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수중전 시즌 3 역사강의 2강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3-24 11:44
조회
95
180321 수중전 후기

 

 

이번 시간 ‘수중전’에서는 <산해경>과 <박물지>에 대한 강의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괴력난신 대방출’! ‘괴력난신怪力亂神’은 <논어>에 있는 말로, 괴이하고 억지로 힘을 쓰고 어지럽고 신이한 것을 말하느니 항상됨(常), 덕(德), 다스려짐(治), 인간(人)의 일에 더 주력하라는 공자님 말씀이 이었는데요. 문제는 이런 ‘어지러움을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춘추전국시대에는 통했을지 모르겠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나라가 세워졌다 망하는, 이미 제국의 통일과 분열을 겪고 난 다음 세대에게는 오히려 ‘괴력난신’이 더 와 닿았다는 것이죠. 우쌤은 이 시대를 ‘특이(特異)’로 정의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른바 ‘B급의 시대’, 'A급‘의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세계가 아닌 특이하고 이상하고 괴이한 것들에 더 관심을 주는 시대인 것입니다.

 

<산해경>과 <박물지>는 이러한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행했다고 합니다. 원래 <산해경>은 그 자체로 수수께끼의 책입니다. 기원전 3세기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책에 대해서는 지리지인지 신화담인지,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책인지 아니면 무속인들이 사용하던 책인지, 혹은 그림책은 아니었는지 등등 설이 분부합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산해경>은 그림이 먼저라는 설도 나왔지요. 괴이한 생물을 그린 그림들이 있고, 그것을 고증하는 글이 덧붙여졌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산해경>을 보는 시선은 1. 지리지, 2. 신화(이야기), 3. 도상학 서적으로 보는 견해로 나눌 수 있습니다. 뭐가 맞는지는 알 수 없지요. <산해경>은 정본을 말하기도 어려운 책이니까요. 저자가 한 사람인 것 같지도 않고 남방의 비주류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지요.

 

<산해경>은 이후 명, 청 시대에 삽화가 실린 책의 형태로 출판되어 팔렸다고 합니다. 책의 묘사를 토대로 그린 그림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겠죠. <산해경>에는 온갖 ‘신비한 동물’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한 새, 날개달린 물고기, 호랑이의 이빨과 표범의 꼬리를 가진 사람 등등...각 동물의 특징을 따서 분해하고 조립하는 상상력은 정말이지 무궁무진합니다. 도연명은 <산해경>을 읽다보면 ‘잠깐사이에 우주를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지요.

 

<산해경>에 대해 말하자면 중요한 사람이 셋 있는데 유흠, 반고, 곽박입니다. 유흠은 전한의 충신 유향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와는 반대로 전한을 뒤집은 신왕조, 왕망의 베프였고 ‘신’나라의 문물제도를 만드는 공신이기도 했지요. 그는 <산해경> 32편을 18편으로 정리했다고 하는데, 지금 남아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황제에게 올린 표문, <상산해경표>만 남아 있지요. 그의 주장은 <산해경>이 우임금 시대에 지역 특산물을 기록한 책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유흠에게 <산해경>은 지리지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먼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까지 있는 아주 오래된 책.

 

반고는 문헌정보를 분류하는 체계를 세운 분류왕입니다ㅎㅎ 그가 쓴 <한서>의 [예문지]에서 <산해경>은 ‘수술략數術略’ 중에서도 ‘형법形法’에 속하지요. ‘수술략’은 점술에 관한 분야라는 뜻이고, 형법은 관상, 풍수, 지관 같은 형상을 보는 분야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반고도 <산해경>을 일종의 지리지로 보았던 것이죠. 유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흠은 <산해경>을 공물을 기록하는 책이라고 본 반면 반고는 각 지역의 지세를 보는, 풍수지리서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반고의 <산해경>에 대한 분류는 지금 <산해경>을 연구하는 데도 단서를 줍니다. <산해경>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 책에 그림이 있다고 기록하지 않았거든요. 그렇다면 <산해경>은 글이 먼저이고 그림은 나중에 덧붙여진 것이 맞지 않을까요? 알쏭달쏭합니다.

