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니체 5.29 후기 및 6.5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7-06-03 21:48
조회
226
이번 주 우리가 읽은 부분에서 니체가 주목한 ‘인간적인 것’은 ‘도덕’이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2장의 제목은 「도덕적 감각의 역사에 대하여」입니다. 「도덕적 감각의 역사에 대하여」라는 이 제목은 사실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여기서 니체는 미리 주어진 어떤 것으로서의 도덕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에, “심리적인 관찰”을 통해 감각의 차원에서 도덕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논하고 있습니다. 알렉스 샘은 니체가 ‘위대한 심리학자’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씀해주셨고, 현정샘도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아는 것이 곧 인간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덧붙여주셨습니다.

1장이 그랬던 것처럼, 2장 또한 굉장히 파편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니체는 어떤 절에서 도덕적 감각의 기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것처럼 하다가도 다음 절로 넘어가면 약간은 핵심에서 벗어난 것 같은 논의를 펼칩니다. 아마도 파편들을 조립할 능력이 없는 탓에 이렇게 보이는 것이겠죠. 이러한 절들 사이의 불연속은 물론 당시 니체의 건강 탓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 니체적이며 흥미로운 형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논리적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각 절에 똑같이 배분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읽어내는 관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니체가 조형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도덕적 감각에 대해서 니체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분명 니체는 도덕을 풍자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니체는 인간적인 것들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것인 도덕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삶의 짐을 덜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류를 심리학적으로 해부하는 일이 유발하는 불쾌감과 그것이 야기하게 될 수 있는 위험성 때문에 철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학문들은 이를 회피해왔다는 것이 니체의 진단입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것들에 관한 해부는 중요한 학문들에서가 아니라 “재치 있는 인기 전술을 위해 온갖 희생을 다하는 데 습관화되었던 특정 사회 계층”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도덕을 ‘비이기적인 행위’와 등치시켜왔던 것이죠.

그러나 니체가 보기에 ‘도덕적 감각(=“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감각”)’은 자유의지에 대한 가상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니체의 파격적인 주장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행동과 본질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죠. ‘이는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을 대체하는 니체 자신의 믿음이 아닌가’라는 질문도 있었고,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도대체 삶에 어떻게 적용시켜야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토론을 통해 어떤 결론에 이르고자 노력했지만, 사실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해야 하는 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무책임함과 무죄함”이라는 니체의 명제도 바로 그러한 차원에 속하는 것 같구요.

저는 여기서 니체가 말하고 있는 무책임성이 『반시대적 고찰』 2권의 구도로 보자면 ‘초역사적 감각’에 해당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의 공과 과를 논한 그 논문에서 니체는 역사에 대한 조형력을 갖기 위해서는 역사적 감각과 비역사적 감각, 초역사적 감각이 모두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죠. 이때 초역사적 감각이란 역사성이 모두 무화되는 차원을 말합니다. 니체가 도덕에 대해서 무책임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의 맥락인 것 같습니다. 본질과 행위의 무책임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선과 악은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기껏해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무의미의 차원을 회피하지 않을 때에만 우리는 도덕을 믿는 ‘도덕적 인류’에서 도덕에 대해 조형력을 갖는 ‘현명한 인류’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미경샘은 ‘파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니체가 파괴하고 싶어 했던 것은 무엇보다 ‘위계’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니체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자의적인, 인간적인 위계를 해체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위한 해체일까요? 아마도 이는 모든 위계를 허구적인 것으로 여기고 부정하기 위한 파괴가 아니라, 위계가 만들어낸 가치판단의 가치를 묻고 능동적으로 다른 위계를 생산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니체의 파괴는 생산을 함축하고 있는 파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니체가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절들은 흥미롭기 그지없었습니다. 특히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인간의 심리를 ‘지배욕’의 차원에서 설명한 것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 외에도 도덕은 인간이 자신을 분할할 수 있는 것으로 다룬 결과라는 설명, 도덕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좋은 기억력’과 ‘강력한 상상력’에 달려있는 것이라는 분석 등도 재밌었죠. 저는 그 중에서도 74절이 압권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공부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써 붙여놓고 싶은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그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일상의 척도-극단적인 행위를 허영으로, 평범한 행위를 습관으로, 그리고 소인배적인 행위를 공포 때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거의 잘못 판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다음 주 발제는 경아 샘, 간식은 계숙 샘과 성희 샘이 맡아주셨습니다~ 다음 주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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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05 23:07
    건화샘~ 너무 어려운 후기로구만요. 니체의 책을 다시 읽는 듯 ㅠ..ㅠ 좀 쉽게 읽을 방법 따위는 없것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