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논어 팔일 5-10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6-09-07 01:14
조회
649
 

5. 子曰 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적에게 군주가 있어도 중원에 군주가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吳氏曰 亡 古無字通用 程子曰 夷狄 且有君長 不如諸夏之僭亂 反無上下之分也

尹氏曰 孔子傷時之亂而歎之也 無 非實無也 雖有之 不能盡其道爾

오씨가 말했다. 망(亡)은 옛날에 무(無)자와 통용되었다.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적이란 또한 우두머리가 있으나 중원의 참란하여 도리어 상하구분이 없는 것만 같지 않다.

윤씨가 말하였다. 공자께서는 도가 훼손된 때의 어지러움을 탄식하신 것이다. 없다는 것은 실제로 없는 것이 아니며,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마땅한 도를 다할 수 없음을 말한다.

 

6. 季氏旅於泰山 子謂冉有曰 女弗能救與 對曰 不能 子曰 嗚呼 曾謂泰山不如林放乎

계씨가 태산에서 여제사를 지냈다. 공자께서 염유에게 일러 네가 구제할 수 없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염유가 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일찍이 태산이 임방만 못했겠는가.

 

旅 祭名 泰山 山名 在魯地 禮 諸侯祭封內山川 季氏祭之 僭也 冉有 孔子弟子 名求 時爲季氏宰 救 謂救其陷於僭竊之罪 嗚呼 歎辭 言神不享非禮 欲季氏知其無益而自止 又進林放以冉有也

范氏曰 冉有從季氏 夫子豈不知其不可告也 然而聖人不輕絶人 盡己之心 安知冉有之不能救 季氏之不可諫也 旣不能正 則美林放以明泰山之不可誣 是亦敎誨之道也

 

여(旅)는 제사 이름이다. 태산은 산 이름이며 노나라 땅에 있다. 제후는 봉지 내 산천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 예다. 계씨는 제사 올리는 것을 참람한 것이다.

염유는 공자의 제자이고 이름은 구(求)이다. 구한다는 것은 어기고 몰래하는 죄에 빠지는 것에서 구하는 것이다. ‘오호’는 탄식한 것이다. 신은 예가 아닌 것을 흠향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셔서 계씨가 그 무익함을 알고 스스로 그만두기를 바라신 것이며, 또한 임방을 취해서 염유를 격려하신 것이다.

범씨가 말했다. 염유는 계씨를 따르는 자이다. 공자께서 어찌 그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모르시고 말씀하셨겠는가. 그러나 성인은 가볍게 사람을 끊어내지 않으시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하신다. 어찌 염유가 구하지 못할 것이며 계씨가 간할 수 없는 자임을 아셨겠는가. 이미 바르게 될 수 없음을 알자 임방을 좋은 예로 가져와서 태산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으니 이것 또한 가르치는 방법이다.

 

7.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경쟁하지 않으니, 반드시 경쟁한다면 활쏘기일 것이다. 인사하고 올라가 내려와서 마시니 이 경쟁이야말로 군자다.

 

揖讓而升者 大射之禮 耦進三揖而升堂也 下而飮 謂射畢揖降 以俟衆耦皆降 勝者乃揖 不勝者升 取觶立飮也 言君子恭遜 不與人爭 惟於射而後有爭 然 其爭也雍容揖遜 乃如此 則其爭也君子而非若小人之爭也

인사하고 올라선다는 것은, 큰 활쏘기의 예이다. 몇 사람이 짝을 지어 나아가 세 번 절한 다음에 당에 오른다. 내려와 술을 마신다는 것은 활을 쏘고 나면 절하고 내려와 모든 짝들이 다 내려오기를 기다린 후 승자는 절하고 이기지 못한 자는 올라가 잔을 들고 서서 마시는 것을 이른다.

군자는 공손하여 남과 경쟁하지 않으며 오직 활쏘고 난 이후에야 경쟁이 있다. 그러나 그 경쟁은 온화하고 공손하여 이와 같기 때문에 군자의 것은 소인의 경쟁과 같지 않다.

