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니 0403 후기 - 반시대적 고찰2

작성자
김경아
작성일
2017-04-09 11:54
조회
312
시즌1의 8주차, 마지막 강독 시간이었습니다. 규문 다수당으로 시작하였으나, 봄바람과 함께 세미나 인원은 하나둘씩 줄어들었지만 세미나 열기만은 아직도 후끈후끈합니다. 저의 망각에 주로 의존한 세미나 후기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Ⅱ앞부분을 같이 읽었습니다. 반시대적 고찰Ⅰ에서는 속물 교양인의 대표자였던 다비드 슈트라우스를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일 년 후인 1874년에 발표된 반시대적 고찰Ⅱ에서는 역사적 교양의 과잉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功過) - VOM NUTZEN UND NACHTHEIL der Historie für das Leben」라는 제목처럼 역사는 삶에 봉사함으로써 유용(nutzen)하기도 하지만, 삶을 잠식할 정도로 넘치면 해롭다(nachtheil)고 주장합니다. 니체는 역사의 과잉이 삶에 해를 끼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지, 역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비역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은 한 개인이나 한 민족 그리고 한 문화의 건강에 똑같이 필요하다"(294쪽), "역사의 과잉은 살아 있는 것에 해를 끼친다"(301쪽) 명제를 증명합니다. 니체에게는 언제나 삶이 우선이었던 것입니다.

"순간의 말뚝"에 매여 "비역사적"으로 사는 동물은 기억의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삽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인간은 동물이 부럽지만 동물처럼 기억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한 선생님은 동물처럼 살고는 싶지만 동물은 되기 싫어하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한 니체가 그립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기억으로 사는 것 같지만, 더 원초적이고 중요한 능력은 망각입니다. 인식은 망각과 기억으로 구성됩니다. 망각 없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보르헤스의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불면과 되새김질만으로 생을 보냅니다. 우리의 역사 교육대로라면 역사는 굉장히 순수하고 객관적인 어떤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기록한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은 것 그리고 지우고 싶은 것을 편집한 것이 바로 역사입니다. 이렇게 역사와 관계하는 방식을 니체는 기념비적, 골동품적, 비판적 역사로 나눕니다. 이 방식들은 모두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 나름의 과잉들이 삶을 황폐화시키기도 합니다. 니체는 역사적인 것, 비역사적인 것, 초역사적인 것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건의 유일한 조건, 즉 행위자의 영혼 속에 있는 저 맹목성과 부당성을 인식(297)”하는 관점을 초역사적이라 했습니다. 주로 논의 되었던 것은 초역사적인 것이 가능한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초역사적인 것에 대한 질문은 Q&A 시간에 채운샘에게 선물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니체가 바라보는 역사란 무엇인가? 왜 이 시점에서 역사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가? 역사는 삶을 위해 필요한데, 오히려 역사(학문, 지식, 교양)가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보여주려 합니다. 니체가 글을 쓰던 시절은 헤겔 역사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이고 과학과 여러 학문분야들이 끝없는 지식탐구에 몰입하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진리탐구라는 깃발 아래 끝없이 땅을 파가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에 학문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도 중요하지만, 니체가 역사라는 것을 걸고 글을 썼다는 것은 역사가 바로 기억과 망각의 조형이고, 역사를 가지고 삶을 어떻게 겪어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다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역사를 지식이나 학문으로 대치해서 읽어서 ‘역사’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유독 니체가 꼬집어서 역사를 언급했다는 선생님들의 의견대로 역사 자체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요래서~ 같이 하는 공부가 좋습니다.

니체가 지적한 역사 과잉의 첫 번째 해로움 – 외면과 내면의 대립으로 인한 약한 인격으로 논의가 넘어갔습니다. 현대인들은 넘쳐나는 지식을 내면에 쌓아놓고 내면성이라고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것은 행위나 삶으로 드러나는 공부가 아닌 그저 쌓기 위한 공부입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살아가다보니 둥글둥글해지고 작아지고 마침내 자신의 본성이나 기질은 모두 사라집니다. 결국 자기 삶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검색엔진에 끊임없이 물어보고 날라 오는 광고들을 클릭하다보면 자신의 선택권이나 생각할 힘은 점점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니체의 문제의식은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역시나 반짞 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반시대적입니다.

니체는 늘 난해하지만, (감격에) 벅차서 두 번 읽을 수 없었다는 선생님(그래서 내용 이해는 안된다고 ^^), 다음 책을 빨리 읽고 싶으셔서 진도 빼자는 선생님, 저처럼 아직 감 못 잡는 사람도 니체가 점점 우리를 잠식하고 있다는 느낌은 듭니다. 다음 시즌도 같이해요!!!

 

 
전체 3

  • 2017-04-09 19:09
    '니체가 점점 우리를 잠식하고 있다는 느낌'! 꼭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항상심이 없는 저는 니체 읽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가도 때로는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매주 넘치는 열기를 보여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지치지 않게 계속 가는 것 같습니다. 다음 시즌도 다다음 시즌도 같이해요ㅎㅎ

  • 2017-04-10 13:25
    막막하고 답답해서 걱정이 산더미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시즌을 끝냈다는 것이 새삼스레 놀랍네요. 선생님들 덕분에 더듬더듬이나마 철학책을 다 읽어보네요ㅠ 반짞반짞 빛나는 니체의 문제의식을 다음 학기에도 어어가며 따라가보아요. 한학기 수고많으셨어요! 이제 기다리고기다리던 질문과 강의 시간~

  • 2017-04-12 16:45
    오~~ 기억이 나네요! 기억이!! 읽는 족족 내용이 들어오네요^^ 한 번 읽고도 두번 읽고도 모르겠음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인듯 합니다.
    그러나 쌤들의 후기로 기억이 난다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다음 시즌에도 뵈어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