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술이 14, 16~23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4-08 20:26
조회
198
170402 격몽스쿨 복습 술이 14, 16~23

*논어 ; 술이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14. 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염유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위나라 군주를 도우실까?” 자공이 말했다. “그래. 내가 여쭈어 보겠다.”

爲 猶助也 衛君 出公輒也 靈公逐其世子蒯 公薨 而國人立蒯聵之子輒 於是 晉納蒯聵而輒 拒之 時 孔子居衛 衛人以蒯聵 得罪於父 而輒嫡孫當立 故 冉有疑而問之 諾 應辭也
위(爲)는 돕는다는 말과 같다. 위나라 군주는 출공(出公) 첩(輒)이다. 영공이 세자인 괴외를 내쫓았는데 영공이 죽자 나라 사람들이 괴외의 아들인 첩을 세웠다. 이때 진나라에서 괴외를 들여보내니 첩이 그를 막았다. 이때 공자께서 위나라에 있으셨는데, 위나라 사람들이 괴외는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고 첩은 적손이므로 왕위로 세우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염유가 그것을 궁금하게 여겨 물은 것이다. 낙(諾)은 대답하는 말이다.

入 曰 伯夷叔齊 何人也 曰古之賢人也 曰怨乎 曰求仁而得仁 又何怨 出 曰 夫子不爲也
자공이 들어가 말했다. “백이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현인들이시다.” “원망함이 있었을까요?” “인을 구하였고 인을 얻었으니 어찌 원망이 있었겠는가?” 자공이 나와서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돕지 않으실 것이다.”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 其父將死 遺命立督齊 父卒 叔齊遜伯夷 伯夷曰父命也 遂逃去 叔齊亦不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其後武王伐紂 夷齊扣馬而諫 武王滅商 夷齊恥食周粟 去隱于首陽山 遂餓而死 怨 猶悔也 君子居是邦 不非其大夫 況其君乎 故 子貢不斥衛君 而以夷齊爲問 夫子告之如此 則其不爲衛君 可知矣 蓋伯夷以父命爲尊 叔齊以天倫爲重 其遜國也 皆求所以合乎天理之正而卽乎人心之安 旣而各得其志焉 則視棄其國 猶敝蹝爾 何怨之有 若衛輒之據國拒父而唯恐失之 其不可同年而語 明矣
程子曰 伯夷叔齊遜國而逃 諫伐而餓 終無怨悔 夫子以爲賢 故 知其不與輒也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 군주의 두 아들이다. 그 아버지가 죽을 때 숙제를 왕위에 세우라고 명을 남겼다.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백이에게 양보하였다. 백이가 말했다. “아버지의 명이시다.” 마침내 도망쳐 버렸다. 숙제 또한 왕위에 서지 않고 도망갔다. 나라 사람들은 그 둘째 아들을 왕위에 세웠다. 그 뒤 무왕이 주왕을 정벌하자 백이와 숙제는 말고삐를 잡고 간하였다. 무왕은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곡식을 먹기가 부끄러워 떠나서 수양산에 숨어 마침내 굶어죽었다. 원망은 후회와 같다. 군자는 그 나라에 머물 때 그 대부를 비난하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군주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자공은 위나라 군주를 곧바로 지척하지 않고 백이와 숙제를 빗대어 질문한 것이다. 공자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으니 그가 위나라 군주를 돕지 않으실 것임을 알 수 있다. 백이는 아버지께서 남긴 명을 존중하였고 숙제는 천륜을 중시하였으니 나라를 사양한 것은 모두 천리에 합하고 사람 마음의 편안함에 나아가기를 구한 것이다. 나아가서 각자 그 뜻을 거기서 얻었으니 그 나라를 버리는 것 보기를 헌신짝과 같이 한 것이다. 어찌 후회가 있었겠는가. 위나라 첩이 나라를 점거하고 아버지를 막아 오직 나라를 잃을 것을 두려워한 것은 한 자리에 놓고 말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이와 숙제는 나라를 사양하여 도망쳤고 정벌에 대해 간하다가 굶어죽었으나 끝내 후회가 없었다. 공자께서는 그들을 어질게 여기셨으니 그러므로 첩을 돕지 않으심을 알 수 있다.”

