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자한 1~4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7-08 21:08
조회
125
무도한 시간에 죄송합니다ㅠㅠ 이번 시간부터는 격몽스쿨 자한편입니다. 이익과 천명과 仁을 드물게 말씀하신 공자님!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仁을 말씀하신 구절을 떠올려보니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큰 도는 함부로 말씀하시지 않은 공자님의 신중함이 보입니다^^

 
170702 격몽스쿨 복습


1. 子 罕言利與命與仁

공자께서는 이익와 명(命)과 인(仁)을 드물게 말씀하셨다.


罕 少也 程子曰 計利則害義 命之理微 仁之道大 皆夫子所罕言也

한(罕)은 적은 것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이익을 따지면 의를 해치며 천명의 이치는 너무나 은미하며 인(仁)의 도(道)는 크다. 모두 공자께서 드물게 말씀하신 것이다.”


2. 達巷黨人曰 大哉 孔子 博學而無所成名

달항당의 사람이 말했다. “위대하구나 공자여, 넓게 배웠으나 이름을 낸 것이 없구나.”


達巷 黨名 其人姓名 不傳 博學而無所成名 蓋美其學之博而惜其不成一藝之名也


달항(達巷)은 마을 이름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넓게 배웠으나 이름이 낸 것이 없다는 것은 그 학문이 넓은데도 한 가지 분야에 이름을 내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긴 것이다.


子聞之 謂門弟子曰 吾何執 執御乎 執射乎 吾執御矣

공자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어떤 일을 할까. 말을 몰까 활을 쏠까. 나는 말을 몰아야겠다.”


執 專執也 射御 皆一藝 而御爲人僕 所執尤卑 言欲使我何所執以成名乎 然則吾將執御矣 聞人譽己 承之以謙也 尹氏曰 聖人 道全而德備 不可以偏長目之也 達巷黨人 見孔子之大 意其所學者博 而惜其不以一善得名於世 蓋慕聖人而不知者也 故 孔子曰 欲使我何所執而得爲名乎 然則吾將執御矣

집(執)은 전문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활 쏘고 말 모는 것은 모두 한 가지 기예인데, 말을 몬다는 것은 남의 종복이 되는 것이어서 일하는 것이 더욱 비천하다. ‘나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해서 이름을 나게 할까. 그렇다면 나는 말을 몰아야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남이 자신을 칭찬하신 말을 듣고 겸손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윤씨가 말했다. 성인은 도가 온전하고 덕을 갖추고 있어서 치우친 장점으로는 그를 지목할 수 없다. 달항당 사람은 공자의 위대함을 보고 생각하기를 그 배운 바는 넓지만 그가 한 가지 잘함으로 세상에 이름을 얻지 못한 것을 애석해 한 것이다. 성인을 흠모하였으나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해서 이름을 나게 할까. 그렇다면 나는 말을 몰아야겠다’고 하신 것이다.


3. 子曰 麻冕 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베 면류관이 예이지만 지금은 생사로 만든 관을 쓰니 검소하다. 나는 사람들을 따르겠다.”


麻冕 緇布冠也 純 絲也 儉 謂省約 緇布冠 以三十升布爲之 升八十縷 則其經二千四百縷矣 細密難成 不如用絲之省約

삼베면은 검정 삼베로 만든 치포관(緇布冠)이다. 준(純)은 생사다. 검소하다는 것은 생략을 말한다. 치포관은 30승의 베로 만드는데 1승을 80올이니 그 날실이 이천사백올이다. 가늘어 만들기가 어려우니 생사를 사용하면 생략하는 것이 낫다.


拜下禮也 今拜乎上 泰也 雖違衆 吾從下

“당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 예의지만 지금은 당 위에서 절하므로 교만하다. 비록 사람들과 어긋난다 하더라도 나는 아래에서 절하겠다.”


臣與君行禮 當拜於堂下 君辭之 乃升成拜 泰 驕慢也 程子曰 君子處世 事之無害於義者 從俗可也 害於義 則不可從也

신하가 군주와 예를 행할 때 항상 당 아래에서 절을 했으며 군주가 그것을 사양하면 이내 올라와서 절을 끝냈다. 태(泰)는 교만함이다. 정자 말씀하셨다. “군자가 처세함에 일이 의리를 해치지 않으면 속인들을 따르는 것이 가능하다. 의리에 해로우면 따를 수 없다.


4.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공자께서는 네 가지가 없으셨다. 사사로운 뜻이 없으셨고,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없으셨고 고집함이 없으셨고 자기라고 여기는 것이 없으셨다.


絶 無之盡者 毋 史記 作無 是也 意 私意也 必 期必也 固 執滯也 我 私己也 四者相爲終始 起於意 遂於必 留於固 而成於我也 蓋意必 常在事前 固我 常在事後 至於我又生意 則物欲牽引 循環不窮矣 程子曰 此毋字 非禁止之辭 聖人絶此四者 何用禁止 張子曰 四者 有一焉 則與天地不相似 楊氏曰 非知足以知聖人 詳視而默識之 不足以記此

절(絶)은 전혀 없는 것이다. 무(毋)는 <사기>에는 무(無)라고 되어 있으니 이것이다. 의(意)는 사사로은 뜻이다. 필(必)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고(固)는 고집하는 것이고 아(我)는 사사로운 자신을 뜻한다. 이 네 가지는 서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일어나니, 의(意)가 일어나면 필(必)이 따르며 고집하면서 자기 자신을 만든다. 의(意)와 필(必)은 항상 일이 생기기 전에 있고 고(固)와 아(我)는 항상 일이 일어난 후에 있다. 아(我)에 이르게 되면 의(意)가 생기니 물욕이 나를 견인하니 이 순환이 끝남이 없다. 정자 말씀하셨다. “무(毋)는 자발적으로 금지하는 말이 아니다. 성인은 에 네 가지가 전혀 없으시니 어찌 금지할 필요가 있겠는가.” 장자가 말했다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있으면 천지와 서로 같지 못하다.” 양씨가 말했다. “앎이 족히 성일을 알 수 있고 상세하게 살펴보아 묵묵히 그것을 알지 못하면 이것을 기록하기에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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