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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탁Q 푸코 2주차 수업후기

작성자
이정수
작성일
2017-10-22 23:55
조회
117
푸코 2주차 시간에는 역사학에 대한 폴 벤느의 글과 『감시와 처벌』의 신체형, 권력과 지식을 통해 푸코의 다양한 사고와 만났습니다. 폴 벤느의 글이나 푸코의 글 모두 50페이지 가량의 글들에 소제목이 하나도 붙지 않은 불!친절한 글이었지만 채운샘의 설명을 길잡이 삼아 반복해서 읽다보면 뭔가 감이 좀 잡히겠지요^^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

폴 벤느가 쓴 글의 ‘희박성’과 ‘실천’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푸코의 사유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성’이나 ‘정치’, ‘모성’, ‘인간’ 등의 대상 자체가 모든 역사를 초월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푸코는 각 시대의 담론, 비담론적 실천이 대상을 출현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우리는 진리란 대상과 의식의 일치를 통해 획득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실천이란 이론을 바탕으로 나오는 후속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는 앎을 선험화하는 것으로 대상을 실체화함과 동시에 인식 주체를 실체화되지요. 하지만 스피노자가 ‘사유는 사유활동’이라 하고, 니체가 ‘의식은 의식작용’이라고 하는 것처럼 앎과 진리는 그 자체가 구성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구성적이라 함은 앎이란 것이 그 앎을 구성하는 실천 또는 작용과 분리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의식작용을 통해 대상세계를 출현시키는 것 자체가 이미 실천입니다. 어떤 개념으로 어떤 계열 속에서 사건을 포착하느냐 하는 의식활동 자체가 실천인 것입니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올바른 인식이 있다는 전제하에 실천을 특권화합니다. 그러다보니 우선 민중들을 의식화하여 올바른 인식으로 이끈 다음 실천을 하려고 하지요. 푸코는 이를 지식인의 오만이라고 비판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삶 속에서 자기의식을 구성한다고 합니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앎을 구성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푸코에 따르면 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의식을 구성하듯 지식인은 연구현장에서 의식을 구성하는 것이고 그것이 각자의 실천이며 이 실천이 연대를 통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푸코는 선험적, 초월적 대상을 중심으로 하는 보편사와 총체사를 부정하고 구체성의 역사를 추구합니다. 그가 구체성의 역사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권력의 문제입니다. 계몽주의자들이 18세기를 ‘계몽의 시대’라 규정하며 자연과학의 발전에 따른 합리성의 증대와 이로 인한 인권과 휴머니즘의 확장 그리고 구체제에 대한 혁명을 말할 때, 푸코는 그 시대를 ‘고전주의 시대’로 칭하면서 구체적인 개인의 신체에 대한 권력의 통제전술이 시작되는 시대, 계몽이 예속적 주체를 생산하는 시대로 규정합니다. 푸코의 관심사는 역사적 단절, 대상을 출현시킨 당시의 담론, 비담론적 지형과 그 대상의 출현이 개인에게 가져오는 효과입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근대인이 어떤 권력의 지형 속에서 생산되었는가를 탐구함으로써 주체가 다르게 생산될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즉, 권력의 어떤 지점에서 저항의 지점을 형성함으로써 다른 주체를 생산해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푸코에 따르면 담론은 희박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시대에나 생각될 수 있는 것, 말해질 수 있는 것은 희박합니다. 우리는 말해질 수 있는 것, 생각될 수 있는 것 외에는 모르며 이것이 우리의 조건입니다. 푸코는 담론 생산의 과정을 통해 앎이 선별, 조직, 재배치되며, 권력은 금지, 분할, 배척을 통해 앎을 선별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앎을 선별하고 담론을 희박하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기준, 책의 주석 같은 것, 아카데미 제도, 저자의 권위, 담론의 질서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의 통제 등이 담론 생산을 통제하는 요소들입니다. 따라서 담론의 희박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생각이나 방법이 표면화되지 않은 다른 실천들, 다른 사유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문제의 출현 방식이 다양해집니다. 즉 언표들을 어떻게 계열화하느냐에 따라서 문제의 출현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푸코에게 역사란 역사 속에서 객관성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계열화를 통해서 문제 자체를 출현시키는 것입니다. 문제를 어떻게 출현시키는가, 어떻게 문제설정을 하는가에 따라 세계에 대한 해석, 실천지점이 다르게 드러나게 됩니다. 푸코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실존의 참을 수 없음으로부터 문제를 출현시키고 행위하며, 자기가 문제화하고 있는 부분으로부터 실천하는 존재입니다.

