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리인 4~9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6-10-14 01:04
조회
425
4.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둔다면 악(惡)이 없을 것이다.”

苟 誠也 志者는 心之所之也 其心誠在於仁 則必無爲惡之事矣
楊氏曰 苟志於仁 未必無過擧也 然而爲惡則無矣
구(苟)는 진실됨이다. 뜻은 마음이 가는 것이다. 그 마음이 진실로 인(仁)에 있다면 반드시 악(惡)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양씨가 말하였다.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두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잘못이 일어나지 않음은 없지만 그러나 악(惡)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5. 子曰 富與貴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니
공자께서말씀하셨다. “부유함과 존귀함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마땅한 방법으로 그것을 얻는 게 아니라면 처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함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부당하게 그것을 얻었더라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

不以其道得之 謂不當得而得之 然 於富貴則不處 於貧賤則不去 君子之審富貴而安貧賤也如此
그 방법으로 얻지 않았다는 것은 마땅하지 않게 그것을 얻었음이다. 그러나 부귀에 처하지 않고 빈천(貧賤)에서 떠나지 않으니 군자가 부귀를 살피고 빈천을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이와 같다.

君子去仁 惡乎成名
군자가 인(仁)을 떠나서 어찌 이름을 이루겠는가.

言君子所以爲君子는 以其仁也니 若貪富貴而厭貧賤이면 則是自離其仁하여 而無君子之實矣니 何所成其名乎아』
이 구절은 군자가 군자가 되는 까닭은 그 인(仁)으로써이니, 만약 부귀를 탐하고 빈천을 싫어한다면 스스로 마땅한 인(仁)을 떠나 군자의 알맹이가 없게 되는 것이니 어찌 그 이름을 이루겠는가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 必於是 顚沛 必於是
군자는 밥 먹는 시간에도 인(仁)을 벗어나지 않으니 찰나에도 반드시 여기 거하고 짧은 순간조차 반드시 여기 거한다.

終食者 一飯之頃 造次 急遽苟且之時 顚沛 傾覆流離之際 蓋君子之不去乎仁 如此 不但富貴貧賤取舍之間而已而
言君子爲仁 自富貴貧賤取舍之間 以至於終食造次顚沛之頃 無時無處而不用其力也 然 取舍之分明然後 存養之功密 存養之功密 則其取舍之分 益明矣
식사를 마치는 것은 한 그릇 밥을 먹는 시간이다. 조차(造次)는 급하고 구차한 때이며 전패(顚沛)는 기울어 엎어져서 흘러가 버리는 때이다. 군자가 인(仁)을 떠나지 않음이 이와 같으니, 단지 부귀와 빈천을 취하고 버리고 간일 뿐은 아니다.
군자가 인(仁)을 하는 것은 부귀와 빈천을 취하고 버리는 사이로부터 밥을 먹는 시간과 짧은 순간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나 그 힘을 쓰지 않음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취하고 버리는 분별이 분명한 뒤에 보존하고 기르는 공부가 치밀해지니, 보존하고 기르는 공부가 치밀해지면 그 취하고 버리는 구분이 더욱 명확해진다.

6. 子曰 我未見好仁者 惡不仁者 好仁者 無以尙之 惡不仁者 其爲仁矣 不使不仁者加乎其身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인(仁)을 좋아하는 사람과 불인(不仁)을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고 불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 불인이 자신에게 가해지지 않게 한다.

夫子自言 未見好仁者 惡不仁者 蓋好仁者 眞知仁之可好 故 天下之物 無以加之 惡不仁者 眞知不仁之可惡 故 其所以爲仁者必能絶去不仁之事 而不使少有及於其身 此皆成德之事 故 難得而見之也
공자께서 스스로 말씀하셨다. ‘인을 좋아하는 자와 불인을 미워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인을 좋아하는 자는 인을 진실로 좋아할만한 것임을 아는 자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사물을 더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불인을 싫어하는 자는 불인이 미워할만한 것임을 진실로 안다. 그러므로 그 인을 함에 반드시 불인한 일을 끊어내고 제거하여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몸에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모두 덕을 이루는 일이니 그러므로 그런 사람을 얻어 보기가 어렵다.

有能一日用其力於仁矣乎 我未見力不足者
하루라도 그 힘을 인에 쓴 사람이 있는가? 나는 힘이 부족한 자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言好仁惡不仁者 雖不可見 然 或有人果能一旦奮然用力於仁 則我又未見其力有不足者 蓋爲仁在己 欲之則是 而志之所至 氣必至焉 故 仁雖難能 而至之亦易也
인을 좋아하고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을 비록 볼 수 없지만 혹시 어떤 사람이 과연 하루 아침에 분발하여 인에 힘을 쓴다고 하면 나는 또한 그 힘이 족하지 않은 자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인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 하려고 하면하고자 하면 되며 뜻이 이르는 곳에 기가 반드시 거기에 이른다. 인이 비록 능하기는 어렵지만 거기에 이르기는 쉽다.

蓋有之矣 我未之見也
아마도 그런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보지 못하였다.

