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논어 학이 10 ~ 14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7-05 16:52
조회
620
자, 복습 들어갑니다~

 

10. 子禽 問於子貢曰夫子 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자금이 자공에게 물어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나라에 이르시면(어느 나라에 가시든지) 반드시 그 나라의 정치에 대해서 들으시는데 선생님이 그것을(듣기를) 구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그들이 (소식을) 전해주는 것입니까.

子禽, 姓, 陳, 名, 亢, 子貢, 姓, 端木 名, 賜, 皆孔子弟子, 或曰亢, 子貢弟子, 未知孰是, 抑, 反語辭,

자금은 성이 진(陳)이고 이름은 항(亢)입니다. 자공은 성이 단목(端木)이고 이름은 사(賜)입니다. 모두 공자의 제자입니다. 혹자는 항이 자공의 제자라고 말하지만 누가 옳은지는 알지 못합니다. 억(抑)은 반어사입니다. 자공이 말했습니다.

 

子貢曰 夫子 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선생님은 온화하며 두터우시고(溫) 담담하여 곧으시고(良), 삼가고 신중하시며(恭) 절제하시고(儉) 겸손하심으로(讓) 그것을 얻으셨으니(정치를 들을 수 있었으니) 선생님께서 그것을 구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구하는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溫, 和厚也, 良, 易直也, 恭, 莊敬也, 儉, 節制也, 讓, 謙遜也,

온(溫)은 온화하고 두터운 것입니다. 량(良)은 담담하여 한결같고 곧은 것입니다. 공(恭)은 늘 삼가고 조심스러우며 신중한 것입니다. 검(儉)은 상황에 맞게 절제하는 것입니다. 양(讓)은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것입니다.

五者, 夫子之盛德光輝, 接於人者也, 其諸. 語辭也. 人. 他人也. 言夫子. 未嘗求之. 但其德容. 如是故. 時君. 敬信. 自以其政. 就而問之耳. 非若他人. 必求之而後得也.

다섯 가지는 선생님의 사람들과 접속할 때 그 관계 속에서 아주 훌륭한 덕으로 빛났던 것입니다. 기저(其諸)는 어사입니다. 사람은 타인을 말합니다. 이것은 선생님께서 일찍이 그것을 구한 적이 없으나 다만 그 모습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당시의 군주들이 선생님을 공경하고 신뢰하여 스스로 자신의 나라의 정치를 가지고 나와서 물었을 뿐이므로, 이는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그것을 구한 후에야 얻는 것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聖人. 過化存神之妙. 未易窺測. 然. 卽此而觀則其德盛禮恭. 而不願乎外. 亦可見矣. 學者. 所當潛心而勉學也.

성인이 지나가며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보존시키는 신묘함이 엿봐서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잘 관찰해 보면 그 덕이 성대하고 예가 공손함이 밖에서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배움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謝氏. 曰學者. 觀於聖人威儀之間. 亦可以進德矣. 若子貢. 亦可謂善觀聖人矣. 亦可謂善言德行矣.

사씨가 말했습니다. 배우는 자는 성인의 각각 때에 맞는 모든 행동거지들 사이에서 잘 관찰하면 또한 덕을 진전시킬 수 있습니다. 가령 자공은 또한 성인을 아주 잘 관찰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성인의 덕행을 잘 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今去聖人. 千五百年. 以此五者. 想見其形容. 尙能使人興起. 而況於親炙之者乎.

지금 성인과의 시간적 거리가 1500년인데 이 다섯 가지로서 공자님의 모습을 헤아려서 보건대 오히려 남들로 하여금 감정을 불러 일으키니, 하물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자들에게 있어서는 어떻겠습니까.

張敬夫. 曰夫子. 至是邦. 必聞其政. 而未有 能委國而授之以政者. 蓋見聖人之儀刑而樂告之者. 秉彛好德之良心也. 而私欲害之. 是以. 終不能用耳.

장경부가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나라에 이르러서 반드시 그 정사를 들으셨으나 능히 나라를 맡겨서 그에게 그 정치를 주어 맡긴 경우가 있지 않았습니다. 무릇 성인의 드러나는 태도와 행동거지를 보면 그것을 알리기를 즐거워하는 것이 일상의 도를 지키고 덕을 좋아하는 바른 마음입니다. 그러나 사욕이 그것을 해치게 되었고, 그래서 끝내는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11. 子 曰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 三年 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공자가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에는 그 자식의 뜻을 보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 자식의 행동을 보는데, 부모가 돌아가시고 3년 동안 부모의 삶의 방식을 고치지 않아야 효라고 할 만합니다.

