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본색

3.23 서사본색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3-19 19:16
조회
169
3.23 서사본색 공지

 

이번 시간에는 <삼국지>를 잠시 접고 서브 텍스트를 각자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렇게 <삼국지>에 몸을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면서 읽는 관점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삼국지>를 읽으면 무조건 거기 나오는 인물에 대해서 좋고 싫고 멋있고 찌질하고 등등의 평가를 하면서 ‘수다’를 떨었는데, 서브텍스트를 읽으면서는 그렇게 인물평만 하며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라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분명 <삼국지>를 읽기는 읽는데 이것이 과연 소설인지? 아니면 역사책인지? 여기 나오는 인물을 중점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그것이 기반 한 역사적 사실이 얼마나 잘 드러났는지를 집중하며 봐야하는지, 이런 역사 서술은 과연 어떤 것인지 등등. <삼국지>만 읽으면 떠오르지 않을 생각들이 서브텍스트를 읽으면서 조금씩 떠오르네요.

이번 주에도 각자 공통과제를 하고 서로에게 <삼국지>와 연관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유주쌤은 <삼국지>가 나온 역사적 배경은 어떤 것이었는지 조사해 오셨는데요. 나관중이 살던 원(元)대는 한족(漢族)들이 관리가 되는 길이 막혔던 시대라고 합니다. 그들이 공부를 하고, 글을 익히고 온갖 교육을 받은 이유는 관리가 되기 위해서였는데 이민족 왕조가 들어서면서 출세 길이 막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한인들의 글공부는 다른 쪽으로 물꼬를 트기 시작했는데 바로 문화시장. 사실 사대부들에게 소설이나 연극 같은 것은 창작의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글을 배우는 것은 오로지 관리가 되기 위해서일 뿐. 그런데 그 재주를 써먹을 데가 없는데다 머리 위에는 이민족들이 앉아 있으니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재주가 쓰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대는 소설과 함께 연극이 부흥하는 시대였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민족 왕조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척박(?)할 거라는 저의 선입견이 깨지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삼국지>는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조건 속에서 막혀버린 물길이 전혀 다른 곳으로 흐른 결과인 것입니다.

은남쌤은 <여태후본기>와 <항우본기>를 발제 하셨어요. 둘 다 정석대로라면 <본기>에 속하지 않는 인물들인데, 사마천은 천연덕스럽게 그 두 인물을 <본기>에 넣었지요. 사마천 우주의 축을 움직이는 인물로 황제가 아닌 이 두 사람도 당당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항우의 영웅호걸적인 면모와 여태후의 잔인하고 냉정한 기상은 고조가 전란은 통일하는 것과 또 다른 맥락으로 한 시대를 여는 중요한 축이 된 것입니다. 이번에 발제에서 두 사람의 면모를 다시 읽어보았는데요, 그중 단연 여태후가 기억에 남습니다. 어휴^^;; 여태후의 사람 돼지 만드는 방법은 정말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나약하고 어설픈 인자함으로는 제왕의 자리에서 버틸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여태후, 자신의 능력만으로 충분히 중국을 통일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항우는 비록 제왕의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사마천이 보기에 그 축으로서 한 자리를 담당할 만 하다고 본 것입니다. ... 라고 발제를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니 저 멀리서 채운쌤인 듯 아닌 듯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사마천과 함께하는 역사여행>을 읽으라는 계시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런고로 다음 서브텍스트는 다케다 다이준의 텍스트입니다.

저는 <이야기, 小說, Novel>의 첫 번째 논문을 읽고 과제를 해왔는데요,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의 서사 구조를 읽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동양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서사에 대한 입장은 서양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서양인의 스탠스도 아니죠. <삼국지>를 읽으면서 별다른 저항감을 가지지 않으니까요. 서양인의 눈으로 보는 동양의 서사는 구조도 통일적이지 않고 허와 실이 확실하지 않고 모호한 텍스트입니다. 논문의 저자는 서양인들은 구슬을 어떻게 꿸지 고민하는 동안 동양인들은 어떻게든 구슬을 더 많이 모아서 꿰는 것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구슬을 선별하고 꿰는 기준은 바로 허(虛)와 실(實). 서양인들이 구슬 하나하나를 두고 이것은 허고 저것은 실이라고 나누며 어떻게 꿸지 고민하는 동안 동양인들은 그 구슬 모두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역사이며, 허와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상호간의 함축을 담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삼국지>와 같은 텍스트에는 규창이가 읽는 ‘정사’, 과장되게 두드러진 역사상의 인물들, 그리고 그 전란의 현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펼쳐지는 신선의 세계가 몽땅 한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건 어떤 이야기든 의지가 앞선 결과이기도 하고, 또 인간의 일이란 단지 한 가지 통일된 구조로 드러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또 <삼국지>가 영웅담과 역사 이야기를 한 번에 담고 있다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요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절차탁마 M에서 읽고 있는데, 거기에는 영웅들의 면면이 두드러지지 않거든요. 오히려 그 전쟁이 어떻게 준비되었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서술하는 것에 치중된, 정말 ‘전쟁사’입니다. 영웅의 이야기를 하려면 그리스 같은 경우는 <일리아스> 시대까지 내려가야 하지요. <일리아스>에는 자기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거는 뛰어난 영웅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삼국지>의 특이한 점은 ‘전쟁사’이면서 ‘영웅담’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인재를 중시하기 때문에 영웅들의 면모가 두드러지지만 그 인재들이 하는 일은 결국 세(勢)를 읽는 것, 크고 작은 국지전을 하면서 어떻게 이 난세를 통일할 것인지 읽어내고 전쟁을 수행하는 일입니다. 이런 <삼국지>는 서양의 기준으로 보면 서사시이자 역사서술이기도 한 이상한 텍스트일 것 같습니다. <일리아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삼국지>와 함께 두고 읽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음 시간은 <삼국지> 6권까지 읽어옵니다. 드디어 절반을 넘었네요.

공통과제 한 장씩 써 오시고, 과제는 당일 새벽 3시 전까지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목요일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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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

  • 2017-03-20 08:17
    삼국지를 그냥 재미삼아 읽지 않으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더군요 ㅠㅜ 아마도 가볍게 읽는 데서 그친 여태껏의 습 때문이겠죠. 재밌으면서도 점점 어려워지는 삼국지 @.@

  • 2017-03-20 14:37
    저두 동감요~ 이렇게 서브텍스트를 알게되니 삼국지가 재밌기도 하고 심층적인 책으로 다가오네요...
    저는 중국인들이 이야기를 만들때 먼저 구슬을 많이 모으는데 우주적 조화를 염두에 두고 그 구슬들을 꿴다는 내용이 인상에 남았어요... 우리끼리만 풍성해지고 있는 서사본색^^

  • 2017-03-22 19:07
    새벽3시반이라니.. 다들 어쩌고 지내길래 마감이 처절한 새벽3시란말이오. 그와중에 벌써 반을 넘겼다니 부럽고 축하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