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태백 1~7, 9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5-10 15:27
조회
272
170430/170507 격몽스쿨 복습

1. 子曰 泰伯 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태백은 그야말로 지극한 덕이라고 할 수 있구나. 세 번 사양했는데도 백성들이 그를 칭송할 수 없었다.”

泰伯 周大王之長子 至德 謂德之至極 無以復加者也 三讓 謂固遜也 無得而稱 其遜隱微 無迹可見也 蓋大王三子 長 泰伯 次 仲雍 次 季歷 大王之時 商道浸衰 而周日彊大 季歷 又生子昌 有聖德 大王 因有翦商之志 而泰伯不從 大王遂欲傳位季歷 以及昌 泰伯知之 卽與仲雍 逃之荊蠻 於是 大王乃立季歷 傳國至昌 而三分天下 有其二 是爲文王 文王崩 子發立 遂克商而有天下 是爲武王 夫以泰伯之德 當商周之際 固足以朝諸侯有天下矣 乃棄不取 而又泯其迹焉 則其德之至極 爲如何哉 蓋其心 卽夷齊즢馬之心 而事之難處 有甚焉者 宜夫子之歎息而贊美之也 泰伯不從 事見春秋傳
태백은 주나라 태왕의 장자다. 至德은 덕이 지극하여 더할 나의 없는 것을 말한다. 세 번 사양한 것은 고집스럽게 사양한 것이다. 칭송할 수 없다는 것은 겸손하게 사양함이 은미하여 자취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태왕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장자는 태백 그 다음은 중옹, 그 다음은 계력이었다. 태왕 시기의 상나라는 떨어지고 쇠하였고 주나라는 날로 강대했다. 계력은 또한 아들 창을 낳았는데 성덕聖德이 있었다. 태왕은 상나라를 멸망시킬 뜻이 있었으나 태백이 따르지 않았다. 태왕은 마침내 계력에게 왕위를 전하여 창에게 이르도록 하고자 했다. 태백은 이것을 알고 중옹과 도망쳐 형만으로 갔다. 그러자 태왕은 계력을 세워 나라를 이어받게 해 창에게 이어지게 하였으니 천하를 셋으로 나누었을 때 그 둘을 가졌으니 그가 바로 문왕이다. 문왕이 죽자 아들 발이 일어나 마침내 상나라를 이기고 천하를 소유하였으니 이가 무왕이다. 태백의 덕이 상나라와 주나라 교체기에 이르러 진실로 제후들의 조회를 받을만 했고 천하를 소유할만 했으나 버리고 취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 자취가 눈에 보이지 않게 했으므로 그 덕의 지극함이 이와 같음이 어떠하겠는가. 그 마음은 백이숙제가 무왕의 말고삐를 당기던 것과 같았겠으나 일의 어려움은 그것보다 심하다. 마땅히 공자께서 탄식하며 찬미하신 것이다. 태백이 부왕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것은 <태백>에 나와 있다.

2. 子曰 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葸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수고롭고 신중하면서도 예가 없으면 비굴하고 용감하면서도 예가 없으면 난을 일으키며 정직하면서 예가 없으면 깐깐하다.

葸 畏懼貌 絞 急切也 無禮則無節文 故 有四者之弊
시(葸)는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교(絞)는 급하고 절박한 것이다. 예가 없으면 절문이 없으므로 네가지 폐단이 있다.

君子篤於親 則民興於仁 故舊不遺 則民不偸
군자가 친척들에게 돈독하면 백성들이 仁한 마음을 내며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야박하지 않다.

