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중용 후기 27장~33장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12-30 02:27
조회
50
후기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중용>의 마지막, 33장까지 입니다. 마지막에 시경 퍼레이드(?)는 다시 봐도 읽어내기가 까다롭네요. 그러다가 마지막 명덕(明德)을 봤을 때, 갑자기 반가운 마음이 들고, 1장을 다시 펼쳐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중용>입니다.

 

 

27

 

大哉 聖人之道

위대하도다, 성인의 도여

 

洋洋乎發育萬物 峻極于天

널리 만물을 낳고 키워 높음이 하늘에 다했다.

 

양양(羊羊)은 수평적인 이미지이고 준(峻)은 수직적인 이미지입니다.

주에는 지대(至大)함이 극하여 외부가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포괄적이고 전 우주적인 도(道)가 바로 성인의 도인 것이죠.

 

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

넉넉히 크도다, 예의는 삼백이요 올바른 언행은 삼천이라.

 

예의는 큰 조목이고, 위의는 세목을 뜻합니다.

 

待其人而後 行

그런 사람을 기다린 후 행해진다.

 

예의와 위의를 행하는 사람을 기다린 후 행해집니다. 제도보다는 인간을 믿는 유가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曰 苟不至德 至道不凝焉

그러므로 만일 지극한 덕이 아니라면 지극한 도가 모이지 않는다.

 

덕성은 가지고 태어난 적성을 이릅니다.

 

君子 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溫故而知新 敦厚以崇禮

그러므로 군자는 덕을 높이고 학문을 행하니, 넓히는 것을 다하고 정미함을 다하며 높고 밝음을 지극히 하고 중용을 택하며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며 예를 높이는 것을 돈독히 한다.

 

덕을 높이는 것은 주를 따르자면 마음을 보존하여 도체의 큰 것을 다하는 것으로, 즉 격물치지를 이릅니다.

주희는 배우는 자가 조금의 사의도 스스로를 가리지 않는다면 이미 아는 것에 푹 젖고 또 아는 것을 돈독히 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두 가지 해석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옛 것을 익히고 나서야 새것을 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옛것을 익히는 것과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을 병렬로 두는 것입니다.

 

是故 居上不驕 爲下不倍 國有道 其言 足以興 國無道 其默 足以容 詩曰 旣明且哲 以保其身 其此之謂與

그러므로 윗자리에서 고만하지 말며 아래 자리에서 배반하지 않는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그가 하는 말이 족히 일어서고 나라에 도가 없다면 그 침묵이 족히 용납된다. 시에서 이미 밝고 현명하여 그 자신을 지킨다하니 이것을 말한다.

 

21장과 연결되는 장으로, 명철보신(明哲保身)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詩)는 <대아(大雅) 증민편(烝民篇)>입니다.

 

 

28

 

子曰 愚而好自用 賤而好自專 生乎今之世 反古之道 如此者 災及其身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으면서 생각한대로 하기 좋아하고, 천하면서 자기 고집을 부리고, 지금 세상에 살아가면서 옛 도로 돌아가려고 하면 이와 같은 자는 재앙이 몸에 미친다.”

 

非天子 不議禮 不制度 不考文

천자가 아니면 예를 의논 할 수 없고 제도를 만들지 못하고 글자를 고증하지 못한다.

 

위의 천자의 세 가지 고유한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희는 자사(子思)의 말이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今天下 車同軌 書同文 行同倫

지금 천하에는 수레바퀴의 크기가 같고 글의 문자가 같고 행동의 차례가 같다.

 

륜(倫)은 주에서 ‘차서(次序)의 예’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언행의 감각을 이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雖有其位 苟無其德 不敢作禮樂焉 雖有其德 苟無其位 亦不敢作禮樂焉

비록 그 지위에 있더라도 만약 그만한 덕이 없다면 감히 예악을 짓지 못하며, 비록 그 덕이 있더라도 만약 그만한 자리에 있지 않다면 또한 감히 예악을 짓지 못한다.

