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숙제방

3학기 9주차 지풍승

작성자
곤지
작성일
2021-10-02 18:36
조회
85
2021.10.03. / 규문 / 주역과 글쓰기 / 곤지

지풍승

 

지풍승괘는 괘의 모습이 상체에는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있고 하체에는 나무를 상징하는 손(巽)괘가 있다. 땅 속에서 나무가 자라는 상승의 모습이다. 그래서 상승을 뜻한다. 상승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인을 만나고 근심하지 말며 남쪽으로 가면 길하다. 이게 말이 쉽지 대인을 만나도 대인을 알아볼 눈이 없고, 부처님을 만나도 근심이요 옆에 소인배를 봐도 근심이요 혼자 있어도 근심이다. 그리고 이 근심은 우리의 힘을 얼마나 많이 뺏어가는가. 그리고 방향감각은 잃어버렸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남쪽으로 가는지 북쪽으로 가는지알지 못한다. 규문 연구실에 건화샘이 얼마 전 남쪽에 있는 명상 센타에서 열흘간 부처님을 만나 뵙고 비건 생활을 하고 있다. 몸도 많이 가벼워졌다. 가벼우면 상승을 하지 가라앉지는 않는다. 이처럼 의심과 근심 없이 행하는 것이다.

상승에는 가벼움의 느낌이 있다. 괘의 자질도 하체는 공손이고 상체는 순종이다. 초육효가 공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강중한 구이효를 따라 곤괘의 덕성인 순종과 순응을 때에 맞게하며 상승한다. 그렇다고 유순한 태도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유순한 태도만을 강조하면 나약함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으로는 강명한 자질을 가지고 겉으로는 유순한 행동을 하여서 강함이 오만함이 되지 않게 하고 유함이 나약함이 되지 않도록 경계를 준다. 또 대상전에서는 작은 것을 축적하는 것이 높고 위대한 것을 이룰 수 있는 근거라고 말하며 학업의 충실함과 도덕의 숭고함도 모두 작은 것을 축적해나감으로써 이루어진다. 욕심과 근심만 내려놓고 보면 참 쉽다. 하루에 물 한방울씩 만이라도 끌어 올리면 된다. 그러다 보면 땅 속에 있던 나무가 어느덧 자라 숲을 이루듯이 옹달샘이 되고 호수가 되고 시냇물이 되겠지. 시간이 문제이겠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면 된다.

초육효는 음유한 자질이라 스스로 올라갈 수 없다. 그래서 강중한 구이효를 믿고 함께 상승하면 크게 길하다. 초육효 입장에서는 길하지만 구이효의 입장에서는 초육효가 어떤 존재일까? 그래서 공손해야 한다. 단순히 공손만하면 안되고 뜻이 함께 통해야 한다. 그래야 올라갈 힘이 생긴다. 구이효는 강양한 자질로 존귀한 지위에 자리한 음유한 육오효를 섬기는 자이므로 마땅히 지극한 진실과 정성으로 꾸밈없이 소박한 제사를 올리듯이 해야 한다. 구삼효는 양강한 자질로 올바른 자리에 있고 손괘에 해당하여 공손하다. 또 윗사람이 모두 순종하고 호응하여 도와주는 상육효가 있어 그 사람이 나아가는 것을 의심하거나 막지 않는다. 육사효는 문왕이 기산에 있을 때 위로 천자에 순응하여 군주가 훌륭한 도를 이루도록 했고 아래로는 세상의 현자들을 정치권에 올라오도록 했으며 자신은 유순하게 이치에 순종하며 직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상승의 때에 군주의 바로 아래 자리하여 더 올라가려고 하면 흉하고 허물이 있게 된다. 상승의 때에 위와 아래는 올려주고 자신은 자기 자리를 지켜주는 자가 아래효들과 육오 군주의 대인이 아닐까?(用見大人) 상승의 때라는 것은 이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며 남을 상승시켜주는 자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면서 육오효 효사에 계단을 오르듯이 하라는 말이 있다. 계단 또한 누군가 한 계단을 받쳐 주었기 때문에 다음 계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상육효는 상승의 끝에 자리하여 나아갈 줄만 알고 멈출 줄 모르는 매우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다. 오직 소멸되어 없어질 뿐이다. 소멸되는 순간, 소멸되는 하루, 소멸되는 인생. 지금이 상승할 때인지 멈추어 하나의 계단이 되어야 할 때인지 별들에게 물어봐야 겠다. 숨어있던 두음 초육효, 육사효에서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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