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5.15 반시대적 고찰 마지막시간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7-05-11 14:02
조회
237
반시대적 고찰도 이제 마지막 시간만 남겨놓고 있네요. 현정샘도 후기에서 말씀하셨지만, 이번 주에 읽은 부분에서는 니체 안에서 단어들이 변주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었죠. 생성, 부정, 교양, 학문, 본성 … 니체는 무엇 하나 고정된 의미를 지닌 단어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뜬금없지만 저는 여기서 니체가 정말 책을 악보와 같이 썼다는 말이 와 닿았습니다. 악보 안에서 하나의 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죠. 같은 음일지라도 어떤 음들 사이에 놓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멜로디를 만들고 완전히 다른 하모니를 만듭니다. 니체는 단어들과 개념들을 이리저리 변주해가며 독창적인 악보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쓰여 있는 악보를 연주할 때 우리는 어떤 정보를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주는 느낌, 독특한 힘을 전달받게 되죠. 마찬가지로 니체의 책도 우리에게 어떤 사실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 힘을 전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주 토론에서는 니체가 ‘천재’를 말하는 맥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었죠. 분명 천재에 대한 니체의 말들, 혹은 ‘다수’와 ‘소수’를 말하는 니체의 말들 자체는 전체주의나 엘리트주의로 읽힐 여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이번에 읽기로 한 부분에서 니체는 “인류는 끊임없이 노력해 위대한 인간을 낳아야 한다―어떤 다른 거도 아닌 바로 이것이 그의 임무다.” 라거나 “하나의 종이 그 경계에 도달할 때, 그리고 높은 종으로 넘어가려고 할 때 그것이 바로 그 종의 발전 목적이며, 대다수의 표본이나 그들의 안녕 또는 시간적으로 가장 나중에 나타난 종, 다시 말해 여기저기서 조건이 적합하면 성립되는 우연적이고 산만해 보이는 실존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쉽게 이해가 간다.”라는 등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죠. 니체는 보다 높은 목적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라거나 보다 훌륭한 개체를 위해서 하등한 개체들을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동안 저는 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제와 니체의 말 모두를 다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둘을 잘 타협시켜왔던 것 같습니다. ‘니체는 천재라는 말을 통해서 재능있는 소수의 개인들을 지칭하려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촉구하는 것일 거야’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제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니체는 분명히 ‘천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횔덜린, 클라이스트, 쇼펜하우어, 바그너 등등의 실존인물들까지 거론하고 있죠. 천재의 조건을 위해 봉사하라는 그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만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니체에게 ‘천재’란 무엇이었을지는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니체가 천재로 거론하고 있는 인물들은 국민적인 영웅이 아니며, 천부적인 재능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인물들도 아니죠. 니체가 주목하는 것은 대중들의 공통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나태함으로부터 빠져나온 인간들이죠. 도덕이나 여론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적인 나태’를 벗어나 ‘실존의 유일무이성’을 받아들인 자들이 니체가 말하는 천재입니다. 유일무이한 자기 자신이 된(되기를 거듭한) 자들. 이들은 ‘이상적인 인간’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인간’이라는 코드를 교란시켰다는 점에서 천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니체의 천재는 항상 반시대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러한 위대한 인간들을 낳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위대한 구원자가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을 탐구하여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국가적 이기심이나 민족우월주의에 봉사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노력을 요구하는 일일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가 이들을 위해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또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나태함에 의해 여론 뒤에 숨는 동안 우리는 그것과 대결하고 있는 천재들의 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불쾌감이 없는 자기 수치, 편협함과 위축에 대한 증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데, 이때 그는 자기비하나 자기혐오와 같은 자기 정당화를 위해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자기 수치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이 ‘불쾌감이 없는 자기 수치’가 무엇일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반시대적 고찰 3권을 6절부터 끝까지(책세상 『비극의 탄생 · 반시대적 고찰』 책 445~494) 읽어오시면 됩니다. 발제는 천미경 샘이, 간식은 미경 샘과 유주 샘이 맡아주셨습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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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11 22:05
    이제 드뎌 첫책을 마칠 날이 다가오네요... 근데 마지막 절도 여전히 어렵네요. 그나마 이런 글들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