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36. 호향(互鄕)의 아이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8-18 23:59
조회
523
36. 호향(互鄕)의 아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互鄕難與言 童子見 門人惑
호향 사람과는 더불어 말하기가 어려운데 (호향의) 아이가 (공자를) 뵈니 문인들이 의혹하였다.


호향은 지방의 명칭이다. 그곳 사람들은 선(善)하지 못한 것으로 이름이 나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자가 호향 출신의 아이를 만나 사람들의 의심을 산 것이다. ‘어째서 선하지 못한 이를 가까이 하는가. 선을 말하는 공자가 나쁜 것과 어울리는가.’ 아마도 이런 의심이었지 않을까. 이에 공자는 말씀하셨다.

子曰 與其進也 不與其退也 唯何甚 人潔己以進 與其潔也 不保其往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나아감과 함께 해야지 그 물러남과 함께하지 않으니 유독 무엇을 심하게 하겠는가. 사람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나아오면, 그 깨끗함을 허여하는 것이지 그 지난날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공자가 불선(不善)한 자와 일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를 편애해서도 아니고 사사로운 이익이 있어서도 아니다. 공자는 한 사람이 배우러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 점에 주목하였지 다른 것을 보지 않았다. 그의 평판이 공자를 만나지 못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또한 공자는 나아오는 자의 옛 일을 가지고 앞 일을 예단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호향의 아이가 공자를 만날 수 있었다. 배울 기회를 그렇게 얻는 셈이다.
한 구절 더 읽어보자.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 다발의 포(脯) 이상을 가지고 나오면 나는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옛날에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에는 선물을 가지고 오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였다. 이 때 ‘한 다발의 포(脯)’(束脩)는 매우 약소한 것이다. 사실상 무엇을 가지고 오는지가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주자에 따르면 ‘예의를 갖추고 찾아오면 가르쳐 주지 않음이 없’었다. 배우러 나아오는 자에게 다른 어떤 기준을 대지 않았다. 공자 학당에는 신분, 지위, 연령 고하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모여 공부했고 이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지점이다. 공자 학당에서 배움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 배움의 문턱은 이렇게 낮다. 하지만 또한 높다. 주자의 주석 중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의 태어남에 있어서 똑같이 그 이치를 구비했다. 그러므로 성인이 사람에 대하여 선(善)에 들기를 바라지 않음이 없으나 다만 찾아와서 배울 줄 모른다면 가서 가르쳐 주는 예는 없다.


배움에 마음을 내는 일도 그 마음을 받는 것도 여기서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갖고 태어난 이치를 닦을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선(善)에 들어가는 일에 마음을 낼 수 있는가.' 이 점에서 누군가 공자 학당에 들어갈 때 그것은 또 하나의 출가(出家)가 아닐지. 자기의 사사로움을 따르는 일과의 결별하며 공(公)으로서 자기를 이해하는 일에 돌입한다. 갖고 태어난 바 누구나 공자가 말하는 선에 따라 살 수 있다. 이치를 깨치고 사사롭지 않은 차원에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이 일에 마음을 내지는 않는다. 누구나 배울 수 있지만 누구나 배움을 찾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배움의 문턱은 낮고도 높다. 호향(互鄕)의 아이에게도 또 공자 문하의 수많은 이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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