君子 謂在上之人也 興 起也 偸 薄也 張子曰 人道 知所先後 則恭不勞 愼不퓲 勇不亂 直不絞 民化而德厚矣 吳氏曰 君子以下 當自爲一章 乃曾子之言也 愚按 此一節 與上文不相蒙 而與首篇謹終追遠之意 相類 吳說近是
군자는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자리한 사람이다. 興은 일어나는 것이다. 偸은 야박함이다. 장자가 말했다. 사람의 도는 선후를 알게 되면 공손하고 수고롭지 않으며 신중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용감하면서도 어지럽지 않고 정직하면서도 깐깐하지 않으니 백성들이 교화되어 덕이 후해진다. 오씨 말하길 “군자” 아래로는 마땅히 스스로 한 장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증자의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한 절은 위 문장과 서로 연관되지 않으니 학이장의 ‘謹終追遠’의 뜻과 서로 유사하니 오씨의 설이 사실에 가깝다.

3.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증자가 병에 걸리자 제자들을 불러 말했다. “이불을 걷고 나의 손발을 열어보아라. 시에서 말하기를 전전긍긍하여 깊은 연못 가까이에 임하듯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과 같이 하라고 했으니, 이제야 내가 그런것에서 면한 것을 알았구나 제자들아.”

啓 開也 曾子平日 以爲身體受於父母 不敢毁傷 故 於此 使弟子開其衾而視之 詩 小旻之篇 戰戰 恐懼 兢兢 戒謹 臨淵 恐墜 履氷 恐陷也 曾子以其所保之全 示門人 而言其所以保之之難如此 至於將死而後 知其得免於毁傷也 小子 門人也 語畢而又呼之 以致反復丁寧之意 其警之也深矣 程子曰 君子曰終 小人曰死 君子保其身以沒 爲終其事也 故 曾子以全歸爲免矣 尹氏曰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曾子臨終而啓手足 爲是故也 非有得於道 能如是乎 范氏曰 身體 猶不可虧也 況虧其行 以辱其親乎
계(啓)는 여는 것이다. 증자는 평소에 신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으로 여겨 감히 훼손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기서 제자들로 하여금 이불을 열어 그것을 보인 것이다. 시는 소민편이다. 戰戰은 두려워함이고 兢兢은 경계하고 삼가는 것이다. 연못에 임해서는 떨어질까 두려워하고 얼음을 밟으면서는 빠질까 두려워한다. 증자는 온전히 보전한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어 보전하는 것의 어려움이 이와 같아 죽음에 이른 다음에야 그 훼손되는 것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小子는 문인들이다. 말을 다하고 또 그들을 불러 반복하여 절실한 뜻을 다한 것이니 그 경계함이 깊다. 정자 말씀하셨다. 군자의 죽음을 終이라고 하고 소인의 죽음을 死라고 한다. 군자는 몸을 보전하고 죽으니 그 일을 끝맺은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증자가 몸을 보전하고 돌아가면서 면한다고 여긴 것이다. 윤씨 말했다. 부모가 이 몸을 온전히 낳아주었으니 자식은 온전히 하여 돌아간다. 증자가 임종하며 이불을 걷고 손과 발을 보여주었음은 이 때문이었다. 도를 터득함에 있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았겠는가. 범씨 말했다. 신체도 오히려 훼손할 수 없는데 하물며 행실로 그 부모를 욕되게 할 수 있겠는가.

4. 曾子有疾 孟敬子問之
증자가 병에 걸리자 맹경자가 병문안을 왔다.

孟敬子 魯大夫仲孫氏 名捷 問之者 問其疾也
맹경자는 노나라 대부이며 중손씨이다. 이름은 첩이다. 問은 그 문병이다.

曾子言曰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에 其言也善
증자가 말했다. “새가 죽을 때 그 울음소리가 슬프며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선하다.”

言 自言也 鳥畏死 故 鳴哀 人窮反本 故 言善 此 曾子之謙辭 欲敬子知其所言之善而識之也
말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새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다하면 근본으로 돌아가니 그러므로 말이 선하다. 이것은 증자가 겸손하게 말한 것이니 경자로 하여금 그 말이 선한 것임을 알아 기억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 籩豆之事則有司存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것이 세 가지이니 용모를 움직일 때는 사나움과 태만함을 멀리하고 얼굴색을 바로 할 때는 미덥게 하며 말소리와 숨소리를 낼 때는 비루하고 위배되는 것을 멀리한다. 제기를 다루는 일 같은 것은 담당자가 따로 있다.

