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숙제방

고양이 다시

작성자
이응
작성일
2017-03-06 22:10
조회
144
17.03.06 / 고양이 / 이응


인간의 내부자, 고양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묘한 존재다. 뭇 고양이들처럼 쥐를 잡거나 번식하는데 에너지를 쓰는 일따위는 하지 않는다. 대신 이 고양이가 하는 일은 주인이나 주인집에 드나드는 태평일민들을 관찰하며 자기 견해를 풀어놓는 것이다.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글자를 읽으며 게다가 논평도 하는, 식견을 갖춘 이 고양이는 스스로를 ‘인간 세계의 일원’이라고 생각할만큼 정신세계에 있어선 고양이보다 인간에 가까운 존재다.



때로는 나도 인간 세계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들 때조차 있을 만큼 진화한 것은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감히 동족을 경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정이 비슷한 것에서 일신의 편안함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바, 이를 변심이라느니 경박하다느니 배신이라고 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 (114)


그래서인가 소설 초반에 등장했던 고양이의 친구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인력거꾼네 검둥이는 절름발이가 된 이후로 영향력을 상실하고, 이현금 선생네 얼룩이는 급작스레 병사하여 고양이의 세계는 대폭 줄어든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인간, 그 중에서도 메이지 시대의 태평일민이라고 할만한 고등유민들이다. 고등유민들이 지적 놀음을 하는 자리 한 켠에는 늘 고양이가 함께 한다. 고등유민들의 담화를 들으며 그들 못지 않게 고양이 또한 독자를 향해 논평하고 견해를 밝힌다. 고양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식견이나 지식 수준에 있어서 고등유민들과 자웅을 겨루어도 결코 밀리지 않을 정도이다. 실상 이때의 고양이는 고등유민의 일원이라는 생각 마저 들게 할 정도이다.

고양이가 인간으로 급진전될 때 고양이 위에 오버랩되는 것은 구샤미의 모습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주인은 고양이에게 숨기는게 없다. 일기는 주인이 쓰는거고, 편지는 주인에게 오는거지만 주인과 고양이는 동시에 편지를 읽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2장 초반부에는 주인에게 온 것인지 고양이에게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엽서가 몇 장 날아드는데, 고양이는 주인의 무릎 위에 앉아서 주인과 동시에 엽서를 읽는다. 고양이는 주인에게 온 엽서나 편지, 일기를 읽을 뿐 아니라 주인의 마음을 읽는 존재다. 여기에서 고양이는 주인의 내부자로 존재한다.



내부이면서 외부인 존재

그러나 동시에 고양이는 인간으로부터 거리를 갖는 존재이기도 하다. 고양이는 태평일민들의 만담을 들을 순 있지만 같이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구샤미의 일기를 읽을 수는 있지만 구샤미의 심리에 동화되는 일은 없다. 인간의 이해관계와는 다른 차원에서 고양이는 이들의 말과 태도, 옷차림 등을 예의 주시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어떤 부분을 파악하고 까발린다. 실로 고양이가 하는 대부분의 논평은 인간과 거리를 갖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즉 고양이는 인간계 속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인간계의 외부에 있는 존재이다.

주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인이 일기를 통해 자신을 미적으로 표상하든, 자기 폄하의 인식을 갖든, 거기에는 어느정도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또 하나의 내가 있다. 즉 일기를 쓰는 내가 있다면, 나의 외부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일기를 읽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여기에서 고양이는 ‘내 안의 타자’라고 할 수 있다. 주인의 내부자로서 일기를 읽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인 밖에서 그것을 주시하는 존재.

구샤미의 외부자로서 고양이는 구샤미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고양이는 구샤미 집과 가네다 집을 들락거리며 다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하고, 구샤미에게 속하기도 하며, 구샤미 안과 밖을 자유롭게 오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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