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창 세미나

7.17 왕창세미나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1-07-13 22:29
조회
205
왕부지의 주역과 프랑스와 줄리앙의 <운행과 창조>를 읽는 세미나, '왕창 세미나' 시작 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운행과 창조> 1부를 읽었습니다. 줄리앙은 왕부지의 '운행' 철학을 서양의 '창조'와 대비 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초월적인 기원을 상정하지 않는 인간의 윤리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려고 하죠. 이를 위해 줄리앙은 왕부지의 전기적 사실이나 언어표현 자체보다는 그가 기반하고 있는 유학 전통에 주목하여 '운행(과정)이라는 개념을 설명합니다.

이번 1부 내용은 1챕터인 '자연의 명징성'을 여러 번 변주하며 설명합니다. 1. 의미와 명징성의 원천인 자연은 2.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3. 감응,을 통해서만 체화할 수 있으며 4. 교대의 원리에 따르는 운동성으로 존재하며 5. 이 운동성만 있는 세계에는 개체를 특정해 창조하는 초월적 힘이 부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줄리앙은 운행사상이란 "(조물주를 원형으로 하여) 문화적으로 행위와 행위자에게 부여한 위상을 최소화하는 반면, 기능의 범주와 자연적 생서을 중시한다. 그리고 말이 지닌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위상을 거부하는 한편, 실재에 대한 극적 요소가 배제된, 근본적으로 평정한 시각을 중시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서구의 전통적 사유, 의지를 지닌 주체가 언어를 통해 명확하게 표현하고 현실화하는 방식을 완전히 빗나가버리는 것이죠. 태초에 의지를 담은 말씀 같은 것은 없고 모든 것 갈마드는 '교대'만이 존재했으며, 이 운동성은 어떤 중단도 없이 계속됩니다. <주역>에서 모든 것이 변하며 '변한다'는 사실만 불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연은 하나의 교대 '기능'으로 보았을 때, 인간의 윤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줄리앙에 따르면 현자에게는 구체적 개별성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뭔가를 위해서 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오로지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서 마치 자연이 그러하듯 존재하고 있다 말입니다. 이러한 현자의 상은 설명할 수 있는 행위로,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대해 토론이 오가기도 했죠. 현자는 영웅적인 액션, '~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다들 의견이 모였습니다. 현자는 변화에 대한 이해, 지성을 바탕으로 행동한다는 것. 다만 그 행동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운행과 창조> 2부 읽어옵니다.


토요일에 만나요//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