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 세미나

<명리학 세미나 > 5월20일 수업 공지

작성자
배현숙
작성일
2020-05-15 10:29
조회
106
 

적천수를 읽으며 종종 왜 이런 공부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여러분들은 왜 運과 命에 대해 알고 싶으신가요? 적천수에서 예제 사주들을 공부할 때 우리가 꼭 살피는 것이 大運이죠. 왜 명주의 원국만 보지 않고 대운을 보는 걸까요? 철초 선생은 종종 ‘세월에서 이러한 運이 왔을 때’ 라고 말합니다. 명운이란 命과 運이죠. 運이란 운동이고요. 무엇이 움직인다는 걸까요? 동양학에서는 그것을 음양과 오행, 氣가 움직이는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공부는 음양오행의 움직임, 시절을 살피는 공부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사주원국조차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본다는 말일 것이고, 그 움직임이 시공 속에서 어떤 양상으로 펼쳐지는지를 보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사주명리공부는 인간사를 우주대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이해하고 자신이 운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찾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매번 그 모든 일을 내가 했다고 자만하고, 내가 그르쳤다고 자책하곤 하지요. 나타나는 모든 일을 번번이 ‘나의 것’으로 여기는 이 고착된 사유의 습성, 불교에서는 그걸 업습이라고 하는데요, 그 습성 때문에 우리는 괴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사실 삶에서 일어나는 다반사는 괴롭고 기쁜 일이 따로 있을리 없죠. 우주가 하는 일에 좋고 나쁘고, 기쁘고 괴로운 일이 있다면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불교는 그 일이 지금 여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인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필연성을 우리는 運에서 찾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서 내게 주어진 여덟 개의 글자들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는지를 살펴 그것을 운용하고자 공부하는 것이겠죠. 辛巳월이 시작되면서 저는 이 운기의 작용을 몸으로 확실하게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월요일엔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울체된 기와 혈이 병증으로 드러나기도 했죠. 다행히 연구원들이 두들기고 패고 덥혀주고 뚫어주어서 겨우 通했습니다만, 運氣가 제 여덟 글자와 上下貴乎하고 左右氣協하지 못할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한 셈이죠. 이러한 간지의 상호작용을 오늘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干支暗合, 殺印相生, 干支不背 등은 위아래 글자들이 서로 생해주고 좌우가 협조해서 통하게 되는 이치를 말해줍니다.

 

干支暗合

 
地生天者 天衰怕冲 天合地者 地旺宜(喜)靜(지생천자 천쇠파충 천합지자 지왕의(희)정)

➪ 지지가 천간을 생할 때 천간이 쇠하다면 지지의 충이 두렵고, 천간이 지지와 합하는 경우에 지지가 왕하다면 조용히 있는 것이 기쁘다.

 

지지가 천간을 생한다는 것은 甲子, 丙寅, 丁卯, 己巳, 戊午, 壬申, 癸酉, 乙亥, 庚辰, 辛丑과 같은 경우입니다. 일주가 월령을 얻지 못하고, 일주를 도와주는 오행이 적다면 신약한 사주이니 당연히 인성을 용신으로 삼는데요, 이 때 인성이 冲을 받아 뿌리가 뽑혀버린다면 삶의 기틀이 완전히 끊겨버려 재앙이 심하겠죠. 반대로 일주가 월령을 잡았거나 年時支에 모두 祿旺, 비겁을 만났거나 天干에 비겁이 많거나, 관성이 쇠약하여 도리어 인수가 관성을 설하는 것을 꺼리는 형상일 때는 旺한 사주니, 충을 받아 깨지더라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世運에서의 충 역시 마찬가지죠.

천간합은 음양이 서로 배합됩니다. 甲己합, 乙庚합 등. 그러나 이는 이상적인 이론에 불과합니다. 음이 왕하면 양을 따르지 않고 양이 왕하면 음을 따르지 않으니 겉으로는 합이 되어도 合化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간합에는 쟁합, 투합, 분합 등이 있는데, 明暗合하는 경우에는 국에 따라 합이 되기도 하고, 분쟁이나 투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天合地’는 활용해보거나 가볍게 여겨도 좋지만, ‘地旺宜(喜)靜(지왕의(희)정)’, 즉 지지의 네 글자는 잘 살펴야 합니다. 지지가 왕성하면 천간은 반드시 쇠약하기 마련이니, ‘喜靜’, 즉 네 개의 지지에 충극하는 것이 없이, 생조해주는 글자가 있다면 기쁘다는 것이죠. 천간의 기운이 쇠한데 도와주는 글자가 없다면, 지지에서라도 왕성해서 생해주면 천간이 대단히 기쁘겠죠. 이 때 지지의 元神까지 투출되어 천간 지지가 서로 인연이 되어 오르내리게 되면 유정해지니 이 때의 合은 從하는 것과 같게 됩니다. 財와 합하면 從財, 官과 합하면 從官하게 됩니다.

