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숙제방

서론&발췌문

작성자
이응
작성일
2017-01-12 23:57
조회
201


1. 나는 유머로소이다, 신경쇠약의 덕분으로


들어가며

소세키는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 전인 1900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일본 정부 문부성으로부터 영어 연구를 위해 2년간 유학하라는 지시를 받아 떠난 국비 유학이었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2년은 소세키에게 ‘가장 불쾌한 시간’으로 회고된다. (생활비의 곤궁함, 연구에 대한 스트레스, 서구인의 우월적 시선 등.. 찾아서 간단히 정리) 영국 유학 생활 중 고독과 싸우면서 정리해두었던 <문학론> 서문에서 소세키는 ‘내 의사가 가능했다면 나는 평생 영국 땅에 단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았을 것’이라며 영국에 있을 당시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영국 신사들 사이에서 늑대 무리에 낀 한 마리 삽살개처럼 애처롭게 생활했다. 런던의 인구는 500만이라고 한다. 500만 방울의 기름 속에서 한 방울의 물이 되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나의 당시 상태였다고 주저 없이 단언할 수 있다. 깨끗이 빤 하얀 셔츠에 먹물 한 방울을 흘렸을 때 당사자는 틀림없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먹물에 비교해야 할 내가 거지 같은 모습으로 웨스트민스터 근처를 배회하고 인공적으로 매연을 뿜어내는 그 대도시 공기의 몇천 입방 센티미터 길이를 2년간 삼키고 토한 것은 영국 신사들에게는 대단히 안타까웠으리라. - <문학론> 서, 1906




이 글이 쓰여졌던 1906년은 귀국 후 3년이 지난 시기로, 소세키는 여전히 영국 유학생활의 불쾌와 혐오로 신경쇠약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볼만한 것은, 그 불유쾌한 경험을 표현하는 소세키의 표현에는 어딘지 모르게 웃음을 유발하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늑대 무리에 낀 한 마리 삽살개’로 표현한다던지, ‘500만 방울의 기름 속에 한 방울의 물이 되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다는 표현들이 상기시키는 것은 히스테릭하고 예민한 심적 상태이기보다 난처했던 자신을 희화화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여유있는 심적 태도로 보여진다.

신경쇠약을 앓았던 소세키는 귀국 후 ‘문학 이론’에서 ‘작품 창작’으로 활로를 넓힌다. 그리고 자신이 창작을 할 수 있던 것은 신경쇠약과 광기 덕분이라고 말한다.





“귀국 후에도 나는 신경쇠약을 앓았고 게다가 사람들은 나를 광인이라고 했다. ··· 다만 신경쇠약으로 광인이 되었기 때문에 <고양이>를 썼고 <양허집>을 출판했으며 <메추라기 새장>을 세상에 발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나는 이 신경쇠약과 광기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게 지당하다고 믿는다.”  - <문학론> 서, 1906



이런 정황으로 보아 소세키의 신경쇠약과 작품 창작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듯 하다. 또한 소세키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에는 <문학론>의 서문과 마찬가지로 도무지 신경질적이거나 암울한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 작중에서 소세키의 분신처럼 그려지는 구샤미가 신경쇠약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오기는 하나 이것이 다뤄지는 방식은 오히려 유머러스하다. <고양이> 이후로도 소세키는 꾸준히 작품을 써내는데, 위의 글에서 언급된 작품(<양허집(런던탑, 취미의 유전 外)>과 <메추라기 새장(도련님, 풀베개 外)>)에서 보여지는 소세키의 정신 태도에는 일련의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다 할만한 줄거리 없이도 화자의 만담 만으로 몇장이고 이어지는 전개 방식이라던가,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심각할 만한 상황도 느긋하게 거리를 두고 보기 때문에 외려 한가한 기분을 자아낸다던가 하는 특징들. 이것은 단순히 창작하는 작법을 넘어 소세키가 세상을 보는 심적 태도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세키는 1907년 요리우미신문에 <사생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는데, 여기에서 ‘문장의 차이는 (인간사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보통의 소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사생문 작가’의 태도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통의 소설가는 옆에 있는 인간을 자기와 동일한 정도의 존재로 간주하고, 부대끼고 있는 사회에 자기 자신도 옥신각신 얽혀들면서 어디까지나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태도로 붓을 든다. ··· (반면) 사생문 작가는 자신은 울지 않으면서 울고 있는 다른 사람을 서술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아무리 심각한 사태를 묘사하더라도 이러한 태도를 밀고 나가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깊은 바닥까지 들어가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태도로 세간 인정의 교섭을 보기 때문에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러한 대상이 골계의 요소가 포함된 표현으로 드러나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사생문 작가가 묘사한 것을 보고서세상을 우스꽝스러운 듯이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진지한 대상을 농담처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 <사생문>, 1907