貴 猶重也 容貌 擧一身而言 暴는 粗厲也 慢 放肆也 信 實也 正顔色而近信 則非色莊也 辭 言語 氣 聲氣也 鄙 凡陋也 倍 與背同 謂背理也 籩 竹豆 豆는 木豆 言道雖無所不在 然 君子所重者 在此三事而已 是皆修身之要 爲政之本 學者所當操存省察 而不可有造次顚沛之違者也 若夫쮹豆之事 器數之末 道之全體固無不該 然 其分則有司之守 而非君子之所重矣 程子曰 動容貌 擧一身而言也 周旋中禮 暴慢斯遠矣 正顔色 則不妄 斯近信矣 出辭氣 正由中出 斯遠鄙倍 三者 正身而不外求 故 曰쮹豆之事則有司存 尹氏曰 養於中 則見於外 曾子蓋以修己爲爲政之本 若乃器用事物之細 則有司存焉
귀하다는 것은 중한 것이다. 용모는 온 몸을 들어 말한 것이다. 暴는 거칠고 사나운 것이다. 慢은 방자한 것이다. 信은 성실한 것이니 안색을 바르게 할 때 미덥다는 것은 얼굴색을 꾸미는 것이 아니다. 辭는 말이다. 氣는 소리와 숨이다. 鄙는 비루한 것이고, 倍는 背와 같으니 이치에 위배되는 것이다. 籩은 대나무 제기이고 豆는 나무 제기이다. 도가 있지 않는 데가 없으나 군자가 중히 여기는 것은 이 세 가지 뿐이다. 이는 모두 수신의 요체이며 정치의 근본이니 배우는 자는 마땅히 보존하고 성찰하여 한순간도 떠나서는 안 된다. 변두의 일은 가짓수를 따지는 지엽적인 것이니 도의 전체는 진정 다하지 않음이 없으나 그 직분은 관리들이 지켜야 하는 것이지 군자가 중히 여기는 바가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용모를 움직이는 것은 온몸을 들어 말씀하신 것이니 행실 중 예에 맞지 않으면 사나움과 나태함이 멀어질 것이다. 안색을 바르게 하면 거짓되지 않으므로 미덥게 될 것이다. 소리를 냄에 바로 마음에서 나온다면 비루함과 위배되는 것에서 멀어질 것이다. 세 가지는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며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변두의 일은 담당자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윤씨 말했다. 심중에 마음 속으로 기르면 밖으로 나타난다. 증자는 자신을 닦아 정치를 하는 근본으로 삼았으니 변두와 같은 기물의 일은 소소하여 담당자가 있는 것이다.

5. 曾子曰 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 吾友嘗從事於斯矣
증자가 말했다.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묻고 많이 알면서도 적게 아는 이에게 묻고 있어도 없는 것처럼 가득해도 비어 있는 것처럼 하며 자신에게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는 것, 이전 내 벗이 그런 일에 따랐었다.
校 計校也 友 馬氏以爲顔淵 是也 顔子之心 惟知義理之無窮 不見物我之有間 故 能如此 謝氏曰 不知有餘在己 不足在人 不必得爲在己 失爲在人 非幾於無我者 不能也

교(校)는 계산하여 따지는 것이다. 벗은 마씨가 안연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옳다. 안연의 마음은 오직 의리의 무궁함을 알아 사물과 나 사이의 간단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와 같을 수 있었다. 사씨가 말했다. 남은 것이 자신에게 있고 남에게 부족함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반드시 잘함이 자신에게 있고 잘못이 남에게 있다고 여기지 않아서 무아의 경지에 가까운 자가 아니라면 능할 수 없다.

