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M 숙제방

이방인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10-25 17:07
조회
20
171024 절차탁마 M 공통과제 / 이방인 / 혜원

 

사회의 감정, 뫼르소의 감각

 

이방인은 만들어진다. 제도의 틀과 특정 질서 아래에서. 이때 제도가 특권화 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과 거기에 응당 따라 나와야 할 행위이다. 슬픔, 사랑, 분노, 기쁨, 희망과 같은 말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자연스럽다’라고 표상되고 인간 행위의 핵심처럼 된 것. 가령 슬픔에 눈물을 기쁨에 웃음을 대입하는 것과 같은 일이 그것이다. 소설 첫머리에 “엄마가 죽었다”라고 쓰여 있으면 다음 문장은 슬픔을 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습(習)이 존재한다.

하지만 뫼르소는 감각적인 것을 말한다. 그는 장례식에서의 피곤함, 밀크커피나 담배에 대한 기호, 영구차를 따라갈 때 아스팔트의 갈라짐, 태양의 빛 따위를 이야기 한다. 슬픔의 표현은 섞지 않는다. 심지어 뫼르소는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고 며칠 울었으나 그것이 곧 습관의 발로라는 사실을 알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가 장례식 전후에 보인 행보를 보면 독자로 하여금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의 진술은 너무나 사회가 원하는 코드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살인에 대한 뫼르소의 진술 역시 법정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변호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뫼르소의 말이 거짓이라고 판정 받은 것이 아니라 재판에서,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뫼르소의 말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감정이다.

재판 과정에 따르면 감정은 뫼르소 안에 있다. 법정은 뫼르소에게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를 쏘았을 때 어떤 생각이었는지 (당황스러움이었는지 계획한 일을 마무리하려는 단호함이었는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후회하는지, 반항심이 드는지, 아니면 만족하는지) 묻는다. 우리는 감정이 인간을 설명하는 특권적 위치에 있는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재판은 끈질기게 그의 ‘진심’과 ‘영혼’에 관계하려고 한다. 거기에는 한순간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감각’이나 언젠가 썩어 없어질 ‘신체’보다는 더 우월하다는 통념이 있다.

뫼르소도 그는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이따금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통념을 작동시킨다. 상사에게 휴가를 낼 때 눈치를 보거나 반대급부로 반발심이 든다든가, 어머니의 관을 두 번 열지 말라고 할 때, 어머니의 관 옆에서 담배를 피려고 할 때 그는 무심코 하는 것 같으면서도 문득문득 사회적 통념에 대한 눈치를 보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될 이유는 없기에’ 하려던 일을 계속 한다. 실제로 그가 법을 어기지만 않았더라면 1부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뫼르소는 법을 어겼고 법정에서 영혼까지 파헤쳐져서 이 사회에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분류된다. 법정은 불운한 사건 하나에 대한 하나의 판결을 내리는 곳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행위를 하기까지의 역사를 만드는 곳이다. 사형을 언도받은 뫼르소는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전개해나가고 남에게 토로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 생각이란 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 ‘생각해보니’ 만들어지게 되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슬펐다든가, 그날따라 분노가 일고 참을 수 없었다든가, 그런 게 아니다. 뫼르소는 또 다시 감각을 떠올린다. 뫼르소는 사형집행을 구경하고 집에 와서 토했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꼈던 ‘역겨움’, 자신도 그런 경우 집에서 토할 것이라는 상상. 이런 것들은 사형을 목도하고 느끼는 혼란, 분노, 슬픔, 통쾌함 같은 감정에 앞선, 무심(無心)한 신체적인 반응이다. 인간은 제도에 의해 살해당할 때조차도 그 무심한 자연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사형을 언도받은 순간 ‘부드러운’ ‘배려’를 받았던 뫼르소는 자신의 사형장을 생각하며 구경하는 사람들이 차라리 ‘분노의 함성’을 질러주기를 원한다. 배려는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시다. 그런 것을 배심원단과 간수는 자신들이 잘라낸 사람에게 관습적으로 행한 것이다. 그러느니 뫼르소는 차라리 자신들이 잘라낸 사람을 거절하는 감각을 사형수로 하여금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분노의 함성’을 원한 것이다. 무심하여 습(習) 없이 존재하는 자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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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27 14:35
    법정이란 하나의 '인과', 행위의 역사를 구축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증오'도 역사적 감정은 아닐까요? 직접적으로 비교되어야 할 것은 증오와 역사의 관계입니다.
    마지막에 '분노의 함성'이 가진 역할, 의미가 더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