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n 숙제방

입법계품 과제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5-12-21 17:41
조회
362

2015.12.21 불교n 《화엄경》(입법계품) - 수영


‘공부’


‘공부한다’거나 ‘공부하고 싶다’는 식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복잡해지곤 한다. 여러 가지 말과 표정들이 떠오른다. 선재동자의 구법기를 읽다가 ‘법을 구한다’거나 ‘공부한다’거나 하는 게 대체 뭔가 또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정말 듣기 싫었던 말 중에 하나가 ‘너는 공부하고 싶은 거냐’, ‘넌 뭘 공부하고 싶냐’하는 말들이었다. 지금은 이 말들이 딱히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는 것 같은데, 한동안은 그야말로 굴레였다. 일단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게 무엇인가부터 이해되지 않았다. 학자가 되고 싶은지를 묻는 것인가. 역사니 철학이니 어떤 분야에 대해서 정통해보고 싶은지를 묻는 것인가. 글을 써서 돈을 벌어 생활하고 싶은 것인지를 묻는 것인가. 내게 익숙한 ‘공부한다’는 것은 분명 당시 내 소망과는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공부하고 싶지’않다고 답해야 했을까. 하지만 ‘공부하고 싶지 않다’도 내 말 같지가 않았다.


연구실에서 '공부'라는 이런저런 일들을 한지 어쨌든 해를 조금 채우게 됐는데, 나로서는 시작부터 공동체 생활과 결합되어 있었다. 딱히 “나 이제부터 공부한다!”라고 잡을 수 있는 시기도, “‘공부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무엇인가도 말하기가 어렵다. 어쩌다 온 연구실은 공부하는 곳이었고, 하여 강의를 듣고 세미나를 듣고 발제를 하고 에세이를 쓰고 했지만, 그곳에서 배운 것은 또한 설거지와 빨래이기도 했다. 또 ‘공부’라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기 시작한 시기에도 내게 더 강렬했고 중요했던 것은 연구실에서의 낯선 사람들과 생활들, 그리고 그곳에서의 갈등 등이었다. 하여 ‘너는 공부를 하고 싶은가’를 누군가 물어올 때, 그에 쉽사리 답하지 못했던 것은 아무래도 ‘너는 연구실에서 더 있고 싶은 것이냐’, ‘너는 우리와 같이 뭔가를 더 하고 싶은 것이냐’의 문제가 내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지금은 어떤가.


‘너 공부하고 싶으냐’하고 묻는다면 지금은 ‘그렇다’고 나름대로 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읽고 싶은 책들도 생겼고, 세미나들도 더 알차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기서의 공부란 ‘내게 좋은 것’, ‘좋아 보이는 일들’을 잘해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책을 꼼꼼하게 읽는 것 등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 자체 신성시(;;) 될 수는 없다. 어찌됐든 숙제를 꼬박꼬박하고, 혹은 번듯하게 글을 써낸다고 해서 그것이 ‘공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며, 우리로서는 저 작업에서 돌파구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공부’ 시늉을 하는 것과 진짜 공부를 하는 것은 구분해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이런 말을 한 적 혹은 들은 적 있다. “공부는 하고 싶은데…….”, “공부는 어쨌든 계속 할 것인데…….¨ 이렇게 말하는 이는 ‘공부는 하고 싶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다’라거나 ‘공부는 하고 싶지만 이와 같은 관계에서는 아니다’ 등등을 말하곤 한다. 혹은 ‘아직은 아니다’라고도. 이 공부란 또 무엇일까. 이 사람에게 ‘공부’라는 것은 이제 그 자체 대단한 어떤 것이 되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하여 어찌됐든 “공부”라는 좋은 것은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자기가 싫은 것은 배제해버리고 하겠다는 것. 그가 구하는 것은 ‘좋은 것을 하고 있는 나’ 정도일지도 모른다.


선재동자는 가르침을 구한다. 그는 “보살행”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여러 스승들을 만난다. 선지식들은 나름대로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보살행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며 선재동자가 다른 이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선재동자는 매번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한 셈이다. “바라옵건대 거룩하신 이여, 나에게 일러 주소서. 보살은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닦으며, (...) 어떻게 보현의 행을 빨리 원만케 하나이까?”(436) 이 첫 질문은 답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그는 계속 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공부는 어떤 구하던 것이 더 이상 구해지지 않음과 함께 멈추게 되는 무엇인 것 같다. 하지만 그 말은 우리가 질문에세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 더군다나 어떤 ‘완성형’으로 답해질 수 없는 질문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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