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절차탁마 Q 9월 6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9-01 16:39
조회
140
3부가 끝났네요. 1, 2부에서 했던 얘기가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더 어마어마한 얘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얘기에 앞서서 잠시 옆길로 빠져보자면, 뭐랄까, 니체 엄청 멋있네요. ㅋㅋㅋㅋ 왜 멋있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잘 느낌이 안 옵니다만, 어떤 뜨거움(?) 같은 게 느껴집니다. 글자란 게 이렇게 뜨거울 수 있는 것인지 이번에 처음 느껴봅니다. 그걸 이번 에세이 때 구체적으로 말해보고 싶네요. 항상 느껴지는 뭔가를 말하고 싶지만 표현이 안 되는 이 답답함! 돌파해보겠습니다!

3부 초반부에서는 〈방랑자(=나그네)〉, 〈곡두와 수수께끼에 대하여〉,〈왜소하게 만드는 덕에 대하여〉 등이 중심내용이었다면, 후반부에서는 〈중력의 정령에 대하여〉, 〈낡은 서판(書板)들과 새로운 서판들에 대하여〉,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가 중심이었습니다. 특히 〈낡은 서판(書板)들과 새로운 서판들에 대하여〉는 분량이 보여주듯 다양한 이야기를 종합·정리한 느낌이었습니다.(낭독할 때 정수쌤 조에서 센스 있게 부분을 딱 짚어주셔서 다행입니다. 안 그러고 다 읽었으면 30분 더 길어질 뻔. ^_^;;)

또다른 위험, 나의 또다른 연민은 이것이니, 생각이 할아버지에까지밖에 미치지 않는 천민 출신에게는 시간이 할아버지와 더불어 멎는다는 것이다.” - 낡은 서판(書板)들과 새로운 서판들에 대하여11번째

 

우리는 아무리 긴 시간을 상상해도 겨우 자신의 노후 이상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뜨끔하네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 대해 걱정한다면 항상 늙었을 때였습니다. ‘늙으면 외롭고 쓸쓸하려나?’, ‘그때도 주위에 사람들이 있을까?’, ‘늙으면 뭐해먹고 살지?’ 등등. 하지만 니체는 이런 생각밖에 못하는 저를 ‘천민’이라고 말합니다. ㅠㅜ 천민의 삶은 나귀의 긍정과 연결되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나귀는 자신이 겪은 모든 것에 긍정합니다. 니체는 그때 나귀의 긍정을 “I-a”라고 하는 울음소리를 빌려서 표현합니다. 채운쌤은 나귀의 이러한 긍정을 자신이 겪은 경험 속에서 인과를 재구성하는 것, 즉 생에 대한 통찰 없이 이 순간을 그냥 넘겨버리는 자기 연민이라고 얘기하셨습니다. 우린 분명 철인, 현자, 위버멘쉬가 아닌 탓에 모든 것을 ‘사랑≒경멸’로 자기가 부딪힌 국면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가끔씩 나귀의 긍정으로 상황을 모면하죠. 이런 나귀의 긍정을 ‘자기연민’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정신승리 같은데, 이렇게 문제를 정면 돌파하지 않고 피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분명 유용할 겁니다. 하지만 자기연민을 통한 극복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귀의 긍정은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그런 삶은 당장 자신에게 너무 무겁게만 느껴지죠.

특히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억센, 짐을 무던히도 지는 사람은 낯선 무거운 말과 가치를 너무나도 많이 짊어진다. 그래서 삶이 황량한 사막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 중력의 정령에 대하여

나귀는 자신이 겪은 인생을 소화하지 못하고, 마치 짊을 짊어지듯 그것에 무겁게 짓눌려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한테 삶은 “황량한 사막”이겠죠. 그러나 당장 내 괴로움을 어떻게든 덜어내고 싶다, 이 순간을 극복하고 싶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때 필요한 건 탁!하고 치고 나가는 철학적 사유입니다. 채운쌤은 일이관지(一以貫之)란 표현을 써주셨고, 그 말을 들으니 저는 《대학(大學)》의 활연관통(豁然貫通)이란 표현이 생각났습니다.

