 라는 얘기를 듣고 이내 정신 차렸습니다.)

소세키의 작품은 확실히 요즘 소설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가령 어떤 인물의 말이 작가의 말, 마치 작품 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통할 것 같은 절대적 선을 대변해줄 것 같지만 바로 다음 장에서 그 인물의 말을 뒤엎음으로써 놓을 수 없는 긴장을 선물합니다. 이밖에도 고양이가 말할 때 주는 ‘리얼함’이나 메이테이나 간게쓰의 말하기 방식이 주는 풍성함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런던소식으로 시작해버렸지만 소세키의 첫 작품인지라 또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은 초심으로 포맷되는 것 같은데 어쩐지 소세키의 작품을 이해하는 수준까지도 초심으로 포맷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맞추’ 사태를 반성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다음 주는 ‘풀베개’입니다. 얇지만 그 말은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기쁜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 가득 안고 공통과제를 쓰시면 됩니다. 하하하.......
전체 4

  • 2016-09-05 12:15
    어머~ 얼떨결에 청소, 동사서독, 무지까라까지 세 군데서 계속 만나게 된 규창이구낫^^* 반갑고도 반가우이~

  • 2016-09-05 13:11
    사생문이 뭔지 알고파~ 고진도 읽고, 소세키의 문학론도 읽고, 작품도 초큼은 읽었는데, 아직 모르겠어~ 스스로를 '양서 동물'이라 규정하는 소세키에게 문학[적 태도]란 대체 무엇? >.

  • 2016-09-04 22:34
    소세키 후기를 올리실 때는, 우선(!) 각 조에서 끄집어낸 토픽을 중심으로 토론 내용을 정리하시길! 그런 다음에 개인적 문제의식이나 질문, 더 생각해볼 거리 등을 적으시면 됩니다. 과제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부디 잊지 마시고요!^^

  • 2016-09-07 18:30
    '맞추'사태 ㅋㅋㅋㅋ 그래, 그건 노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