 

8. 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자하가 물어 말했다. ‘예쁜 보조개 웃음이여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여 흰것에 무늬를 만드네가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此 逸詩也 倩 好口輔也 盼 目黑白分也 素 粉地 畵之質也 絢 采色 畵之飾也 言人有此倩盼之美質 而又加以華采之飾 如有素地而加采色也 子夏疑其反謂以素爲飾 故 問之

이것은 유실된 시이다. 천(倩)은 아름다운 입을 도와주는 것이다. 반(盼)은 흑백이 분명한 눈이다. 소(素)는 분칠하는 바탕으로 그림의 바탕이다. 현(絢)은 채색이니, 그림의 꾸밈이다. 사람이 이러한 아보조개와 눈동자의 아름다운 바탕을 가지고 있어야 또 화려한 채색의 꾸밈을 더하는 것이니, 마치 흰 바탕이 있고 나서야 채색을 더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자하는 오히려 흰 것을 꾸밈으로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헷갈렸기 때문에 그것을 물었다.

 

子曰 繪事後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은 흰 바탕 다음의 일이다.

 

繪事 繪畵之事也 後素 後於素也 考工記曰 繪畵之事後素功 謂先以粉地爲質而後施五采 猶人有美質然後可加文飾

회사(繪事)는 그림 그리는 일이다. 후소(後素)는 흰 바탕을 칠한 뒤라는 뜻이다. 고공기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에 공을 들인 뒤의 일이라고 말했다. 먼저 흰 지점을 바탕으로 한 다음에 오색으로 채색하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아름다운 바탕을 갖춘 연후에 꾸밈을 더할 수 있는 것과 같다.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하가 말했다. 예가 나중이라는 것인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깨우는 자는 상()이로구나.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禮 必以忠信爲質 猶繪事必以粉素爲先 起 猶發也 起予 言能起發我之志意 謝氏曰 子貢 因論學而知詩 子夏 因論詩而知學 故 皆可與言詩

楊氏曰 甘受和 白受采 忠信之人 可以學禮 苟無其質 禮不虛行 此繪事後素之說也 孔子曰 繪事後素 而子夏曰 禮後乎 可謂能繼其志矣 非得之言意之表者 能之乎 商賜可與言詩者 以此 若夫玩心於章句之末 則其爲詩也固而已矣 所謂起予 則亦相長之義也

예는 반드시 충성스러움과 믿음을 바탕으로 하니, 마치 그림을 그리는 일에서 반드시 먼저 바탕을 희게 분칠하는 것과 같다. 기(起)는 깨우친다는 것과 같다. 나를 일으킨다는 것은 나의 뜻을 일으켜서 일깨울 수 있음을 말한다. 사씨가 말했다. 자공은 배움을 논하여서 시를 알았고 자하는 시를 논하여서 배움을 알았다. 때문에 모두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양씨가 말했다. 단맛은 조화를 수용하고 흰색은 채색을 수용하니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사람은 예를 배울 수 있다. 만약 그 바탕이 없다면 예가 헛되어 행해지지 않는다. 이것을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이 있는 다음이라고 설명하신 것이다. 공자가 바탕이 있고 난 다음 그린다고 말하자 자하가 예는 나중이라는 것이냐고 말한 것은 그 뜻을 이었다고 할 만하다. 말의 겉 뜻 너머까지 터득할 수 있지 않다면 이것이 가능할까. 자하와 자공이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문장의 말단으로 마음을 굴린다면 그 시가 되는 것이 고ᅟᅮᆯ해질 뿐이다. 이른바 나를 일깨운다는 것은 서로 성장시킨다는 뜻이다.

 

9. 子曰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라의 예에 대해서 내가 말할 수는 있을텐데 기나라에 증명할만한 것이 부족하구나. 은나라의 예에 대해서 내가 말할 수는 있을텐데 송나라에 증명할 만한 것이 부족하구나.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충분하다면 내가 증명했을 것이다.

