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논어 학이 6-9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6-07-03 09:01
조회
650
지워져서 다시 올려요~

 

6.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공자꼐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집안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삼가고 성실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 그렇게 행하고도 여력이 있거든 학문하는 데 써야 한다.

謹者 行之有常也 信者 言之有實也 汎 廣也 衆 謂衆人 親 近也 仁 謂仁者 餘力 猶言暇日 以 用也 文 謂詩書六藝之文 程子曰 爲弟子之職 力有餘則學文 不修其職而先文 非爲己之學也 尹氏曰 德行 本也 文藝 末也 窮其本末 知所先後 可以入德矣 洪氏曰 未有餘力而學文 則文滅其質 有餘力而不學文 則質勝而野 愚謂 力行而不學文 則無以考聖賢之成法 識事理之當然 而所行 或出於私意 非但失之於野而已
근(謹)이란 행함에 항상됨이 있는 것이다. 신(信)이란 말에 성실함이 있는 것이다. 범(汎)은 넓음다는 뜻이다, 중(衆)은 여러 사람을 말한다. 친(親)은 가까이 하는 것이다. 인(仁)은 어진 사람을 말한다. 여력(餘力)은 여유 있는 날이라는 말과 같다. 이(以)는 쓸 용(用)이다. 문(文)은 시서(詩書)와 육예(六藝)의 문(文)을 이른다.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였다. “제자들은 직분을 하고 힘이 남거든 학문을 하는 것이다. 그 직분을 수행하지 않고 먼저 문을 배운다면 자신을 위한 배움이 아니다.” 윤씨(尹氏)가 말했다. “덕을 행하는 것은 근본이요 문예는 말단이다. 그 근본과 말단을 궁구하고 먼저와 나중을 아는 것이 덕에 드는 것이다.” 홍씨가 말했다. “여력이 있지 않은데 학문을 한다면 문(文)이 그 질박함을 지우게 될 것이고 여력이 있는데도 문(文)을 배우지 못하면 질박함이 넘쳐서 거칠어진다. 내가 생각하기로 힘을 행하며 학문하지 않으면 성현들이 이룬 법을 헤아리고 사리의 당연함을 알지 못하여 행하는 것이 혹 사사로운 뜻에서 나오기도 할 것이니 단지 거칠기만 해서 잃을 뿐만은 아닐 것이다.

7. 子夏曰 賢賢 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자하가 말하였다. 어진이를 어질게 여기는 것을 이성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 하며 부모를 섬기는 데 그 힘을 다할 수 있으며 군주를 섬기는 데 그 몸을 바칠 수 있고 벗과 사귀면서 말에 신의가 있다면 비록 배우지 못했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가 배웠다고 이를 것이다.

子夏 孔子弟子 姓卜 名商 賢人之賢而易其好色之心 好善有誠也 致는 猶委也 委致其身 謂不有其身也 四者 皆人倫之大者 而行之必盡其誠 學求如是而已 故 子夏言有能如是之人 苟非生質之美 必其務學之至 雖或以爲未嘗爲學 我必謂之已學也 游氏曰 三代之學 皆所以明人倫也 能是四者 則於人倫厚矣 學之爲道何以加此 子夏以文學名而其言如此 則古人之所謂學者 可知矣 故 學而一篇 大抵皆在於務本 吳氏曰 子夏之言 其意善矣 然 詞氣之間 抑揚大『(太)』過 其流之弊 將或至於廢學 必若上章夫子之言然後 爲無弊也
자하는 공자 제자로 성은 복(卜)이고 이름은 상(商)이다. 남의 어짊을 어질게 여기되 그 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 한다는 것은 선을 좋아하는 것이 성실하다는 뜻이다. 치(致)는 버릴 위(委)와 같으니 그 몸을 다 바친다는 것은 그 몸을 챙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른다. 네가지는 모두 인륜의 큰 것이니 그 성실함을 다하여 행하여야 하며 학문은 이와 같은 것을 구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자하는 “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만약 타고난 자질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면 필시 학문에 힘쓰기를 지극히 했기 떄문일 것이다. 비록 혹시라도 일찍 학문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이미 배웠다고 이르겠다” 라고 말한 것이다. 유씨는 말하였다. “삼대(三代)의 학문은 모두 인륜을 밝힌 것이었다. 이 네가지를 할 수 있다면 인륜을 두텁게 쌓은 것이니 어찌 이보다 더할 것이 있겠는가. 자하는 문학으로 이름이 났음에도 이와 같이 말했으니 그렇다면 옛 사람들의 학문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학이 한 편은 모두 근본에 힘쓰는 것이다. 오씨가 말했다. “자하의 말은 그 뜻이 선하다. 그러나 어감 사이의 맥락이 너무 지나쳐서 그 흐름의 폐단이 혹 학문을 가릴 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위 장의 공자 말씀과 함께 보아야 폐단이 없을 것이다.”

8. 子曰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진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배우더라도 견고하지 못하다.