蓋 疑辭 有之 謂有用力而力不足者 蓋人之氣質不同 故 疑亦容或有此昏弱之甚 欲進而不能者 但我偶未之見耳 蓋不敢終以爲易 而又歎人之莫肯用力於仁也
此章 言仁之成德 雖難其人 然 學者苟能實用其力 則亦無不可至之理 但用力而不至者 今亦未見其人焉 此夫子所以反覆而歎息之也

개(蓋)는 의문사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힘이 쓰는데도 힘이 부족한 자가 있다는 것을 이른다. 사람의 기질이 같지 않으므로 또한 혹시 이 혼약(昏弱)함이 심하여서 나아가고자 하나 능하지 못한 자가 있을 것이니, 단지 내가 우연이라도 보지 못했을 뿐이라고 의심하신 것이다. 감히 끝내 이것을 쉽게 여기지 못하고 또 사람들이 인에 힘쓰기를 즐기는 이가 없음을 탄식하신 것이다.
이 장은 인(仁)의 덕을 말씀하셨으니, 비록 그러한 사람을 만나기 어려우나 배우는 사람이 진실로 그 힘을 쓴다면 또한 이치에 이르지 못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단 힘을 쓰는데도 이르지 못하는 자를 지금 또한 그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셨으니, 이것이 공자께서 반복적으로 탄식하신 것이다.

7.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잘못은 각자 그 사람의 유(類)에 달린 것이 잘못을 보면 그 사람의 인(仁)을 알 수 있다.

黨 類也 程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類 君子 常失於厚 小人 常失於薄 君子 過於愛 小人 過於忍 尹氏曰 於此觀之 則人之仁不仁 可知矣
吳氏曰 後漢吳祐謂掾 以親故 受汚辱之名 所謂觀過知仁 是也 愚按此亦但言人雖有過 猶可卽此而知其厚薄 非謂必俟其有過而後賢否可知也
당(黨)은 유(類)이다. 정자가 말씀하셨다. ‘사람의 잘못은 그 유형마다 하는 것이니, 군자는 항상 후한 데서, 소인은 박한 데서, 군자는 아낌이 지나쳐서, 소인은 잔인함이 지나쳐서 잘못을 저지른다.
윤씨가 말했다. ‘여기에서 본다면 사람의 인하고 불인함을 알 수 있다.’
오씨가 말했다. ‘후한(後漢) 때의 오우(吳祐)가 관리 연(掾)이 가족 때문에 더러운 이름을 받았다고 하였으니, 이른바 잘못을 보면 인을 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는 또한 사람이 비록 잘못이 있더라도 잘못에 이르러 그 후함과 박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이지 반드시 잘못을 기다린 이후에야 어진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8. 子曰 朝聞道 夕死 可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道者 事物當然之理 苟得聞之 則生順死安 無復遺恨矣 朝夕 所以甚言其時之近
程子曰 言人不可以不知道 苟得聞道 雖死 可也 又曰 皆實理也 人知而信者爲難 死生亦大矣 非誠有所得 豈以夕死爲可乎
도(道)는 사물의 당연한 이치이니, 만약 그것을 알게 된다면 살아서는 순리에 따르고 죽음에는 편안하여 다시 남는 한이 없게 된다. 아침과 저녁은 그 때가 가까움을 과장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정자가 말하셨다. 사람이 도를 알지 않으면 안 되니, 진실로 도를 알 수 있다면 죽더라도 괜찮다. 또 말하셨다. 진실한 이치는 사람이 알고 믿기가 어렵다. 죽고 사는 것은 큰 문제이니 진실로 보는 바가 있지 않다면 어찌 저녁에 죽는 것이 기껍겠는가.

9. 子曰 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비가 도(道)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더불어 의논하기에 족하지 않다”

心欲求道 而以口體之奉不若人 爲恥 其識趣之卑陋甚矣 何足與議於道哉
程子曰 志於道而心役乎外면 何足與議也
마음이 도를 구하고자 하면서 입과 몸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하면 사람이 그 알고 끌리는 것이 심히 비루함을 부끄러워 하는 것만 못하다. 어찌 도(道)에 대해서 의논할 수 있겠는가.
정자가 말하셨다. ‘도(道)에 뜻을 두고 마음이 외물에 부림을 당하면 어찌 의논을 나눌 수 있겠는가.’

악(惡)과 과(過)는 의도를 담고 안 담고에 따라서 다른 말 같은데 막상 악(惡)이라는 말을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고의적인 잘못? 그런데 또 의도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라 뭐라고 콕 담아낼 말이 없는 것 같아요.
공자님 개인적인 목소리와 탄식이 돋보였던 이번 시간...인(仁)은 기력이 혼약하지 않는 한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는 탄식이 인(仁)시리즈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군자는 한시도 인을 안 떠난다고 하는데? 0ㅁ0 쉽지만 계속 의식해야 하는 인(仁)이란 무엇일까요. 리인편 이렇게 짧은데 돌덩이 같은 문장들 계속 이어집니다~ 계속 읽어보자구요~

간식은 규창.

다음 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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