 

杞 夏之後 殷之後 徵 證也 文 典籍也 獻 賢也 言二代之體 我能言之 而二國不足取以爲證 以其文獻不足故也 文獻若足 則我能取之 以證吾言矣

기(杞)는 하나라의 후예다. 송(宋)은 은나라의 후예다. 징(徵)은 증명한다는 뜻이다. 문(文)은 서적과 문서이며 헌(獻)은 현자이다. 두 대의 예는 내가 말할 수 있지만 두 나라에 증명할 만한 것이 부족하니, 그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문헌이 만약 충분하였더라면 내가 그것을 가지고 내 말을 증명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0.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체제사에서 강신주를 따른 다음부터 나는 보고싶지 않다.

 

趙伯循曰 禘 王者之大祭也 王者旣立始祖之廟 又推始祖所自出之帝 祀之於始祖之廟 而以始祖配之也 成王以周公有大勳勞 賜魯重祭 故 得禘於周公之廟 以文王爲所出之帝而周公配之 然 非禮矣 灌者 方祭之始 用鬱鬯之酒 灌地以降神也 魯之君臣 當此之時 誠意未散 猶有可觀 自此以後 則浸以懈怠而無足觀矣 蓋魯祭非禮 孔子本不欲觀 至此而失禮之中 又失禮焉 故 發此歎也

謝氏曰 夫子嘗曰 我欲觀夏道 是故之杞而不足證也 我欲觀商道 是故之宋而不足證也 又曰 我觀周道 幽厲傷之 吾舍魯何適矣 魯之郊禘 非禮也 周公其衰矣 考之杞宋 已如彼 考之當今 又如此 孔子所以深歎也

조백순이 말하였다. 체제사는 왕 노릇하는 자의 제사이다. 왕 노릇 하는 자는 시조의 묘를 세우고 또한 시조가 그로부터 나왔다고 여겨지는 상제를 유추하여 시조의 묘에서 제사지낸다. 그리고 비로소 시조로 배향하는 것이다. 성왕은 주공에게 위대한 공로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노나라에 중요한 제사를 하사하였다. 그러므로 주공의 사당에서 체제사를 지내고 문왕을 그가 나온 상제로 삼아 주공을 배향하였다. 그러나 예가 아니다. 바야흐로 제사를 지낼 때 울창의 술을 사용하여 땅에 뿌려 신이 내려오도록 했다. 노나라의 군신들은 그 순간만 하더라도성의가 흩어지지 않아서 오히려 볼만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점점 해이해지고 나태해져서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어쨌든 노나라의 제사는 예가 아니다. 공자께서는 원래 보고 싶지 않으셨지만 그 다음에 이르면 예를 잃은 것 중에서도 예를 잃은 것이라 그러므로 이와 같이 탄식을 내뱉으신 것이다.

사씨가 말했다. 공자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라의 도를 보고 싶어 기 땅으로 갔지만 증명할 만한 것이 없었다. 나는 상나라의 도를 보고 싶어서 송 땅으로 갔지만 증명할 만한 것이 없었다.’ 또한 말씀하셨다. ‘나는 주나의 도를 보 고싶지만 유왕과 려왕이 그것을 훼손하였다. 내가 노나라를 버리고 어딜 가겠는가. 노나라의 교제사와 체제사는 예가 아니다. 주공의 그 쇠함이여.’ 기나라와 송나라를 살펴보니 이미 저와 같고 지금은 생각해보니 또한 이와 같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이 때문에 탄식하신 것이다.

 

다음 시간 간식은 완수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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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08 09:23
    (보조개는 없지만..) 흰바탕 얼굴이 후기를 썼군-.-;;
    이적-군주도 그렇고, 巧笑倩兮 美目盼兮 요 부분 특히, 완전히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거 흥미로웠슴다! (후기에는 없지만ㅋㅋㅋㅋ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