 

(신체형, 권력의 기술과 그 효과)

푸코는 『감시와 처벌』 1부2장에서 ‘신체형이라는 권력의 기술과 그 효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형벌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권력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권력 작동의 사령탑 같은 것을 사고하지한, 모든 형벌 제도는 특정한 권력관계의 산물로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모든 시대를 가로질러 사람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같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사람의 유죄성을 판단하는 것일까요? 모든 권력은 신체에 작동하며 ‘특별한 홈을 따라 가게 되어 있는 신체’ 즉, 예속적 주체를 생산합니다. 이것을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요. 푸코의 신체, 담론/비담론의 장치들, 권력, 전술은 들뢰즈의 욕망하는 기계, 사회기계, 욕망, 코드에 대응된다고 합니다. 들뢰즈의 욕망하는 기계에는 고장, 오작동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욕망하는 기계는 사회기계에 포섭되기도 하지만, 사회기계를 고장나게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체는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력이 우리의 신체를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신체형은 권력의 기술이며, 신체형에서는 권력이 의식(ceremony)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즉, 신체형은 권력이 작동할 때 그 시각적 효과를 신체에 각인시키는 것이지요. 고통은 엄밀하게 고안되고, 의식은 엄밀한 규칙을 통해 치밀하게 작동됩니다. 신체형은 고통을 창출해냄으로써 권력을 시각화(가시적 권력)하는 기술, 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앎’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신체형의 의식에서도 ‘진실’을 필요로 하며, 진실 생산을 위한 각종 규칙이 요구됩니다. 비공개로 진행된 증거조사와 더불어 자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고문은 필수적인 절차가 됩니다. 자백은 죄 자체가 갖는 진리의 무게를 달리하며, 죄에 대한 진실은 최종적으로 자백자에게 있게 됩니다. 즉 자백은 피고인을 진실 생산의 주체로 만들며, 피고인을 범죄자로 생산하는 진실생산의 기제입니다. 조사와 자백을 통해 진실은 완성되고 ‘징역 몇 년형에 처한다’는 선고는 피고인의 신체를 죄인의 신체로 만듭니다.

신체형은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을 통해 범죄의 진실을 가시화하지만, 힘의 압도적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권력이 일방적으로 행사, 작동되지는 않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피고인은 자신의 신체를 매개로 사법관, 재판관, 사형집행자, 국가와 일종의 ‘결투’를 계속하게 됩니다. 권력은 언제나 상호적인 것이지요. 이러한 권력관계의 역동성으로부터 끊임없는 전술 수정의 중요성이 나온다고 하겠습니다. ‘처형대에서의 소동’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줍니다. 신체형의 잔인함을 통해 군주의 과잉권력을 과시하는 의식에서 민중은 참여자로 권력을 생산하게 됩니다. 그런데 공포심을 갖도록 처형의 구경거리에 동원된 민중이 처벌의 불평등에 반대하여 처벌의 권력을 거부하거나 반항심을 폭발시키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는 권력자가 농락당하고 죄인이 영웅시되며 이로 인해 민중의 연대의식이 강화되겠지요. 그래서 18~19세기의 개혁자들은 처형이 단순히 민중을 위협하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처형제도의 폐지를 주창하게 됩니다.

 

(권력과 지식 그리고 인간)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의 목표를 “근대적 정신과 새로운 사법권력과의 상관적인 역사를 밝히는 것”이며 “과학적이고 사법적인 복합실체의 계보학”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푸코에 따르면 처벌은 단순히 억압이나 제재가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기능이며, 처벌수단은 권력의 특별한 기술이자 정치적 전술이고, 권력의 기술론은 형벌제도의 인간화라는 원칙과 인간 인식의 원칙에 위치시켜야 하며, 인간 정신의 등장과 ‘과학적인 지식’은 권력관계에 의해 신체가 취급되는 장악 수단의 변화로 초래된 결과입니다. 처벌제도가 폭력적이든 온건하든,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 신체입니다. 신체는 직접적으로 정치의 영역 속에 들어가 있어서 권력관계는 신체에 직접적 영향력을 가하게 되며, 신체는 생산하는 신체인 동시에, 복종하는 신체인 경우에만 유익한 힘이 됩니다. 권력은 소유물이 아니라 전략이며, 권력지배의 효과는 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배열, 조작, 전술, 기술, 작용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권력은 소유하고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작용되는 것입니다. 권력은 권력관계입니다. 즉 지배자와 피지배자, 주체와 대상이라는 관계항보다 관계가 먼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 속에서 어떤 특권을 찾아내기보다 항상 긴장되어 있고, 항상 활동중인 관계망, 영원히 계속되는 전투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권력과 지식은 상호 직접 관여하며, 어떤 지식의 영역과의 상관관계가 조성되지 않으면 권력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권력적 관계를 상정하거나 구성하지 않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체와 대상, 인식의 양태는 모두 권력-지식의 기본적인 관계와 그것들의 역사적 변화의 결과들입니다. 푸코는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인간, 우리들이 해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그 인간의 모습은 이미 그 자체에서 그 인간보다도 훨씬 깊은 곳에서 행해지는 복종화의 성과라고 말합니다.
전체 3

  • 2017-10-23 10:15
    크~ 수업시간 도중 끊겼던 부분부분이 채워지네요. 정수쌤 덕분에 잊고 지나갈 것들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푸코의 권력으로 보는 시점이 참 재밌던데, "항상 활동중인 관계망, 영원히 계속되는 전투". 오늘은 요기에 밑줄! 감사합니다~

  • 2017-10-24 14:32
    채운샘 강의가 살아 숨쉬고 있네요^^ 우리가 해방시키랴고 노력하는 인간이 실은 복종화의 결과물이라는, 마지막 문장이 강렬하게 남습니다.

  • 2017-10-24 23:44
    푸코는 증말증말 단어 하나까지 벅차네요.. 주체 권력 지식 이 세 항을 어찌 잘 꿰어야하는지... 수업후기도 벅차니...이를 어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