 

子曰 吾說夏禮 杞不足徵也 吾學殷禮 有宋存焉 吾學周禮 今用之 吾從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라 예를 말할 수 있으나 기()나라가 충분히 증거해주지 못하며, 나는 은나라의 예를 배웠으니 송이 있어서이고, 나는 주나라의 예를 배웠는데 지금 이것을 쓰고 있으니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

 

주나라의 예를 따르겠다는 공자의 논리는 복고주의라기보다는 현실주의, 문헌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험할 수 있는 것,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을 따르겠다고 하는 것이니까요.

기(杞)나라는 하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나라, 송(宋)나라는 은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나라입니다.

 

 

29

 

王天下 有三重焉 其寡過矣乎

천하를 통치할 때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어, 아마도 허물이 적을 것이다.

 

上焉者 雖善 無徵 無徵 不信 不信 民弗從 下焉者 雖善 不尊 不尊 不信 不信 民弗從

이전 왕조의 예는 비록 훌륭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증거가 없으면 믿음이 없고 믿음이 없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 낮은 지위에 있는 자는 비록 훌륭하더라도 높지 않으니 높지 않으면 믿음이 없고 믿음이 없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

 

상언(上焉)은 이전 왕조의 예, 하언(下焉)은 덕은 갖추었지만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故 君子之道 本諸身 徵諸庶民 考諸三王而不謬 建諸天地而不悖 質諸鬼神而無疑 百世以俟聖人而不惑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자기 몸에 근거하여 여러 백성들에게 증거하며, 삼왕에 고증해 보아도 어긋남이 없으며, 천지의 도에 견주어 보아도 어긋나지 않으며, 귀신에게 질정(質正)해 보아도 의심이 없으니 백세 후 성인에게도 의혹이 없다.

 

주에 따르면 이 군자는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도는 바로 의례, 제도, 고문(考文)을 일컫습니다. 자기 몸에 근본 한다는 것은 이미 덕성을 갖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백성들에게 증거한다는 것은 자신의 덕성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백성들을 새롭게 한다(新民), 교화한다는 의미입니다. 군주만이 교화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죠.

 

質諸鬼神而無疑 知天也 百世以俟聖人而不惑 知人也

귀신에게 질정하여도 의심이 없음은 하늘을 아는 것이요, 백세 후 성인에도 의혹이 없다는 것은 사람을 아는 것이다.

 

是故 君子 動而世爲天下道 行而世爲天下法 言而世爲天下則 遠之則有望하고 近之則不厭

그러므로 군자는 언행에 대대로 천하의 도가 되는 것이니, 행함에 대대로 천하의 법이 되고 말함에 대대로 천하의 준칙이 된다. 멀리 있을 때는 우러러 보게 되고, 가까이 있을 때는 싫증나지 않는다.

 

詩曰 在彼無惡 在此無射 庶幾夙夜 以永終譽 君子未有不如此而蚤有譽於天下者

시경에 이르기를, “저곳에 있어도 미워하는 사람이 없으며 이곳에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항상 묭예를 오래 이룬다.”라고 하였다. 군자가 이렇게 하지 않고서 일찍이 천하에 명예를 가진 자가 없었다.

 

시(詩)는 〈주송(周頌) 진로편(振鷺篇)〉입니다.

이 장에서는 사(射)를 역(射)이라고 읽고, ‘싫어한다’라는 뜻입니다.

 

 

30

 

仲尼 祖述堯舜憲章文武 上律天時 下襲水土

중니는 요순을 조술하셨고, 문왕과 무왕을 본받으셨으며 위로는 천시(天時)를 따르시고, 아래로는 풍토를 따르셨다.

 

주에 따르면 조술한다는 것은 멀게는 그 도를 따른다는 뜻입니다. 본받는다는 것은 가깝게는 그 법을 지킨다는 것이고요.

수토(水土)는 그 지방의 풍토, 지형적인 이로움을 이릅니다.

