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12.6 주역과 글쓰기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20-12-02 22:58
조회
343
제법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기온이 영하를 찍기도 하고 아침저녁이면 마스크 너머로 입김이 나오기도 하는 계절이 왔네요. 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움츠리지 않는 팀-주역, 이번주에도 휘황찬란한 간식과 그것을 압도하는 열정을 보이며 주역의 세계로 출발했습니다^^
이번 시간에 배운 괘는 중뢰진(重雷震), 중산간( 重山艮), 풍산점( 風山漸)입니다. 중천건, 중지곤, 중수감, 중화리 이후 다시 보게 되는 두 괘가 중첩되는 괘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기운이 두 개나 있으니 여타 다른 괘보다 자기주장이 강할 것 같습니다. 하나씩 보도록 하죠.
일단 진(震)괘부터 보겠습니다. 진은 움직임을 뜻하는 괘입니다. 가족 중에서는 장남을 뜻하지요. 처음 진동하며 앞으로의 지각변동을 예감케 하는 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괘사를 보면 "우레가 치면 놀라고 두려워하지만 나중에는 웃고 즐거우리니" 라고 나옵니다. 진괘는 말하자면 국면전환의 때입니다. 이때 군자가 취해야 할 자세는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돌아보는 회의와 신중함입니다. 이때 '두려움'은 단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신중함의 다른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용에 따르면 군자는 경계하고 신중하고 두려워한다[戒愼恐懼]고 합니다. '戒'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경계를 말하고 '愼'은 자기 습관에 대한 회의를, '恐懼'는 일종의 우주 질서에 대한 경외심을 뜻합니다. 내가 하는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생각은 단지 되니인다고 탑재되지는 않지요. 자신이 있는 우주질서에 대한 경외감을 가질 때 인간은 오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괘의 주체는 초구입니다. 괘 전체를 통틀어 길하다고 나오는 것도 초구 하나뿐이죠. 초구효는 진괘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효이고, 특이하게도 괘사와 같습니다. 돌아보고 두려워한 끝에 웃고 즐거워한다는 내용이죠. 국면이 바뀌려고 할 때 보통은 잘 모르고 넘어가고 지금 편한 자리에 안주하려 합니다. 하지만 군자는 그럴 때일수록 두려워하고 또 회의하며 자신을 가다듬는 신독(愼獨)의 자세로 때에 임한다는 것을, 진괘는 보여줍니다.
진괘 다음으로 나오는 괘가 중산간(重山艮)입니다. 우레가 움직임을 뜻한다면 산은 멈춤을 뜻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멈추느냐? 바로 합당한 위치에서 멈춘다는 것이 간괘가 말하는 것입니다. 괘사를 보면 좀 희한합니다. "그 등에 그치면 몸을 보지 못하며, 뜰에 가면서도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나오거든요. 등? 뜰? 이게 뭔 소리일까요? 우선 등은 아직 우리 눈에 들어오기 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등에 그친다는 것은 욕심이 생기기 전에, 그것에 동하기 전에 자신을 컨트롤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욕심이 나를 포획하지 못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밖으로 나가 뜰을 거닐어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감각적 자극에 휘청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간괘에서는 때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학>에서는 공자의 말을 인용해 멈출 곳을 아는 지혜를 강조합니다.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시에서 말하길, '우는 꾀꼬리 언덕에 앉않구나'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멈춤에 멈출 곳을 아니 사람이고서 새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멈출 곳을 안다는 건 어떤 태도일까요? 뭔가 이것저것 다 알고 쌈박하게 계산하는 태도일까요? 대상전에서는 간괘의 덕을 "생각함이 그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풀이합니다. 이는 행위에 있어 생각이 앞서서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욕심이 동하기 전 상태에 계속 머무는 비결인 것이죠.
풍산점(風山漸)괘는 조금씩 나아간다는 의미의 괘입니다. <주역>에 나아가는 괘는 세 가지가 있죠. 화지진(火地進), 지풍승(地風升) 그리고 풍산점입니다. 진괘 같은 경우 지평선 위로 해가 떠오른 좋은 한 때를 가리킨다면 승괘는 솟구치며 급성장하는 것을 그립니다. 그렇다면 점괘는 어떤 괘일까요? 괘상을 보면 풍(風) 즉 나무[木]가 산 위에 있는 형상입니다. 나무가 크려면 그만큼 높은 산이 있어야 하지요. 나무는 산을 토대로 장구하게 뻗어갑니다. 바르게, 어떤 비약도 없이 말이죠. 이렇듯 점괘에서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대상전을 보면 군자가 현덕(賢德)에 거하며 풍속을 선하게 한다고 나오지요. 어진 덕은 대번에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끈기있게 몸에 체화해야 하지요. 이것을 대상전은 거(居)한다고 풀었고요. 이렇게 한다면 더디더라도 도중에 갑자기 미끄러질 염려는 없을 겁니다. 효사들은 이러한 나아감을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으로 표현했지요. 먼 곳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는 마냥 날개짓만 하지 않습니다. 쉬기도 하고 역풍을 오랫동안 한 구간에만 머물기도 하지요. 하지만 끝내 날아갑니다. 점괘의 상구효는 드물게도 길하다는 판정을 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조금씩 쌓아올렸기 때문에 높은 자리까지 가더라도 망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읽은 괘들은 대개 걸맞은 자리를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습니다(사실 모든 괘가 다 그렇습니다만^^;;). 토론시간에 이 바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무엇일까 하면서 매번 초발심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안 그러면 우리 마음은 자꾸 앞서가서 결과를 바라고 재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앞서나가는 마음이 압도하기 전에 매번의 초발심을 발휘하는 것. 연말, 슬슬 힘을 비축했다가 내년부터 쏟아내겠다는 마음이 요동치는 지금 이때 마음에 새겨야 할 괘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시간은 뇌택귀매, 뇌화풍, 화산려괘 읽고 정리해 옵니다.
간식은 은남샘.

 

일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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