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11. 29 주역과 글쓰기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0-11-25 00:57
조회
335
불별자리들이 부담스럽게 오버~스터디 중인 팀주역입니다. 이번주에도 어김없이 급발진과 급정거를 오가며 다이내믹한 하루를 보냈네요. 저녁 먹고 2부, 3부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기본이고 방학세미나까지 알차게 토론하며 언제나 한 발 앞서가는 팀 주역~! 11월 29일 공지 시작합니다!

이번 시간에 배운 세 가지 지혜는 이렇습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늘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는 우물에서 항상성을 배우는 수풍정(水風井), 변혁의 때를 점치는 택화혁(澤火革), 새로운 것을 채우고 나누는 화풍정(火風鼎)괘입니다.

우선 수풍정괘부터 보겠습니다. 도시에서만 산 저는 사실 우물을 본 적이 없어서 우물에 대한 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우물을 경험하신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물이 단지 물이 고인 장소는 아니더군요. 우물은 지하수가 고이는데, 신기하게도 그 물이 넘치거나 마르지 않은 채 늘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늘 같은 높이로 차 있는 물, 이걸 인간의 덕으로 가져오면 항상성과 연관이 됩니다. 정이천 역시 우물을 항상성의 물건이라고 풀이했고 말입니다. 괘사에 따르면 우물이란 무상무득(无喪无得), 잃음도 얻음도 없이, 누가 와도 변함없는 역량을 발휘하는 물건입니다. 누가 와도 변함이 없으려면? 그 자신은 무던한 수양이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성과 함께 정괘의 축을 이루는 덕은 수치(修治)입니다. 우물은 특정한 장소에서 나오는 물이니, 어떻게든 물을 퍼내고, 망가지면 고쳐가며 써야 하는 물건이라는 것이죠. 이는 우물이란 반드시 쓰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물의 덕을 군자가 본받는다면 반드시 자신이 공부한 것을 가지고 세상에 펼쳐야 하는 것이고요. <맹자>의 구절에서도 나오죠. "오곡은 여러 품종 중에서 우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오곡도 익지 않으면 돌피나 피만 못하다. 인(仁) 역시 부단한 수양으로 숙성시킬 뿐이다.(孟子曰 五穀者,種之美者也 苟爲不熟,不如荑稗 夫仁亦在乎熟之而已矣)" 라고요(<맹자> 고자 上). 점을 쳤는데 정괘가 나온다면 덕을 더 널리 베풀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혁괘의 혁(革)은 가죽을 뜻합니다. 가죽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번 뒤집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가지고 revolution의 번역어로 쓴 것이죠. 혁괘의 위아래를 바꾸면 화택규가 됩니다. 물과 불이 각자 자기 방향으로 흩어져서 결국 만나는 것이 없고 헤어지는 괘가 되지요. 하지만 화택괘는 불이 아래에서 위로, 물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기 때문에 서로 상극하는 힘이 만나 서로를 멸식시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물과 불이 만나면 거기서 수증기라는 제3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혁괘는 서로가 멸식됨에 따라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상태가 생겨나는 것에 주목합니다. 변화란 나를 멸하는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 서로 극하는 힘이 있을 때 자기변환이 이루어진다는 것. 이를 혁괘가 말해줍니다. 흔히 혁명 하면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같은 근대의 혁명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는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빼앗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혁괘에서 혁명의 모델이라고 할 것을 찾으면 바로 자연입니다. 자연은 나뭇잎이 떨어진다고 성내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고 우쭐해하며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지 않지요. 어떤 것도 빼앗지 않으면서 자기변혁을 계속해서 이루어 나갑니다. 이는 우리에게 혁명에 대한 전혀 다른 이미지를 선사합니다. 바로 '갖고 싶은 것을 갖는 상태'로서의 혁명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감만 있는' 혁명입니다. 들뢰즈가 "혁명적으로 되는 것은 혁명적으로 되는 것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는 변화를 원한다는 것은 '변화 이후'를 상상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죠. 혁괘의 효들은 혁의 때를 맞아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움직일 때 고려해야 할 것은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와 바른 명분[貞], 그리고 사람들이 이에 따라주는가 라는 보편성의 차원입니다.

혁괘가 한번 뒤집어 놓았다면 화풍정괘는 다시 모으는 괘입니다. 정은 주로 발이 세 개나 네 개로 이루어진 커다란 솥을 가리킵니다. 화풍정의 모양을 보면 맨 아래 초육은 다리를, 2,3,4효는 몸통을, 5효는 귀, 상효는 귀의 장식을 뜻하죠. 뭔가 글자와 괘가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도...? 이 솥은 날고기를 대량으로 삶는 기구이기에 나눔의 상징입니다. 혁괘와 달리 안정과 풍요를 의미하지요. 혁괘에서 한 번 낡은 것들을 정리한 다음, 군주는 자기를 낮추어 인재를 등용합니다. 그렇게 된 왕은 눈과 귀가 총명해진다고 단사에서 말하지요. 현명한 인재를 등용했으니, 그들이 왕의 눈과 귀가 되고, 그럼 자연스래 왕이 총명해지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정괘의 효들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역할에 있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가령 구사효 같은 경우는 음식을 옮기다가 중간에 엎어버리는 대참사를 보여줍니다. 음유한 자리가 감당 못할 양이 왔기 때문에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이 효를 많이 인용해 자리에 걸맞지 않은 이를 비판하는 상소로 많이 인용되었다고 합니다. 나눔은 절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역>의 괘들은 결국 때에 따라 다른 윤리를 보여줍니다. 혁의 시대와 곤의 시대의 윤리는 다르다는 것. 어떤 괘나 '바르게 살아라'라고 말하지만 그 바름이란 괘의 운동 속에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는 <주역>을 읽으면서 확인하게 되지요. 이는 시몽동이 말하는 잠재성의 차원과도 연관됩니다. 시몽동은 개체라는 목적을 상정하고 그에 필요한 것들을 묻는 게 아니라 언제나 개체화로부터 개체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원인에서 결과로. 개체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미 결과가 결정되어 있는 상태로 시작하게 되므로 변화의 여지를 읽을 수 없지요. 하지만 우리가 보는 세계는 사실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처럼 보이는 세계입니다. 원인으로부터 출발하면 지금 우리가 보는 세계를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변화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요. 이것을 시몽동은 잠재성, 들뢰즈는 배치라 하였고, <주역>식으로 말하면 때[時]라고 하겠습니다. 채운샘은 니체의 두통을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니체는 평생 두통을 앓아왔지만, 그것을 '병'이 아니라 몸의 신호로, 사회적인 것을 거부하는 신호로 해석했다고 합니다. 그로써 두통=병=불건강이라는 고정된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건강을 발명할 수 있었다고요. 우리는 언제나 문제를 만나지만, 그 문제를 피하려고 하는 것과 그것이 과연 내가 처한 시공의 어떤 때를 가리키는지를 궁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윤리가 작동할 것입니다. 이 원인에 대한 인식을, 우리는 <주역>을 읽으며 배울 수 있는 것이겠고요.

다음시간에는 중뢰진(重雷震), 중산간( 重山艮), 풍산점( 風山漸)괘를 읽습니다.
진괘는 은남샘과 태미샘, 간괘는 규창, 정옥샘, 영주샘, 점괘는 혜원, 수정이 써 옵니다.
후기는 수정
간식도 수정입니다.

일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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