 

辟如天地之無不持載 無不覆辟如四時之錯行 如日月之代明

비유하자면 하늘과 땅이 지탱하고 실어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고, 비유하자면 사계절이 번갈아 움직이는 것과 같고 해와 달이 교대로 밝은 것과 같다.

 

위대한 인간이 하는 일은 천지가 하는 일과 같습니다.

 

萬物竝育 而不相害 道竝行而不相悖 小德 川流 大德 敦化 此天地之所以爲大也

만물이 함께 길러서 서로 해치지 않고 도가 함께 행해져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작은 덕은 냇물의 흐름이요 큰 덕은 화()를 돈독히 하니 천지가 위대한 이유다.

 

하나의 근본은 만 가지로 서로 다르게 구현되지만, 결국 근본은 하나입니다. 화(化)를 돈독히 한다는 것은 자화(自花), 신민(臣民)하는 최고의 경지라고 합니다.

 

 

31

 

唯天下至聖 爲能聰明睿知 足以有臨也 寬裕溫柔 足以有容也 發强剛毅 足以有執也 齊莊中正 足以有敬也 文理密察 足以有別也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인이어야 총명(聰明)예지(叡智)가 족히 임할 수 있으니, 너그럽고 온화함이 족히 용납함이 있으며, 굳세고 강함이 족히 집중함이 있으며, 재계하고 장엄하며 올바름은 족히 공경함이 있으며, 문리(文理)가 엄밀함은 족히 분별함이 있다.

 

총명예지(聰明睿智), 관유온유(寬裕溫柔), 발강강의(發强剛毅), 재장중정(齊莊中正)은 각각 인의예지(仁義禮智)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총명예지는 나면서부터 아는 (生知) 자질이라고 주에서 풀이합니다.

 

溥博淵泉 而時出之

넓고 깊으면 때에 맞게 밖으로 드러난다.

 

溥博 如天 淵泉 如淵 見而民莫不敬 言而民莫不信 行而民莫不說

부박(溥博)은 하늘과 같고, 연천(淵泉)은 못과 같으니, 나타나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말하면 백성들이 믿지 않음이 없고, 행하면 백성들이 기뻐하지 않음이 없다.

 

是以 聲名 洋溢乎中國 施及蠻貊 舟車所至 人力所通 天之所覆 地之所載 日月所照 霜露所隊 凡有血氣者莫不尊親 故 曰配天

이 때문에 성명(聲名)이 중국에 차고 넘쳐서 만맥(蠻貊)에까지 이르러 배와 수레가 이르는 곳과 인력이 통하는 곳, 하늘이 덮어주는 곳과 땅이 실어주는 곳과 해와 달이 비추는 곳과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의 생명이 있는 것들은 존경하고 친애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하늘과 짝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구절에서는 문명-야만의 구도가 보입니다. 성인의 도란 곧 문명이 있는 중국에서 시작하여 만맥까지 넘쳐야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32

 

唯天下至誠 爲能經綸天下之大經 立天下之大本 知天地之化育 夫焉有所倚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실한 사람만이 천하의 대경(大經)을 경륜(經綸)할 수 있고, 천하의 큰 근본을 세우고 천지를 화육(化育)할 수 있으니, 어찌 따로 의지할 것이 있겠는가.

 

주에 따르면, 경륜(經綸)은 다스리는 일입니다. 천하의 대경(大經)이란 오륜(五倫)을 이르고, 큰 근본은 본성에 간직하고 있는 전체입니다. 오직 성인의 덕만이 지극히 성실하고 거짓됨이 없기 때문에 인륜에 있어서 각기 그 당연함의 실질을 다하여 모두 천하의 후세의 법이 될 만하니 이것을 경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肫肫其仁 淵淵其淵 浩浩其天

지극한 인()함이여, 깊디 깊은 그 연못이여, 드넓은 그 하늘이구나.

