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즐겁고도 뿌듯한 에세이 발표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0-12-25 16:09
조회
244
올해도 스피노자를 찐하게 만났습니다! 이번에 정수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느낀 건데, 그동안 스피노자주의자의 텍스트를 참 많이 읽었더군요. 마슈레, 모로, 마트롱, 네그리, 들뢰즈, 발리바르. 스피노자를 어떤 문제의식으로 읽느냐에 따라 주목하는 지점도 다르고, 해석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아직 철학자들 각각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정리하려면 더 많이 공부해야겠지만, 한 사람의 철학을 이렇게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한 경험은 그 자체로 저에게 훈련이 됐습니다. 이제는 그냥 ‘읽었다’가 아니라 저의 문제의식으로 스피노자를 정리할 수 있어야겠죠. 내년에 그런 작업을 하게 되니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되네요. ^^;;

신기하게도 에세이 발표는 에세이 내용이나 코멘트보다 분위기가 더 많이 남았습니다. 사실 에세이 후기로 이런 얘기를 몇 번 썼지만, 여전히 신기합니다. 그날 에세이 내용에 대한 세부사항은 각자의 몫으로 돌리고 ㅎㅎ, 간단하게 그날의 분위기를 제멋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에세이 발표는 그동안의 공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인 것 같습니다. 텍스트를 대충 읽고, 때우는 식으로 공통과제를 써왔을 때, 에세이 발표는 어떻게든 무사히 넘기기 위한 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어떻게든 문제의식을 벼리고, 녹여내는 과정으로 공부했을 때는, 에세이 발표가 나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심화시키는 즐거운 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스피노자 팀 마무리 에세이 발표는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단순히 개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동안의 공부를 공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쁨이 느껴지는 일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밀어붙인 글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세이 발표가 진행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진솔한 에세이를 보면 기쁨이 느껴지는 것일까?” 스피노자는 ‘자신의 역량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느껴진다(E3:53)’고 얘기한 적 있었죠. 우리와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의 분리가 역량의 감소라면, 이 정리는 그러한 분리를 교정하는 역량의 증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교정하는 작업 또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글을 보면서 저에게 뭔가 고양되는 느낌이 일어났던 것은, 누군가의 역량이 증대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도 역량이 증대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특히 정옥쌤과 경숙쌤이 이번 에세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정옥쌤은 어떻게든 이번 에세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마무리 지으실 수 있었고, 경숙쌤은 코멘트를 최대한 수용하시면서 글을 완성시키셨죠. 경숙쌤 글 같은 경우에는, 글을 쓰시는 과정에서 점점 억울함 같은 정서가 다른 정서로 제어되는 것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이 글을 완성하시는 데에 제가 한 것은 함께 코멘트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함께 겪었기 때문인지, 글 내용과 무관하게 두 분의 글을 들으면서 저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진솔한 에세이가 역량의 증대를 가능케 하는 것은 그것을 듣는 이들에게도 여러 생각들을 촉발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제 에세이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함께 생활하는 원동력은 공부만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도 포함됩니다. 정수쌤은 회사에서 업무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분위기 메이커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듯이, 공동체 안에서도 그런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조언해주셨죠. 사실 당일에는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분위기를 잘 만든다는 게 무엇인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희는 공부 공동체이기 때문에 ‘공부’로 만나지만 동시에 함께 밥을 먹으며 함께 하루를 보내죠. 함께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함께 공부할 수 있고, 함께 공부하기 때문에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공부 공동체에서 공부란 단지 책을 읽고, 글 쓰는 것만이 아닐 텐데 이것을 간과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선생님들 모두가 다 똑같이 쌈빡하게 정리하고, 맛깔나게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제각각의 매력이 담긴 공부를 보여주시죠. 장, 단점이 딱히 구분되지 않는 것이 함께 공부하는 것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공부와 공동체 생활에 대해 좀 더 생각해야겠습니다.

3분의 뉴페이스가 왔다가 나가며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여차저차 올해도 이렇게 잘 마무리됐네요. 선생님들과 에세이 발표를 즐겁게 보낸 덕에 또 새롭게 공부할 수 있는 기운을 얻게 됐습니다. 내년에 스피노자를 만나는 작업도 쉽지 않겠지만, 이 기운이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비록 영님쌤과 봉선쌤(중간에 나가셨죠.;;)은 함께하지 못하셨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꼭 봬요.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나요~!
에세이 발표 사진은 앞으로도 저희의 등불이 될 스피노자로 대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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