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3.29 절차탁마Q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3-31 18:41
조회
204
유토피아, 소국과민, 그리고 플라톤의 최선의 정체. 모두 이상국가입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린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을 계속해서 읽어 왔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최선의 정체와 그것의 변질까지 모두 말해서 이제 최선의 정체에 대해 마무리하는 순간 이것이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못하는 이상임을 밝힙니다. 그걸 보고 싶은 자를 위해 만들어진 '하늘에 있는 본'이라고요. 마치 <국가>를 읽는 내내 '이게 가능해?'라고 물어왔던 저를 겨냥한 말 같네요;; 드라마 작가 플라톤의 탁월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상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사실 이들이 정말 이걸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썼느냐가 아니었죠. 질문은 '무엇을 문제로 파악했기에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문제로 보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철학의 전부라고 하죠. 모든 철학은 답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철학자가 자기 개념을 발명해 내기까지 그가 무엇을 어떻게 문제화를 했는가를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길고 긴 이상국가에 대한 대화, <국가>를 읽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은 근거(foundation)을 찾는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근거 위에서 문제화를 하는지 찾아내야 아무리 추상적인 개념이라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것. 니체 이후로는 어떻게 근거 자체 없이 사유할 수 있는가가 철학의 주된 쟁점이었지만 그 이전 형이상학에서는 근거 없이는 사유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전제였습니다.
그럼 플라톤 철학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기반을 보려면 플라톤이 살던 당시의 아테네 정치 상황을 봐야 할 것입니다. 이번 <국가> 9권에서 소크라테스는 참주의 문제를 욕망(eros)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치 짐승 같은 본성, 탐욕이 있는데 그것을 휘두르는 참주는 가장 비참한 자라고 보았지요. 플라톤은 당시 아테네 민주정체가 곧 그 탐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도시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 가장 비참한 참주정체로 가는 길목도 아테네의 정체인 민주정체였으니까요.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체의 특징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라고 했지요. 말만 보아도 비꼬는 티가 역력합니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주정체가 누리는 자유가 자랑스럽거나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유는 사실 무엇이든 긍정하는, 그래서 사실은 어떤 질서도 없는 무정부 상태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든 것을 긍정하는 자유는 결국 어떠한 것도 허용하지 않는 참주정을 부른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극에 달한 말로겠지요.
플라톤의 문제는 이렇게 그냥 놔두면 가장 비참한 상태로 치닫는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절제할 것인가? 였습니다. 무엇으로? 바로 인간의 로고스, 이성으로! 인간 이성이 다른 상태를 지배하는 것이 플라톤에게는 최선의 상태였고 그 이성을 상징하는 자가 바로 철인 통치자였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성이 우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이성을 통해 절제하는 자가 바로 영혼의 최선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으며, 최선의 상태인 영혼은 곧 그와 일치하는 최선의 폴리스를 구성한다고 본 것이죠. 지금 볼 때 특이한 점이 있다면 플라톤에게 최선의 정체와 최선의 영혼은 함께 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성원 각 개인과 그 공동체는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이 플라톤의 전제이기도 한 것. 그리고 이 합치되는 상태가 깨지게 된다면 곧 타락이 시작됩니다.
민주주의는 多者의 정체입니다.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이 혼재된 상태인 거죠. 좋게 말하면 모든 이의 의견을 존중해준다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무질서 한 것입니다. 플라톤은 단연 후자였습니다. 그의 동일자에 대한 선호는 <국가>에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동일자를 뜻하는 'Homo'는 일자, 동일성, 어떤 위치에 있는 것들이 그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반면 多者를 뜻하는 'hetero'는 언제든지 기능이 전환될 수 있다는 뜻이죠. 플라톤은 신체는 변형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 신체는 중단되더라도 중단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영혼이라고 했습니다. 그 혼을 함양하여 질서에 부합하게 하는 것. 그것이 플라톤의 이상인 것이죠. 그래서 생성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구조가 바로 플라톤 철학이라고 합니다.
민주정체는 富에 대한 욕망이 보편화된 정체라고 플라톤은 보았습니다. 돈은 계급을 따지지 않죠. 그러니까 富를 추구하는 욕망은 모두에게 평등합니다. 그러나 플라톤이 보기에 평등은 무질서의 시작. 그는 인간이 평등을 추구하는 순간 모두가 '나도 그걸 하고 싶어' 라고 말하며 자기 자리를 벗어나 혼란이 초래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통치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오래 갈 수 없고, 플라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원성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민주정체의 '자유'는 마음에 정초가 없는 상태,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이며 플라톤이 보기에 본성에서 벗어나게 되는 아주 불안정한 난민 상태의 자유인 것입니다.
플라톤은 이런 불안정한 상태에서 추구하는 즐거움은 모두 가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플라톤의 구도에서는 진정한 즐거움이 아닙니다. 여기서 <국가>에서 소크라테스가 받았던 공격, 불의가 곧 즐거움이라는 말에 대한 반격이 나옵니다. 플라톤은 자유와 평등이 부와 같은 덧없는 것에 연관되는 것이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덧없지 않은 것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부는 가변적일 뿐더러 사람들에게 예속을 초래하게 되니까요. 획득한 것이 해체되며 만족 또한 해체 될 텐데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가? 그건 바로 진정한 즐거움이 뭔지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정한 즐거움은 이성을 통해서만이 알 수 있는 것이지요.
플라톤의 문제는 결국 '진짜'란 무엇인가? 입니다. 당시 아테네에 유행했던 소피스트들의 논리는 항상 상황 속에서 변하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논리 안에 늘 모순성이 배태되어 있었죠. 플라톤은 그런 상대적인 것은 조건이 변하면 바로 깨질 가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진짜인가? 그건 자신의 혼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 같습니다. 민주정체의 문제 중 하나는 죄를 저지르고 처벌을 피하는 것이라고 보았는데요, 그렇게 당시 상황 논리에 맞게 그럴듯하게 말을 꾸며 빠져나가면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만 혼이 사물의 진/위를 파악할 수 없게 되기에 결국 자신에게 최대의 해악을 끼치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런 질서와 영혼의 문제를 같이 가져가는 플라톤의 문제의식은 생각해 볼 문제 같습니다.
전체 2

  • 2017-04-01 20:36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치와 지금의 민주정치는 분명 다를 테지만, 모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깨부수는 플라톤의 사유는 확실히 지금도 충격적이네요. 민주주의를 옹호해야 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아마 자유와 평등일 텐데, 플라톤은 이것들이 정말 자유와 평등을 의미하는지 고민한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는 진짜 자유와 진짜 평등을 계속해서 사유한 것 같습니다. 이런 플라톤의 자세를 본받아 에세이까지 밀고 가야 하는데 말이죠. 하하;;

  • 2017-04-05 07:23
    평등 에로스 자유....등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개념들이 플라톤의 눈에는 무질서를 향한 말들이네요.
    아마 소크라테스가 올바름의 정의를 찾아가듯 이 모든 말들에 정의를 생각하지 않고 사용할 경우 닥칠 위험을 보여주는듯 하네요.
    수업도 즐겁지만 후기글로 다시 정리해보는 수업도 또 다른 재미를 줍니다^^ 혜원 덕분에 다시 지난 시간 복습 즐겁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