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숙제방

소돔 120일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5-12-17 09:19
조회
594
151217 / 문학세미나 공통과제 / 소돔 120일 / 혜원

 

"자연은 우리를 부추겨 인간이 죄악이라고 떠들어대는 그런 것에 대해 지나칠 만큼 호의를 갖도록 하지요."

 

소돔 120일의 내용은 사실 간명하다. 1. 4명의 친구들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추잡한 짓거리를 하기 위해 세상과 단절된 환경을 구축한다. 2. 저희들끼리 룰을 정해 성실히 수행한다. 물론 간혹가다 탈선은 있지만 그것은 벌금으로 탕감한다. 그 외엔 없다. 친구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각각 즐기다가 만찬과 연회를 끝으로 다시 잠자리에 들러 간다. 상세묘사만 없으면 무슨 휴가 온 사람들의 조금은 방탕한 이야기^^ 같다.  처음의 역함도 책장을 좀 넘시다보면 이날 이맘때쯤 뭔가를 하겠지 하고 넘어가게 된다.

거의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시작한 독서는 어느새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서사에 맞춰 기계적인 것이 되었고 그건 등장인물의 백과사전 같은 각종 행위들도 그렇게 된다.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세세한것에서 시작해 점점 단순해진다. 처음 30일간의 이야기가 책의 절반을 잡아먹을 만큼 막대한 분량의 이야기꾼의 서사는 2부에 들어서서 급감한다. 처음 이야기가 시작되자 네 명의 친구들이 얼마나 사사건건 자세한 내용을 더 말하라고 닥달했던지 생각해보면 넘버를 붙인 2부의 이야기는 작가가 쓰다 지쳤나 싶을 정도로 단순명료한 명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마치 네 명의 친구들이 이야기 속에 빨려들어간 양 그들이 보여주는 고어한 이미지들을 말린 고깃덩이 보듯 건조하게 볼 수 있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 책에서 간간히 보여주는 그들의 자연에 대한 의론이다. 이 악덕을 행하는 네 친구의 편은 다름아닌 자연이다. 그 지속적이고 기계적인, 그리고 점점 심화되는 악덕은 자연의 모습과 다름아미다. 인간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것. 종교나 동정심, 은혜 따위는 분노를 부르고 쾌락을 억누를 따름이다. 자연은 쾌락의 편이다. 이것은 네 친구들이 유별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자연을 거스르는 혼돈이기 때문도 아니다. 사드는 그런 자연을 일관되게, 체계적으로 그 악덕이 이루어짐을 마치 백과사전처럼 보여준다. 나름 소돔 120일을 정의해보자면 사드가 쓴 <악덕경> 같은 거 아닐까? 나선형으로 갈마드는 악덕의 행진에 나는 마치 빨려들듯이, 그러나 그 반복에 지루함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다. 일일이 전율하며 감동하고 혐오하고 혹은 공감하기에 자연은 그런 것에 관심도 없다는듯 그 다음, 그 다음 악덕을 계속해서 생성할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재밌는 점은 작가가 이들에게 아주 무감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드는 가끔 희생자들의 가련한 운명에 대해 개탄한다. 분명 처음에는 그럴만한 여유도 보여준다. 가엾은 희생자들의 운명, 그들의 탄원, 분노. 그리고 포식자들의 혼란스럽지만 합리적인 '취향'이 반영된 자기주장들. 하지만 이마저도 천천히 목소리를 지워간다. 미덕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용서를 구하는 희생자의 목소리부터 시작해서 포식자, 이야기꾼들의 목소리까지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버석버석한 명단과 숫자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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