 

丁亥, 戊子, 甲午, 己亥, 辛巳, 壬午, 癸巳 등은 모두 지지 중 人元인 지장간이 천간과 서로 합하는 간지들입니다. 이것들은 坐下, 즉 앉은 자리에 재성과 정관을 지닌 지지들이니, 재관이 만약 왕성하다면 마땅히 안정되어야지 충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죠. 십간의 합은 음양의 배합입니다. 丁火는 陰이고, 亥水의 正氣인 壬水는 陽입니다. 丁壬合이죠. 丁火에게 壬水는 正官입니다. 五陽은 五陰과 합이 되니 재성이 되고,(戊子=戊癸合), 五陰은 五陽과 합하니 관성이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음이 왕성해도 양을 따르지 않고, 양이 왕성해도 음을 따르지 않음이 있으니, 이 때는 비록 합을 해도 化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쟁투를 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철초선생은 이렇게 간지합이 되는 경우는 戊子, 辛巳, 丁亥, 壬午 네 간지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甲午, 己亥, 癸巳는 합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지장간의 초기, 중기, 말기의 역할이 모두 다른데 말기인 정기와의 합만을 합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지장간 초기와 말기는 체이고, 중기는 용의 영역을 표시하기 때문에, 중기와는 합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이죠. (만일 甲午일에 태어난다면 午火에는 丁火가 우선하고 己土는 다음이니 己土는 甲木과 마음대로 합을 할 수 없으며, 己亥 역시 먼저 壬水가 움직이고 다음에 甲木이 움직이니 合이 어려울 것이고, 癸巳도 마찬가지로 巳의 丙火가 먼저이고 다음에 戊土가 되니, 戊土는 丙火를 넘어 癸水와 합할 수가 없게 되어 이 3일은 干支合으로 논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殺印相生 殺印兩旺 살인상생 살인양왕

 
甲申戊寅 眞爲殺印相生 庚寅癸丑 也坐兩神興旺

(갑신무인 진위살인상생 경인계축 야좌양신흥왕)

➪ 갑신과 무인은 진정으로 살인상생이 되며 경인과 계축은 또한 흥왕한 양신에 앉은 것이다.

 

양신(兩神)을 말합니다. 甲申, 戊寅은 앉은 자리가 편관(=칠살)입니다. 그런데 甲申의 경우 壬水 편인이 생조해주어서 甲木을 생하게 한다면 水金이 강하게 되죠. 또 庚寅에서는 寅 중 丙火와 戊土가 庚金의 殺印에 해당됩니다. ‘殺印兩旺’이란 칠살과 인수가 모두 왕하다는 뜻입니다. 庚寅의 지지 寅에는 칠살 丙火와 인수 戊土가 있는데, 丙火, 戊土는 모두 寅에서 장생이니 殺印이 旺하니 살인상생이라는 말씀이죠. 그런데 이렇게 지장간에 殺印이 있어 살인상생격이라고 한다면 甲申 戊寅 庚寅 癸丑 뿐 아니라 乙丑, 辛未, 壬戌 등도 살인상생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格을 논할 때는 단지 일주만 가지고 논해서는 안되겠죠. 사주의 기세와 일간의 쇠왕을 살펴, 殺을 꼭 써야할 때라면 그것을 부조해야 할 것이고, 用하지 않을 때는 그것을 억제해야 할 것입니다. 즉 身强한데 살이 약하다면(身强殺淺) 재성으로 살을 자양해줘야 할 것이고, 일간과 殺이 둘 다 비등할 경우(身殺兩停)에는 식신으로 殺을 제압해줘야 할 것이며, 殺이 강하고 일간이 약한(殺强身弱)할 경우에는 인수로 殺을 化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철초 선생은 살이 무겁고 신이 약한(殺重身輕) 팔자는 가난하지 않으면 단명하며, 살을 억제하는 글자가 많은 제살태과制殺太過의 팔자는 비록 배웠다 할지라도 성공하지 못한다 했습니다. 이는 行運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殺이 왕할 때 운이 다시 殺로 가면 곧바로 흉재(凶災)를 만나게 될 것이고, 원국에서 殺을 제압하고 있는데 운에서 다시 殺을 제압하게 되면 궁핍하게 된다는 것이죠. 명리 책에서는 ‘格을 살필 때는 殺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殺이 있을 때는 단지 殺을 가지고 논해야 하며, 殺이 없을 때 비로소 용신을 논한다’고 했으니 어찌 殺을 소홀히 취급할 수 있겠습니까?