이 글이 쓰여진 1907년 1월은, <고양이>와 <런던탑>, <취미의 유전>, <도련님>, <풀베개> 등 소세키의 ‘사생문’으로 손꼽히는 작품들을 발표한 직후이다. 또 소세키가 제1고등학교와 도쿄제국대학 강사를 사직하고 소설을 쓰는 전속작가로 아사히 신문에 입사하기 직전이기도 하다. 문학강의와 창작을 겸하던 소세키가 전속작가로의 변화를 꾀하던 그 사이 시기에 이 글이 쓰여졌다는 것은, 소세키가 어떤 태도로 작품을 써왔고 또 써나갈지를 보여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세키는 어떤 태도로 작품을 써나갔는지, 그리고 이런 태도가 어떻게 웃음을 유발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또 웃음을 유발하는 이런 태도와 소세키의 신경쇠약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정신태도 발췌 -


<운율과 리듬>


나는 다시 하녀가 방심한 틈을 타 부엌으로 기어들었다. 곧 또다시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내동댕이쳐졌다가 기어들었고, 기어들었다가는 다시 내동댕이쳐지고, 이 짓을 네댓 번이나 되풀이한 것 같다. (18, 1장)



서재에서 주인은 이 그림을 가로로 보기도 하고 모로 보기도 하면서 “멋진 색이군”했다. 일단 감탄했으니 이제 그만두는가 싶었는데, 다시 가로로 보기도 하고 모로 보기도 했다. 몸을 비틀어 보는가 하면, 손을 뻗어 노인네가 『삼세상』을 보는 것처럼 보기도 하고, 창 쪽을 향해 엽서를 코끝까지 바짝 들이대고 들여다보기도 했다. (37, 2장)


이 집의 하녀는 안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떡 같은 걸 슬쩍 해서 먹고, 먹고는 또 슬쩍한다. (45, 2장)



주인은 뒤로 돌아가 보고, 뒷간에서 내다보고, 또 뒷간에서 내다보고, 뒤로 돌아가 보고, 몇 번을 말해도 같은 일이지만, 몇 번을 말해도 같은 그 일을 반복하고 있다. (379, 8장)



<인간 세계의 외부자, 고양이가 보는 시선>

식구들은 그가 뭐 대단한 면학가인 줄 알고 있다. 그 자신도 면학가인 척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식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가끔 발소리를 죽이고 그의 서재를 엿보곤 하는데, 대체로 그는 낮잠을 자고 있다. 가끔은 읽다 만 책에 침을 흘린다. ··· 그런 주제에 밥은 또 엄청나게 먹는다. 배터지게 먹고 나서는 다카디아스타제라는 소화제를 먹는다. 그 다음에 책장을 펼친다. 두세 페이지 읽으면 졸음이 몰려온다. 책에 침을 흘린다. 이것이 그가 매일 되풀이하는 일과다. (19, 1장)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선생이 되는 게 제일 낫겠다. 이렇게 자빠져 자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고양이라고 못할 게 없지 않은가. (20, 1장)


그는 고약한 굴처럼 서재에 딱 들러붙어 일찍이 외부 세계를 향해 입을 연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아주 달관한 듯한 상판대기를 하고 있으니 가소롭기 짝이 없다. (39, 2장)


<무사태평 인간들의 농담·만담>


- 메이테이

“자네, 실은 그거 엉터리라네.”