6. 曾子曰 可以託六尺之孤 可以寄百里之命 臨大節而不可奪也 君子人與 君子人也
증자가 말했다. “어린 임금을 맡길만하고 백리의 명을 부탁할 만하며 큰 일에 임해서 그 절개를 빼앗을 수 없다면 군자인가, 군자이다.”

其才可以輔幼君 攝國政 其節 至於死生之際而不可奪 可謂君子矣 與 疑辭 也 決辭 設爲問答 所以深著其必然也 程子曰 節操如是 可謂君子矣
그 재주가 어린 임금을 보필할 수 있고 그 절개가 죽고 사는 지경에 이르러도 빼앗을 수 없다면 군자라고 할 수 있다. 與는 의문사이다. 也는 종결사이다. 가설하여 문답한 것은 그것이 반드시 그렇다는 것을 깊게 드러낸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절개와 지조가 이와 같다면 군자라고 할 수 있다.

7.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증자가 말했다. 선비는 넓고 굳세니 책임이 무겁고 도는 멀기 때문이다.

弘 寬廣也 毅 强忍也 非弘 不能勝其重 非毅 無以致其遠
弘은 너그럽고 넓은 것이다. 毅는 강하고 인내하는 것이다. 넓지 않다면 그 중함을 감당할 수 없고 굳세지 않으면 먼곳에 이를 수 없다.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어짊을 자기 임무로 삼으니 막중하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야 끝나니 멀지 않겠는가.

仁者 人心之全德 而必欲以身體而力行之 可謂重矣 一息尙存 此志不容少懈 可謂遠矣 程子曰 弘而不毅 則無規矩而難立 毅而不弘 則隘陋而無以居之 又曰弘大剛毅然後 能勝重任而遠到
仁은 사람 마음의 온전한 덕이니 반드시 신체로써 힘써 행하고자 한다면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한 숨이 아직 있다면 이 뜻이 조금이라도 해이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멀다고 할 수 있다. 정자가 말했다. 너그럽기만 하고 굳세지 못하면 기준이 없으니 서기 어렵고 굳세기만 하고 너그럽지 못하면 좁고 비루하여 인에 거할 수가 없다. 또 말했다. 너그럽고 크게 강한 연후에 막대한 책임을 감당하고 멀리 이를 수 있다.

9. 子曰 民 可使由之 不可使知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은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알게 할 수는 없다.

民 可使之由於是理之當然 而不能使之知其所以然也 程子曰 聖人設敎 非不欲人家喩而戶曉也 然 不能使之知 但能使之由之爾 若曰聖人不使民知 則是後世朝四暮三之術也 豈聖人之心乎
백성은 당연한 도리에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이유를 알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성인이 말씀하신 가르침은 사람들 집집마다 깨우쳐 주려고 하지 않으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 알게 할 수는 없고 단지 따르게 할 수는 있다. 만약 ‘성인이 백성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려 했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후세를 조삼모사식으로 속이는 것이니 성인의 마음이겠는가.

기나긴 술이편에 비하면 태백은 매우 짧습니다. 증자의 말이 초반에 몰아치는 것을 미루어 보아 증자 학파가 편집한 장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논어>는 결코 공자님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증자는 이름난 효자였죠. 그가 자기 몸을 보전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면서 그 임무에서 놓여났다는 것에 후련함을 교차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인상적이에요. 군자가 죽을 때는 ‘임무를 마치다’라는 표현을 한다는 주석의 말도 재밌고요. 죽음을 어떤 일을 마칠 때의 시원섭섭함과 뿌듯함으로 표현하는 경지도 있다는 게 죽음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하도록 해주네요.

그런데 술이장은 아직 끝나지 아니하였습니다...다음시간은 채운쌤 출장 관계로 우리끼리 복습!! 술이장을 다시 읽으면서 필기시험(!!) 예상문제를 뽑아보아요^^

간식은 수정쌤

다음 시간에 만나요~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