重 厚重 威 威嚴 固 堅固也 輕乎外者 必不能堅乎內 故 不厚重 則無威嚴 而所學 亦不堅固也
중(重)은 두텁고 무게가 있는 것이다. 위(威)는 위엄이다. 고(固)는 견고함이다. 외연이 가벼운 자는 절대 내면도 견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어서 배우는 것도 또한 견고하지 못하다.

主忠信
충실함과 신의를 주로 하며

人不忠信 則事皆無實 爲惡則易 爲善則難 故 學者必以是爲主焉 程子曰 人道惟在忠信 不誠則無物 且出入無時 莫知其鄕者 人心也 若無忠信 豈復有物乎
사람이 충실하지 못하고 신의가 없으면 모두 실상이 없어서 좋지 않은 일을 하기 쉽고 선을 하는 것은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이것을 주로 해야 한다. 정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도는 그저 충실함과 신의에 있다. 성실하지 못하면 사물이 없는 것이다. 또 나가고 들어오는 일정한 때가 없어서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니 만약 충실하지 못하고 신의가 없다면 어찌 다시 다른 사물이 있겠는가.

無友不如己者
자기와 같은 이를 벗하지 말며

無 毋通 禁止辭也 友 所以輔仁 不如己 則無益而有損
무(無)는 말 무(毋)와 통용되는 금지사다. 벗은 인(仁)을 보완하는 것이니 자기와 같은 자라면 무익하며 손해만 있을 것이다.

過則勿憚改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라.

勿 亦禁止之辭 憚 畏難也 自治不勇 則惡日長 故 有過則當速改 不可畏難而苟安也 程子曰 學問之道 無他也 知其不善 則速改以從善而已 程子曰 君子自修之道 當如是也 游氏曰 君子之道 以威重爲質 而學以成之 學之道 必以忠信爲主 而以勝己者輔之 然 或吝於改過 則終無以入德 而賢者未必樂告以善道 故 以過勿憚改 終焉
물(勿)은 금지사다. 탄(憚)은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것이다. 자신을 다스리는 데 용감하지 못하면 악함이 나날이 자란다. 그러므로 허물이 있으면 마땅히 빠르게 고쳐야 할 것이며 두려워하고 어려워하여 구차하게 안주해서는 안 된다. 정자가 말씀하셨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없다. 선하지 못함을 깨달으면 고쳐서 선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신을 닦는 도리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유씨가 말하였다. “군자의 도는 위엄과 진중함을 바탕으로 삼고, 배워서 그것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배움의 도는 반드시 충실함과 신의를 주로 하고 자신보다 나은 자로써 이것을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혹시 허물을 고치는 데 인색하다면 끝내 덕에 들어갈 수가 없다. 어진 사람들이 반드시 선한 도를 알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므로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었다.

9.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 歸厚矣
증자가 말하였다. 초상 치르는 것을 삼가고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들의 덕은 두텁게 됨에 이른다.

愼終者 喪盡其禮 追遠者 祭盡其誠 民德歸厚 謂下民化之 其德亦歸於厚 蓋終者 人之所易忽也 而能謹之 遠者 人之所易忘也 而能追之 厚之道也 故 以此自爲 則己之德厚 下民化之 則其德亦歸於厚也
신종(愼終)이란 상을 치르는 데 그 예를 하는 것이요 추원(追遠)이란 제사를 지낼 때 그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백성들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래 백성들이 교화되어서 그 덕 또한 후한 데로 돌아감을 이른다. 대개 죽은 자는 사람들이 소홀하게 대하기 쉬운데 그것을 삼갈 수 있고, 조상은 사람들이 잊기 쉬운데 그를 추모할 수 있다면 덕을 후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스스로 한다면 자신의 덕이 후해지고 아래 백성들이 교화되면 그 덕이 또한 후한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1. 위(威)라는 글자는 보통 풍채 있는 사람이나 무섭고 진지한 태도의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글자인데, 배움과 연관시키려니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요. 채운쌤은 행동이 딱 그 때에 맞는 시중(時中)의 모습이라고 하셨는데 그대로 ‘군자는 진중하지 않으면 시중하지 못한다~’ 라고 쓰는 것은 너무 위(威)라는 글자를 지우는 것 같고. 뭐가 있을지 아직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T
2. 無友不如己者는 ‘자기보다 못한 이’가 아니라 ‘자기와 같은 이’라고 해석해 봤어요. 습관대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하면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거기다 친구를 사귈 때 가장 뿌리치기 어려운 건 무의식중에 나와 비슷한 사람과 만나 오랫동안 같은 수준에 안주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경계하는 말 아닐까요?

다음 시간 간식은 수영언니

일요일에 만나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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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3 16:23
    지워졌던 것이구낭;; 다시 쓰느라 애썼넹..
    나는 요번에 논어하면서 찔리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하기까지 했던 게 솔직한 심정. 와~멋있다~ 할 부분도 많긴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