미학자는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뭐가 말인가?”

주인은 아직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뭐긴 자네가 자꾸 감탄하는 안드레아 델 사르토 말이지. 그건 내가 그냥 지어낸 얘기라네. 자네가 그렇게 곧이곧대로 믿을 줄은 미처 몰랐네. 하하하하.”


미학자는 대단히 흥겨운 모양이었다. 나는 툇마루에서 이 대화를 들으며 주인이 오늘 일기에 뭐라고 쓸지 미리 예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미학자는 이런 무책임한 말을 퍼뜨려 사람을 감쪽같이 속이는 걸 유일한 낙으로 삼는 사람이다. (33, 1장)


목매달기의 역학


(간게쓰군 물리학 연설 연습. ‘목매달기의 역학’ 이라는 으스스한 제목을 가지고 잘도 연설을 하겠다고 프록코트에 와이셔츠의 칼라를 빳빳이 세워 남자다운 풍채를 2할쯤 더한 채 나타난다. 연설 말투는 지극한 만연체다. 메이테이는 시작부터 참견을 놓으며 말투가 ‘하옵는’보다는 ‘하시는’이 낫지 않냐고 한다. 간게쓰는 두 선생을 대상으로 알아듣지 못할 수학공식을 대입하여 목매달기의 역학을 설명한다. 메이테이와 주인이 ‘대충’ 넘어가라고 하자 간게쓰는 ‘이 방정식이 연설의 백미라 이 식을 생략해버리면 애써 한 역학적 연구가 완전히 헛수고가 되고 만다’고 말한다. 애초부터 놀이 삼아 듣기 시작한 두 사람은 ‘대충 생략하라’며 재미있거나 농담 칠만한 요소가 없나 듣고 있다.)

“더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을 매달면 키가 3센티미터쯤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건 실제로 의사가 재어봤으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거 새로운 발견이군. 어떤가, 구샤미도 목을 좀 매달면? 3센티미터쯤 늘어나면 보통 사람 정도는 될지도 모르잖은가?”

메이테이 선생이 주인을 보고 말하자 주인은 뜻밖에 진지하게 물었다.

“간게쓰군! 3센티미터쯤 커졌다가 살아나는 경우가 있나?”

“그야 당연히 없지요. 매달리면 척추가 늘어나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척추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못 쓰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그만두겠네.”

주인은 단념했다.


연설할 내용은 아직도 꽤 많이 남아, 간게쓰 군은 목매달기의 생리작용까지 언급할 예정이었으나 메이테이 선생이 함부로 변덕쟁이처럼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데다 주인이 가끔 하품을 해대는 통에 결국 도중에 그만두고 돌아가버렸다. (130~137, 3장)


도후 군의 다카나와 사건


(센가쿠지 전시장에서 독일 부부를 발견한 도후군.)

“도후 군은 늘 그렇듯이 독일어를 써보고 싶어 환장한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독일어로 두세 마디 유창하게 나불거려봤다네. 그랬더니 뜻밖에도 잘되더라는 거야. 나중에 생각하니 그게 재앙의 시작이었던 거지.”

(몇 마디 주고받다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도후 군은 난감한 상황이 된다.)


“결국 도후 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아뇨 가세요’ 하고 일본말로 인사하고 내빼고 말았다네. 그런데 ‘아뇨 가세요’라는 건 좀 이상하다, 자네 고향에선 ‘안녕히 가세요’를 ‘아뇨 가세요’라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고향에서도 ‘안녕히 가세요’라고 하는데, 상대가 서양 사람이니 조화를 꾀하려고 ‘아뇨 가세요’라고 했다지 뭔가. 도후 공은 괴로울 때도 조화를 잊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정말 감탄했다네.” (140,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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