 

주에 따르면, 순순(肫肫)은 간곡하고 지극한 모양이고 경륜을 말합니다. 연연(淵淵)은 고요하고 깊은 모양이고, 근본을 세우는 것입니다. 호호(浩浩)는 넓고 큰 모양이며 화육(化育)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苟不固聰明聖知達天德者 其孰能知之

만일 진실로 총명하고 성스럽고 지혜로우며 하늘의 덕에 통달한 자가 아니면 그 누가 이것을 알겠는가.

 

 

33장

 

詩曰 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 故 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 君子之道 淡而不厭 簡而文 溫而理 知遠之近 知風之自 知微之顯 可與入德矣

시에 이르기를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라고 하였으니 그 화려한 무늬가 드러남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보이지 않지만 나날이 드러나고, 소인의 도는 뚜렷하지만 나날이 사라진다. 군자의 도는 담박하지만 싫지 않고 간략하지만 문채가 나고, 온화하되 이치가 있으니, 멂이 가까운데서 시작함을 알고, 바람이 일어남을 알며, 미미함이 시간이 지나 드러남을 안다면 함께 덕에 들어갈 수 있다.

 

주에 따르면 옛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고, 그 마음을 확립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고 합니다.

이 구절은 도(道)를 말하는데 묘사하는 것은 사람으로, 도(道)와 인간을 따로 보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詩云 潛雖伏矣 亦孔之昭 故 君子 內省不無惡於志 君子之所不可及者 其唯人之所不見乎

시에서 이르기를 잠겨 있어서 비록 엎드려 있지만 또한 매우 드러나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안으로 살펴 문제가 없어서 마음에 잘못이 없는 것이니, 군자의 미칠 수 있는 바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바에 있다.

 

이 장은 1장의 ‘숨은 것보다 드러남이 없고 미미한 것보다 나타남이 없다’와 관련됩니다. 군자가 미치는 바가 사람들이 보지 않는 바에 있다는 것은, 혼자 있어도 삼가는 신독(愼獨)과 연관됩니다.

 

詩云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故 君子 不動而敬 不言而信

시에서 이르기를 네가 방에 있을 때를 보건대 오히려 방귀퉁이에 부끄러움이 없도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움직이지 않아도 공경하며 말하지 않아도 믿게 한다.“

 

옥루(屋漏)는 서북쪽 방 귀퉁이로, 가장 어두운 곳을 말합니다. 우리 마음에서 소홀하기 쉬운 곳을 상징 한다 볼 수 있습니다.

 

詩曰 奏假無言 時靡有爭 是故 君子 不賞而民勸 不怒而民威於鈇鉞

시에서 이르기를 사당에 나아가서 조상신이 이를 때 말이 없어 이에 다툼이 없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군자는 상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권면하고 노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작두와 도끼보다 두려워한다.

 

가(假)는 격(格), 즉 이른다는 뜻입니다.

 

詩曰 不顯惟德 百辟其刑之 是故 君子 篤恭而天下平

시에서 이르기를 드러나지 않는 덕을 여러 제후들이 본받는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군자는 공경함을 돈독히 하여야 천하가 평안하다.

 

詩云 予懷明德 不大聲以色 子曰 聲色之於以化民 末也 詩云 德輶如毛 毛猶有倫 上天之載 無聲無臭 至矣

시에서 이르기를 나는 명덕을 품고 있으니 성과 색은 대단하다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목소리와 얼굴빛으로 백성을 교화시키려 하는 것은 말단이다. 덕이 가볍기가 터럭과 같다.”라고 하셨으니,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니 그것이 지극한 것이다.

 

<중용> 마지막 구절은 1장과 마찬가지로 명덕(明德)을 인용하며 끝납니다. 그런데 성인의 덕을 말할 때 그 덕은 불현지덕(不顯之德)입니다. 앞에서 덕성은 타고 나는 것이고 자연의 도(道)와 연관 지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결국 성인은 무위(無爲)의 다스림을 행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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