16. 子曰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몇 년이 더 있어 마침내 <주역>을 배운다면 큰 허물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劉聘君 見元城劉忠定公 自言 嘗讀他論 加作假 五十作卒 蓋加假 聲相近而誤讀 卒與五十 字相似而誤分也 愚按 此章之言 史記 作假我數年 若是 我於易則彬彬矣 加正作假 而無五十字 蓋是時 孔子年已幾七十矣 五十字誤 無疑也 學易則明乎吉凶消長之理 進退存亡之道 故 可以無大過 蓋聖人深見易道之無窮 而言此以敎人 使知其不可不學 而又不可以易而學也
유빙군이 원성의 유충정공을 만났는데 그가 말했다. ‘일찍이 다른 논어를 읽어보았는데 가(加)는 가(假)로 고쳐져 있고 오십(五十)은 졸(卒)로 되어 있었다.’ 아마도 가(加)와 가(假)는 소리가 비슷하여 잘못 읽은 것이고 졸(卒)과 오십(五十)은 글자가 서로 비슷해서 잘못 나누어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장의 말은 <사기>의 ‘나에게 몇 년을 빌려주어 이와 같이 한다면 나는 주역에 있어 빈빈(彬彬)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어, 가(加)는 바로 가(假)로 되어 있고 오십(五十)이란 글자는 없으니 이때에 공자 나이가 거의 70이었을 것이니 오십(五十)이라는 글자가 잘못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주역을 배우면 길흉(吉凶)과 소장(消長)의 이치와 진퇴(進退)와 존망(存亡)의 도에 밝을 것이다. 그러므로 큰 허물이 없을 수 있다. 성인이 역(易)의 도가 무궁함을 깊이 보시고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이로써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배우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하고 또 쉽게 배울 수 없음을 알게 하신 것이다.

17. 子所雅言 詩書執禮 皆雅言也
공자께서 평소 말씀하시는 것은 시(詩)와 서(書)와 예(禮)를 지키는 것이었으니 모두 평소에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雅 常也 執 守也 詩以理情性 書以道政事 禮以謹節文 皆切於日用之實 故 常言之 禮獨言執者 以人所執守而言 非徒誦說而已也 程子曰 孔子雅素之言 止於如此 若性與天道 則有不可得而聞者 要在默而識之也 謝氏曰 此因學易之語而類記之
아(雅)는 평상시이다. 집(執)은 지키는 것이다. <시(詩)>로써 성정을 다스리고 <서(書)>로써 정사를 말씀하시고 예(禮)로써 절문(節文)을 삼가니 모두 일상에서 실제에 적절한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이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에서만 유독 지킨다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이 잡아서 지켜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다만 외우고 말할 뿐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평상시 말씀이 이와 같음에 그칠 뿐이요, 성(性)과 천도(天道)는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가 없었으니 요점은 묵묵히 아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사씨가 말하였다. “이 장은 앞의 주역을 배운다는 말과 같은 것으로서 기록한 것이다.”

18. 葉公 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섭공이 공자에 대해 물었다. 자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葉公 楚葉縣尹沈諸梁 字子高 僭稱公也 葉公 不知孔子 必有非所問而問者 故 子路不對 抑亦以聖人之德 實有未易名言者與
섭공은 초나라 섭현의 윤(尹)인 십제량으로 자는 자고이며, 공(公)은 참칭한 것이다. 섭공이 공자를 알지 못했으니, 반드시 묻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로가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또한 성인의 덕이 실로 쉽게 이름 붙여 말할 수 없음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어째서 그의 사람됨이 분발하면 먹는 것도 잊고 즐거우면 근심을 잊어 늙음이 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未得則發憤而忘食 已得則樂之而忘憂 以是二者 俛焉日有孶孶 而不知年數之不足 但自言其好學之篤爾 然 深味之 則見其全體至極 純亦不已之妙 有非聖人不能及者 蓋凡夫子之自言 類如此 學者宜致思焉
얻지 못한 것이 있으면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고 이미 터득하였다면 즐거워서 근심을 잊는다. 이 두 가지로써 힘쓰고 날마다 부지런하면 년 수가 부족한 것도 알지 못하니 다만 배움을 좋아함이 독실함을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를 깊이 음미해보면 그 전체가 지극하여 순수함이 또한 다함이 없는 신묘함은 성인이 아니면 미칠 수 없는 것이다. 공자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 이와 같으니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생각을 다해야 한다.

19.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그것을 구한 자이다.”

