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10/19 카프카 단편 세미나 공지

작성자
이응
작성일
2017-10-13 19:26
조회
97
이번 시간은 카프카의 단편 중 ‘법 시리즈’를 읽었더랬죠.

<유형지에서>, <신임변호사>, <법 앞에서>, <만리장성의 축조>, 이 네 작품은 카프카가 생각하는 ‘법’의 여러 단면들을 보여주는 듯해요.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들이지만 공통적으로 ‘관료주의’나 ‘법’, ‘법의 근처에서 법을 연구하는 사람, 연구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만리장성의 축조>에서 사람들은 아무런 질문 없이 장성 짓는 일에 참여합니다. 만리장성은 원래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지어지는 것입니다만, 오랜 세월동안 부분 부분 지어지고 있기때문에 나라를 수비하는 데에 별 효용은 없습니다. 게다가 처들어올거라는 북방민족을 본 적도 없고 예술가의 작품 속에서나 볼 뿐이지요. 그들이 짓고 있는 것은 하나의 완벽한 장성이 아니라 띠엄띠엄 지어지는 장성들, 혹은 장성들의 틈새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럼에도 왜 많은 사람들은 이런 거대한 규모의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상한건 장성이 부분적으로 축조되고 있다는 사실보다, 이런 공허한 작업에 사람들이 일생을 바쳐 매달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긴 인생을 바쳐도 이 거대한 작업의 완성된 모습은 절대 볼 수 없고, 누구도 이 작업의 애초 목적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은 장성의 기능공으로 살아갈 뿐이지요.

카프카의 말대로 인간은 어떤 속박도 견디어내지 못하는 ‘근본이 경박스럽고 먼지의 천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떠돌아다니는 것이 더 본성에 맞는 일일텐데 장성을 축조하는 사람들은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애매한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착취하고, 천성을 해치는 일에 몰두합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걸까요. 왜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일에 자신을 쏟고 있는 것일까요.

거대한 규모 안에 내가 들어가있다는 안정감, 이게 하나의 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토론에서는 이것이 인간의 (실체가 없는걸 욕망하는)헛된 욕망과 관료주의와 엮어 토론해보는 시간이었지요. 사람들이 무언가를 지키려고 할 때에는 ‘언어’가 동반됩니다. 이 민족과 저 민족을 가르는 배타 의식도 모두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지요. 그런데 그 언어라는 것, 높고 넓게 축조되고 있는 성벽이란 것은 구멍을 남깁니다. 아무리 막으려해도 어딘가는 새어지고 어딘가는 허물어지지요. 이런 엉성함을, 그 공허한 추상성을 사람들은 실체라 믿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법, 시스템을 믿지요. 그런데 시스템이란 것에는 중심이 비어있습니다. 가령 법을 제정하거나 명령하는 황제가 있다해도 그것은 기호로 존재할 뿐, 그 자리에는 누가 들어가도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명령의 중심에는 아무도 없음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카프카가 생각한 관료주의란 무엇이었을까요? 명령의 발신자가 없어도 움직이기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체계? 혹은 명령에 대한 판단이나 진위 여부를 따지지 않고 그 명령을 실행하는 사람들로 인해 돌아가는 세계? 카프카는 이 단편들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언어에, 문서에 매여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거 같지만 실은 언어를 쫓아다니고 문서에 적혀진 것을 실행하며 사는 존재가 아닐까.


그런점에서 카프카 작품 속 인물들이 보이는 ‘연구하는 태도’는 흥미롭습니다. <법 앞에서>의 시골사람은 법으로 통하는 문 주변을 서성이며 문지기를 연구합니다. 거대한 법 체계를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지기의 얼굴에 난 수염, 옷에 있는 벼룩 등 아주 미세하고 작은 것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작은 것에 주목하고, 작은 거리감을 만들어내며, 자기 앞에 있는 단 하나의 문을 닫히게 만듭니다. 어쩌면 시골사람은 문 너머로 통과하려는 게 아니라, 법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을 정지시키거나 고장내고 있는게 아닐까요.

카프카에게 있어 연구한다는건, 항상 내부에서 일어납니다. 저 멀리로 제 몸을 피신시키고 하는 일이 아닌게지요. 시스템 안쪽에서 시스템과 거리를 두는 일, 시스템을 관찰하는 일, 그리고 그런 관찰을 통해 시스템(혹은 기계)의 아주 작은 부분을 고장내고 돌아다니는 일. 그것이 카프카의 인물들이 벌이는 전술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시간 후기와 다음시간 간식은 수경샘~

읽어올 부분은 단편집에 실린 <시골의사(1919)>편입니다. 발제는

시골의사, 가장의 근심, 열한 명의 아들, 형제살해 (가족 이야기) --- 지니샘, 이응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 성연샘

싸구려 관람석에서, 재칼과 아랍인, 광산의 방문객, 이웃마을, 황제의 칙명, 어떤 꿈 --- 수경샘

보영은 마음에 드는 작품 아무거나^^ 택해서 발제해주시면 되어요.


쌀쌀해졌네요. 한주간 감기 조심하시고, 다음 시간에 만나요~
전체 3

  • 2017-10-14 15:01
    먼저 만리장성을 쌓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하늘에 가 닿는 바벨탑을 올리기. 인류의 저 위대한 목표란 '안정감'과 '탈출욕' 사이에서 구축된 것이었습니다. 매번 다르지만, 이번 주에는 더욱 재미있었던 <유형지에서>! 다음주에도 각자 어떤 화두를 안고 만나게 될지 기대됩니다! ^^

  • 2017-10-16 09:50
    드디어 드디어! 저도 카프카님과 재회를! 다음주에 뵈어요 ^^

    • 2017-10-17 09:51
      와웅! 보영 기다렸어요~~ 어솨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