활연관통(豁然貫通)이라! 언제 들어도 속이 펑 뚫리는 말이지요. ‘통할 활’()인데 활연은 막힘없이 시원하게 뚫리는 모양이랍니다. ‘관통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로 꿰뚫는 것이지요. 활연히 마음이 열리면서 깨달음이 확 와서 천지 사물의 이치에 관통하게 된다는 건데, ‘’()이지요. ‘致知입니다.” - (우응순, 친절한 강의 대학107)

우쌤 표현을 잠깐 빌리면, 공부하다보면 ‘뚜껑’이 열리는 순간이 온다고 합니다. 뚜껑이 열린다는 건 세상을 이전과 아예 다르게 감각하는 것이겠죠. 우쌤은 왕필과 공자에게 이런 표현을 쓰셨는데, 아마 니체나 차라투스트라도 ‘뚜껑이 열린 사람’일 겁니다. 뚜껑을 얘기하는 것조차 저에게는 아직 머나먼 길이지만, 그래도 뚜껑을 들썩거리게 만들 김을 조금씩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공부하면서 혼자 ‘이건가?’ 하고 느낄 때가 있는데, 문제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해결이 안 되도 좀 시원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쾌감 같은 건데, 아마 이게 뚜껑을 여는 길이 아닌가 싶네요.(아님 말고요.......) 일단 주희는 이런 저라도 공부를 꾸준히, 계속하다보면 ‘활연관통’의 순간을 맛볼 수 있다고 하니, 힘내봅시다!

여인들, 더없이 섬세한 자들은 이 사실을 안다. 약간 살찐 몸매와 약간 마른 몸매, , 이 약간이란 것에 얼마나 많은 숙명이 깃들어 있는가!” - 중력의 정령에 대하여

저는 이 부분을 그냥 그런갑다 하고 지나쳤는데, 채운쌤 설명을 들어보니 아주 주옥같은 구절이었습니다. 니체가 말한 그대로, 여자들이야말로 더없이 섬세한 사람들이죠. ㅋ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앞머리를 자르고 매니큐어 칠한 게 아주 큰 변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죠. 그 사람들에게는 ‘약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약간’이 아닐 겁니다. 채운쌤은 이 ‘약간’을 카프카와 연결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카프카는 삶이 ‘사방이 벽으로 막힌 것’처럼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 카프카에게 필요했던 건 ‘약간’의 자유, ‘약간’의 공기와 같이 완전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약간’이었던 거죠. 채운쌤은 이 ‘약간’을 공부하는 태도와 비유해주셨습니다. 흔히 화두를 들고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고 말합니다. 당장 한 걸음 내딛었을 때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한 발이 있어야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 한 발이 ‘약간’인 거죠. 일단은 공부를 항상 백척간두(百尺竿頭),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해야겠습니다. ^^;;

https://youtu.be/4PN5JJDh78I

이건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입니다. 5분짜리 영상이니까 관심 있으시면 한 번 보세요. 감동적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4부의 〈환영인사〉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슬슬 에세이가 임박하고 있군요. ㅋㅋㅋㅋ.... 언제 이렇게 다가왔을까요..... 채운쌤이 주제를 ‘영원회귀’, ‘도덕’, ‘선·악’, ‘힘의지’, ‘앎(학문, 배움)’으로 좁혀주셨습니다. 지금부터 조금씩 생각해야 에세이를 덜 당황하면서 쓸 것 같네요. 모두 파이팅입니다.
이번 주 후기와 다음 주 간식은 봉선쌤과 영옥쌤입니다. 근데 영옥쌤은 벌써 후기를 쓰셨네요. 댓글 달러 가야겠어요~ 다음 주에 봬요!
전체 2

  • 2017-09-01 16:58
    댓글 달러 달려갔나요? 우하하하. 제가 벌써 달았지요. '약간'. 네 정말 인상깊은 설명이었어요. 공부하면서 점점 섬세해지는 것 같아요.

  • 2017-09-04 20:18
    pale blue dot~ 정말 수많은 행성 중 하나일뿐 그 어떤 차이도 없는 점! 아주 오랫만에 거대한 여행을 한 듯이요~ 태양계를 넘어 은하수를 넘어~ 너머 너머 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