生而知之者 氣質淸明 義理昭著 不待學而知也 敏 速也 謂汲汲也 尹氏曰 孔子以生知之聖 每云好學者 非惟勉人也 蓋生而可知者 義理爾 若夫禮樂名物古今事變 亦必待學而後有以驗其實也
나면서부터 아는 자는 기질이 청명하고 의리가 밝게 드러나니 배움에 기대지 않아도 안다. 민첩하다는 것은 빠른 것이다. 급급함을 일컫는다. 윤씨가 말했다. “공자께선 나면서부터 아는 성인이지만 매번 배움을 좋아한다 말씀하시는 것은 다만 사람들을 면려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나면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의리일 뿐이며 예악과 같은 사물의 이름과 고금의 일과 변화라면 또한 반드시 배움에 기댄 뒤에야 실제를 징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 子不語怪力亂神
공자께서는 괴이함과 특이한 힘과 어지러운 일과 귀신의 일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怪異 勇力 悖亂之事 非理之正 固聖人所不語 鬼神 造化之迹 雖非不正 然 非窮理之至 有未易明者 故 亦不輕以語人也 謝氏曰 聖人 語常而不語怪 語德而不語力 語治而不語亂 語人而不語神
괴이함과 용맹한 힘과 어그러지고 어지러운 일은 이치의 바름이 아니다. 진실로 성인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신 것이다. 귀신은 조화의 자취이며 비록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치를 궁구함이 지극하지 않고서는 쉽게 밝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가볍게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다. 사씨가 말했다. “성인은 항상 괴이한 일을 말하지 않았고 덕을 말씀하였으며 힘을 말씀하지 않으며 다스림을 말하고 패란의 일을 말하지 않으며 인간의 일을 말하고 귀신의 일을 말하지 않는다.”

21.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갈 때 반드시 나의 스승이 거기 있다. 그중 선함을 택하여 따르고 불선을 가려 고친다.”

三人同行 其一 我也 彼二人者一善一惡 則我從其善而改其惡焉 是二人者皆我師也 尹氏曰 見賢思齊 見不賢而內自省 則善惡皆我之師 進善 其有窮乎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하나는 나 자신이니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선하고 한 사람은 악하다고 한다면 나는 그 선을 따르고 악을 고쳐야 한다. 이것이 두 사람 모두가 나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윤씨가 말했다. “어진 사람의 생각을 보면 따라하고 어질지 않은 이를 보면 안으로 스스로 살핀다면 선악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 선에 나아감에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22. 子曰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나에게 덕을 내셨으니 환퇴가 나를 어찌하리오.”

桓魋 宋司馬向魋也 出於桓公 故로 又稱桓氏 魋欲害孔子 孔子言天旣賦我以如是之德 則桓其奈我何 言必不能違天害己
환퇴는 송나라 사마인 상퇴이다. 환공에게서 나왔으므로 또한 환씨라고도 칭한다. 퇴가 공자를 해하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이미 나에게 이와 같은 덕을 주셨으니 환퇴 그가 나를 어찌하리오?”라고 하셨다. 이는 반드시 하늘의 뜻을 어기며 자신을 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3. 子曰 二三子 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是丘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내가 무엇을 숨긴다고 여기는가? 나는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나는 행하면서 너희들과 나누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것이 나다.”

諸弟子以夫子之道高深 不可幾及 故 疑其有隱 而不知聖人作止語默無非敎也 故 夫子以此言曉之 與 猶示也 程子曰 聖人之道猶天然 門弟子親炙而冀及之然後 知其高且遠也 使誠以爲不可及 則趨向之心 不幾於怠乎 故 聖人之敎 常俯而就之如此 非獨使資質庸下者勉思企及 而才氣高邁者亦不敢쫕易而進也 呂氏曰 聖人體道無隱 與天象昭然 莫非至敎 常以示人 而人自不察
제자들은 공자께서 도가 높고 깊어서 거의 따라잡을 수 없으므로 그가 숨기는 것이 있을까 의심하였으며 성인의 행위하고 멈추는 것, 말씀하시는 것과 침묵하시는 것이 가르침 아닌 것이 없음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셔서 그것을 밝힌 것이다. 여(與)는 보여주는 것과 같다.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성인의 도는 하늘과 같아 문하의 제자들은 직접 가르침을 받고 미치기를 바란 뒤에야 그 높고 멂을 안다. 진실로 도달할 숭 ᅟᅥᆹ다고 생각했다면 태만에 도를 좇고 향하는 마음이 태만해지는 데 가깝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의 가르침은 늘 낮추어서 나아가기를 이와 같이 하신 것이다. 이는 비단 자질이 용렬하고 낮은 자로 하여금 힘쓰고 생각하여 따라가고자 하게 할 뿐 아니라 자질이 높은 자들도 또한 감히 단계를 뛰어넘어 쉽게 나아가지 않게 하신 것이다.” 여씨가 말했다. “성인은 도를 체득함에 숨기는 것이 없음이 하늘의 형상과 같이 밝으니 지극한 가르침 아님이 없고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데 사람들은 스스로 살피지 못하는 것이다.”

 

술이장이 슬슬 끝나가고 있네요. 배움의 즐거움으로 먹는 것도 잊고 나이 먹는 것도 잊으신 공자님의 모습이 돋보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 왈 "공자님 같이 가요~" 하고 우는 느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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