父在. 子不得自專. 而志則可知. 父沒然後. 其行. 可見故. 觀此. 足以知其人之善惡. 然. 又必能三年. 無改於父之道. 乃見其孝. 不然則所行. 雖善. 亦不得爲孝矣.

부모가 계실 때는 자식은 자기 마음대로 스스로 전횡할 수가 없으니 그 뜻을 살펴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 행동을 살펴 볼 수 있고, 그것을 잘 관찰하면 그 사람의 선악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3년 동안 부모의 방식을 고치지 않을 수 있어야 그 효를 알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고치면) 행하는 바가 비록 선하더라도 또한 효가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尹氏. 曰如其道. 雖終身無改. 可也. 如其非道. 何待三年. 然則三年無改者. 孝子之心. 有所不忍故也. 游氏. 曰三年無改. 亦謂在所當改. 而可以未改者耳.

윤씨가 말했습니다. 만약 아버지의 도가 정당한 도라면 비록 종신토록 고치지 않더라고 괜찮습니다. 그런데 만일 아버지의 도가 바른 것이 아니라면 어찌 3년을 기다리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3년 동안 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효자로서 자식의 마음에 차마하지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씨가 말했습니다. 3년 동안 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또한 마땅히 고쳐야 할 곳이 있는데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유자가 말했습니다.

 

12. 有子 曰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 斯爲美 小大由之

예의 쓰임(작용)은 화(和)를 귀하게 여깁니다. 성왕의 도는 이를 좋은 것으로 여깁니다.

禮者, 天理之節文, 人事之儀則也,

예라는 것은 천리의 절문(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법칙을 인간 사회에 알맞게 끊어서 매듭지어 놓은 것)이요. 인간 만사의 마땅히 따라야할 모범적인 규칙입니다.

和者 從容不迫之意, 蓋禮之爲體, 雖嚴, 然, 皆出於自然之理, 故, 其爲用, 必從容而不迫, 乃爲可貴, 先王之道, 此其所以爲美, 而小事大事, 無不由之也,

화라는 것은 여유롭고 긴박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무릇 예는 본질이 됩니다. 비록 엄격하더라도 모두 자연의 이치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작용함은 반드시 여유롭고 긴박하지 않으므로, 그것을 귀하게 여길만한 것이 됩니다. 옛 선왕의 도는 이것을 바로 좋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일과 큰일들이 다 그것으로부터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바가 있는데, 화를 알아서 화만 행하고 예로써 그것을 끊어서 단속하거나 규범을 부여하지 않으면 또한 행해질 수 없습니다.

承上文而言, 如此而復有所不行者, 以其徒知和之爲貴, 而一於和, 不復以禮節之, 則亦非復禮之本然矣, 所以流蕩忘反, 而亦不可行也,

위의 문장을 이어서 이와 같이 다시 행해지지 않는 바가 있다고 한 것은, 그게 다만 화가 귀하게 된다는 것만 알아서 화 하나에만 몰입하고 다시 예로써 그걸 잘 단속하고 마무리하지 못하면, 또한 다시 예의 본연이 아닌 것이 되고, 따라서 방탕한 데로 흘러 돌아오는 걸 잊게 되므로 또한 행해질 수가 없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程子, 曰禮勝則離故,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 以斯爲美, 而小大由之, 樂勝則流故, 有所不行者,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

정자는 말했습니다. 예가 지나치면 너무 틈이 없이 깐깐해 지므로 예의 쓰임은 화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선왕의 도는 이것으로 훌륭함을 삼으니 크고 작은 것들이 이에서 말미암습니다. 즐거움이 지나쳐 버리면 마냥 흘러가 버려서 제대로 일이 잘 행해지지 않는 바가 있게 됩니다. 이는 화를 알아서 화로만 행하고 예로 그것을 끊어내고 매듭 짓지 못한 것이니 또한 일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게 됩니다.

范氏, 曰凡禮之體, 主於敬而其用則以和爲貴, 敬者, 禮之所以立也, 和者, 樂之所由生也, 若有子, 可謂達禮樂之本矣,

범씨가 말했습니다. 예의 본질은 삼가는 것을 주로 하며, 그 작용은 화를 귀히 여깁니다. 삼가는 것은 예가 확립되는 것입니다. 화란 악(樂)이 거기에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입니다. 가령 유자 같은 사람은 예악의 근본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愚, 謂嚴而泰, 和而節, 此, 理之自然, 禮之全體也, 毫釐有差, 則失其中正, 而各倚於一偏, 其不可行, 均矣,

저의 생각에는 엄격하지만 편안하고, 두루 조화를 이루지만 절도가 있는 것, 이것이 이치의 원래 그러함이니 예의 전체입니다. 한 터럭만큼의 차이가 있으면 그 중정함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각자가 한쪽으로 치우쳐 행해질 수 없는 것이 다 똑같은 것입니다.

