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마이너스

[니체 마이너스] 1주차(9.21) 후기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9-09-24 13:47
조회
125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sens)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 민음사, 15쪽)


《니체와 철학》의 첫 문장입니다.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한다는 것, 다르게 말하자면 이는 철학과 진리의 공모를 해체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니체는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철학에 도입함으로써 ‘진리의 탐구’라는 철학의 이미지를 ‘가치의 창조’라는 이미지로 대체합니다. 기존의 철학이 관계 맺어온 초월적인 ‘진리’는 하나의 의미만을 인정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의 개념에 적대적입니다. 초월적 기표로서의 진리가 모든 해석과 가치평가에 선행하는 것이죠. 이때 진리란 우리의 경험적 조건을 초월한 자리에 있는 무엇입니다.


칸트는 이러한 합리주의의 독단론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진리를 우리의 주어진 시공간을 초월한 무엇, 즉 도그마로 만드는 전통적 철학에 반기를 든 것이죠. 이에 반대하며 칸트는 우리는 우리의 조건을 초월할 수 없으며 우리의 시공간을 벗어난 무언가를 인식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순수이성 비판’과 같은 제목으로 유명한 칸트의 ‘비판철학’은 이처럼 우리의 인식의 조건을 문제 삼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이성이 어떤 조건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검토하는 것.

그런데 니체는 칸트의 이러한 비판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칸트는 인식의 조건이 지닌 ‘역사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칸트는 인식의 조건, 즉 우리가 놓여 있는 시공간을 보편적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를 둘러싼 조건들이 작동하며 또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 칸트는 우리를 구속하는 인식의 조건 바깥에 있는 ‘물 자체’로 회귀하게 됩니다. 초월적 진리라는 도그마로부터 벗어났지만, 그러한 이탈로부터 ‘어떻게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낼까?’라는 실천적인 질문을 구성해내는 데에로 나아가지 않고, ‘물 자체’라는 또 다른 영토에 갇혀버린 것이죠.

니체의 가치철학은 칸트가 수행하지 못했던 ‘참된 비판’의 실현이라고 들뢰즈는 말합니다. 니체의 가치철학의 핵심은 ‘가치’가 ‘평가’에 의존한다는 관점입니다. 가치가 대상이나 사물에 내재해 있어서 우리가 인식을 통해 그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인식에 의해 대상이나 사물의 가치가 파생된다는 것. 그러나 이를 가치가 대상이 아닌 주관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들뢰즈에 따르면 가치는 (주관이 아니라) 가치가 파생하는 ‘평가의 관점’을 전제하는데, 이때 평가의 관점이란 “가치들의 미분적(微分的, différentiel) 요소, 즉 비판적인 동시에 창조적인 요소에 의해 정의”됩니다.

이 ‘미분적 요소’라는 말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요, 이는 들뢰즈가 수학 개념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곡선의 운동 속에서 한 점의 미분값은 변이해가는 추이 속에서 그 점이 갖는 방향성/기울기를 나타냅니다. 이때 점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인접한 점들과 맺고 있는 이웃관계 속에서 그 순간의 운동성으로서 존재하는 실재입니다.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관계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언제나 주어진 자리로부터 벗어나는 운동 중에 있는 힘. 이것이 가치가 파생하는 ‘미분적 요소’입니다. 즉 평가는 운동 중에 있는 관계 속에서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니체에게 인식은 어떤 보편적인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운동하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차이화하는 힘으로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분적 요소는 ‘비판적인 동시에 창조적’입니다. 주어진 자리로부터 떠나면서 전체의 운동에 변이를 가져오기 때문이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평가란 주체에 의해서 대상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평가는 생명의 작용입니다. 생명은 그 고유한 기울기와 방향성, 운동성을 갖는 점처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고유한 해석과 평가로서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유성은 부단한 마주침, 관계 속에서, 차이화하는 운동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겠죠.

이러한 관점에서 니체는 기존의 철학이 어떤 힘의 배치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감지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니체적 비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 즉 다른 평가의 창조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미 기존의 자리로부터 벗어나는 차이화하는 운동 속에 있어야 합니다. 다른 힘관계, 운동성 속에 있어야만 다른 평가가 가능한 것이고, 다르게 평가한다는 것은 곧 다른 힘관계와 운동성을 만들어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니체에게 비판이란 이행이고, 극복이고, 창조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비판과 무관한 창조도, 창조와 무관한 비판도 없다는 것.

니체와 들뢰즈의 렌즈로 볼 때, 인식이란 그 자체로 정치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우리가 어떤 역사적인 조건, 구체적인 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인식에 무관심한 요소 따윈 없습니다. 따라서 니체와 들뢰즈의 관심은 올바른 것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해 올바른 삶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식과 다른 삶의 양식을 창조함으로써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출현시키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 다음 주 과제는 이번에 읽은 부분(~38쪽)을 다시 읽으면서 각 장들을 머릿속으로 요약해보는 것입니다. 세미나는 지난주처럼 돌아가면서 요약하는 방식으로 진행 될 테니, 미리 각 장별로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정리해오시면 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많이 헤매는 느낌이 있었는데, 제 생각엔 아마 앞으로도 획기적으로 나아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문제는 들뢰즈의 말을 하나하나 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들뢰즈-니체와의 만남 속에서 우리가 놓인 자리로부터 차이화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일이니까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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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27 10:35
    오호 엄청 명료한 후기! '올바른 인식으로 올바른 삶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식과 삶의 양식을 참조함으로써 다른 세계를 출현시키기' 철학과 진리와의 공모를 해체하기 위해 또는 해체하면서(사물과 그것에 내재된 가치라는 구도에 저항하면서), 가치 이전의 평가의 차원, 창조와 비판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엮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