 

干支不背

 
上下貴乎情協(和) 左右貴乎氣協(同志) (상하귀호정협(화) 좌우기호기협(동지))

➪ 천간과 지지 사이에는 서로 정겹게 화합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며, 사주 간지의 좌우 사이에는 서로 뜻을 함께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干支不背란 ‘간지가 서로 등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천간과 지지가 비록 상생관계는 아닐지라도 마땅히 정이 있어서 어그러지거나 등지지 않아야 아름답고(天干地支 雖非相生이라도 宜有情而不反背), 사주의 상하와 좌우가 비록 한 가지 기를 갖추지 않았더라도 반드시 상생 제화가 이루어져 서로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上下左右는 雖不全一氣之物이라도 須生化不錯) 또한 시작되어야 할 곳에서 시작하고 그 끝나야 할 곳에서 끝나면, 부귀와 수복이 영원토록 무궁할 것(始其所始요 終其所終이면 富貴福壽가 永乎無窮)이라는 말은 “年과 月은 근본에 속하니 日과 時가 그것을 배반하지 않아야 하고, 日과 時는 종말에 속하므로 年과 月이 그것을 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무릇 局 중의 喜神이 時支에 인도되어 돌아갈 곳이 있어서 始와 終이 제자리를 얻으면 부귀와 수복이 영원토록 무궁할 것”이라는 말씀이죠.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주들이 찌그러져 우여곡절을 겪는단 말인가 생각해봅니다. 번뇌가 보리라 했으니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이런 사주들을 들고 나온 것일까요? 참으로 하늘의 뜻은 알 수가 없습니다. ㅎㅎㅎ 이 업에 한 평생 종사해온 어떤 이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 양반은 젊어서 절간에 들어앉아 서른 번도 넘게 읽으며 공부했던 명리 고서들을 어느 날 싹 다 불 싸질러 버렸다네요. 실관을 해보니 명리 책에 나와 있는 사주들과 비슷한 사주들을 아무리 눈 씻고 찾아볼래도 만날 수가 없었다나요. 그 말을 들으며 휘유~~ 안심했죠. 그 때부터 그 양반은 소위 비빔밥 사주(라고 자신이 일컫는) 갑남을녀들의 찌그러진 사주 통변을 위한 자기만의 방법을 여러가지로 궁리했다고 합니다. 고서는 고서일 뿐! 거기에 나와 있는 사주 통변 방식을 누구든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죠. 사주팔자라는 언어적 기호는 명주가 살고 있는 시대와 개인의 욕망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열린 지평으로서의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마다에게 주어진 기호와 좌표를 어떤 의미와 방식으로 해석할 것인가는 저마다의 삶의 지향과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우리는 이 책들 안에서 자연의 법칙 안에서 그 법칙대로 살았던 선지식들의 삶에 대한 통찰과 경험을 전해 듣는 것이죠.


그리고 그 뒤에 소위 ‘일급 사주’들의 예가 수두룩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이구ㅠㅠㅠ  한번 쭉 훑어보시며 내가 어떤 善業을 지어야 이런 사주를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지 궁리해보시기 바랍니다. ㅎㅎㅎ

 

◈ 다음 시간에는 형상 격국편으로 들어갑니다. 드디어 사주의 ‘꼴’을 살필 수 있는 공부가 시작되었네요. 一行得氣, 兩氣成象... 복잡한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어차피 ‘格’이란 여덟 글자 중에서 가장 긴요하게 쓸 수 있는 글자가 어떤 상황 속에 놓여 있는지를 살피기 위한 것이니까요.

◈ 적천수 347까지 편한 마음으로 쓰윽 읽어오십시오. (그렇다고 진짜 '쓰윽' 하시면 아니되옵니다^^)

◈ 글고 다음 시간에는 우리 은영쌤이 준비해주시는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은영쌤의 사주 팔자에서 도대체 남편별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길래, 글케 매번 남편 그늘을 못 벗어나는 것인지... 함께 궁리해보도록 하지요~ ㅋㅋㅋ 평안한 한 주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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