 

13. 有子 曰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유자는 말했습니다. 신뢰가 있는 약속이 의에 가깝다면 말이 실천될 수 있고, 삼가고 조심함이 예에 가깝다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게 되며, 그 가까운 것을 잃지 않음에 의지하면(나로부터 가까운 관계를 가깝게 제대로 여길 수 있으면) 또한 그것을 핵심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信. 約信也. 義者. 事之宜也. 復. 踐言也. 恭. 致敬也. 禮. 節文也. 因. 猶依也. 宗. 猶主也,

믿음은 신뢰가 있는 약속을 말합니다. 의는 일의 마땅함입니다. 복은 말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공은 삼가고 조심함을 지극히 하는 것입니다. 예는 상황의 마디에 맞게 딱 재단하는 것입니다. 인은 기대는 것과 같습니다. 종은 주된 것과 같습니다.

言約信而合其宜, 則言必可踐矣, 致恭而中其節, 則能遠恥辱矣, 所依者, 不失其可親之人, 則亦可以宗而主之矣, 此, 言人之言行交際, 皆當謹之於始, 而慮其所終, 不然則因仍苟且之間, 將有不勝其自失之悔者矣,

신뢰가 있는 약속이 그 마땅함에 합치되면 말은 반드시 실천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삼가고 조심함을 지극히 하고 그 지켜야 할 것을 적절하게 잘 지키면 능히 치욕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의지하는 자가 친할 만한 사람을 잃지 않는다면 가히 그것을 핵심으로 여겨서 주된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언행과 사귐은 모두 마땅히 그 처음부터 삼가야 하며, 그 마치는 바를 잘 생각해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충 의지하고 뭉개면서(삐대?) 구차하게 있다가 장차 스스로 잃어버리는 후회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있게 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4. 子 曰君子 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사는 것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에는 민첩하고 말에는 신중함이 있으며 도가 있는 자에게 가서 바르게 고치니, 배움을 좋아한다 할 만합니다.

不求安飽者, 志有在而不暇及也, 敏於事者, 勉其所不足, 謹於言者, 不敢盡其所有餘也, 然, 猶不敢自是, 而必就有道之人, 以正其是非, 則可謂好學矣, 凡言道者. 皆謂事物當然之理. 人之所共由者也.

편안함과 배부름을 구하지 않음은 뜻이 있는 데가 따로 있어서 이런 것에 이를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일을 민첩하게 한다는 것은 그 부족한 것에 부지런히 힘쓰는 것입니다. 말을 삼간다는 것은 그 남음이 있는 것(다하지 못한 말)을 감히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감히 스스로 옳다고 자처하지 않고 반드시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자신의 시비를 바르게 하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릇 도라고 말한 것은 모두 사물의 당연한 이치와 사람들이 함께 행해야 하는 것을 이른 것입니다.

尹氏. 曰君子之學. 能是四者. 可謂篤志力行者矣. 然. 不取正於有道. 未免有差. 如楊墨. 學仁義而差者也. 其流. 至於無父無君. 謂之好學. 可乎.

윤씨가 말했습니다. 군자의 학문은 이 네 가지를 능히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뜻을 돈독히 하고 힘써 행했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가 있는 자에게 가서 바름을 취하지 않으면 차이가 생기는 것을 면할 수 없습니다. 가령 양주와 묵가 같은 사람들은 인과 의를 배우기는 했지만 그런 흐름이 부모도 없고 임금도 없는 데까지에 이르렀으니 호학이라고 이르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어우. 막상 집에서 다시 보니 어려운 부분이 꽤 있었어요.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답글로 보완 부탁 드릴게요~

담주엔 학이편이 끝날 테고, 본문을 암송하는 시험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무시무시한 벌금 얘기가 오가고 있으니 조심하세용  =3=33
전체 4

  • 2016-07-08 13:17
    글 올려주시는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복습을 꼬박꼬박 해야하건만...
    누적되는 범위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 2016-07-08 23:58
      모범생 지현샘이 마음이 무거우시다니요! 열심히 읽어주셔서 감사해용~ 잘못된 해석도 좀 고쳐주시어요~~

  • 2016-07-06 18:07
    간식은 건화입니다~ 어느새 학이장이 끝나가네요 모두 잘 외워오시길 ㅠㅠ

  • 2016-07-06 18:29
    아- 읽는 것만도 만만치 않군요. ㅎㅎ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번역이군요- 근데 約信은 약속하는 것, 이정도로 써도 되지 않을지-
    모두덜 곧 또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