 

곽박은 동진의 사람으로, <산해경> 18편에 주를 달았습니다. 그는 기이한 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유선시遊仙詩’ 14수를 남길 정도로 신선세계, 이세계가 아닌 별세계에 관심이 많았고 <산해경>에 주를 단 책의 서문 <주산해경서>에도 기이한 일에 대해 긍정적인 언급을 합니다. 그는 “이상함은 결국 나에게 있는 것이지, 사물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상한 것을 받아들이는 위진남북조 시대를 보여주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제국이 분열하고 전쟁이 나는 현실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질서는 다 깨져나가는 상황에 이상하면 또 어쩔 거냐는 태도도 보이고요^^ 주로 전쟁 이후에 이런 태도가 많이 나타난다고 하네요. 신선과 노는 시, 꿈에서 노는 이야기 등등. 이런 판타지의 유행은 현실 도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전란의 시대가 되면 현실이 더 이상 현실 같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요?

 

<산해경>은 1. [산경]과 2. [해경]으로 나누어집니다. [산경]은 내륙 즉 국내 이야기고, [해경]은 경계 혹은 해외를 의미합니다. [산경]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우선 천하를 5개로 나눕니다. 남산, 서산, 북산, 동산, 중산으로 나누지요. 그리고 또 그 안에서도 남산, 남차이, 남차삼...이런 식으로 세분화해서 나누는 것이죠. 그래서 <산해경>을 지리지로 보는 연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을 중심으로 몇 리 떨어진 곳에 다른 산...이런 식으로 지리를 서술하고 있으니까요.

지리를 서술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우선 시작점으로 삼은 산 이름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곳의 나무와 광물과 풀 따위의 박물 정보를 기록하고, 서식하는 짐승, 근처의 강에 대해 기록하지요. 그리고 ‘又’가 나오면서 ‘다시 동쪽으로 370리를 가면...’하고 다음 산으로 옮겨갑니다. 기준점을 중심으로 길을 알려주니까 지금의 네비게이션 같은 구조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거리를 재는 것은 아마도 왕이 사람을 시켜 직접 걸어가게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만, 과연 어떨지? ㅎㅎ [산경]에서 중요한 것은 산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산이 얼마나 유용한가, 하는 이용利用의 관점에서 보거든요. 먹는 얘기도 많이 나오고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잘 활용해서 넉넉하게 살자는 게 기조입니다. 그래서 <산해경>을 읽다보면 신기한 동물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그 동물 맛은 어떻고 먹으면 어디에 좋고 등등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이건 제가 생각하는 ‘신기하고 이상한 것들’을 보는 태도와 다른 것 같아요. 신기하고 이상해! 그러니까 피해다니자! 이런 태도가 아니라 이렇게 희귀한 것을 어떻게 잘 이용할 것인가? 하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보이는 것 같으니까요.

[해경]은 [산경]과 전혀 다릅니다. 우선 거리를 재지 않지요. [산경]에는 나오는 제사 지내는 의식에 대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리고 ‘~라고 한다’ 라든가 ‘~이리라’ 같은 말투로, 자기가 제공하는 정보에 자신이 좀 없습니다. [산경]에 비하면 매우 간단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오직 이상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두 마리 용을 타고 다닌다~’ 같은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박물지>는 위진남북조 초기 인물인 장화가 지었습니다. 죽림칠현 중 한명인 완적의 친구이고 팔왕의 난 때 피살당했지요. ‘박물’이라고 한다면 백과사전을 떠올리기 때문에 굉장히 길고 방대할 것 같지만 <박물지> 자체는 짧고 간단합니다. 단 10권에 불과하니까요. 이에 대해 400권짜리를 진무제(사마염)가 10권으로 줄이게 했다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박물지>가 <산해경>과 통하는 점이 있다면 ‘지리략’인 1권과 외국의 풍속과 지리에 대한 내용을 담은 2권 때문입니다. ‘지리략’ 안에서도 ‘산해경에 빠진 것을 보충한다’는 말을 직접 하고 있지요. <박물지>에서 주목해서 볼 이야기는 권4와 권 5에 나오는 물리/화학(!)과 방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상과 하늘은 기운이 통한다는 사상을 토대로 단주를 태워 수은을 만든다든가 계란으로 호박을 만드는 등 마법과 연금술에 대한 이야기가 다름아닌 <박물지>에 수록되어 있지요. 거기다 조조의 의외의 면모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조가 방사에 관심이 많아 천하의 술사들을 모았다는 것은 <삼국지>를 보면 알 수 없는 이야기죠. 방사들, 그러니까 괴상하고 기이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신선과도 같이 이 세계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박물지>에 있다는 것은, 지금의 ‘지식’과는 다른 앎을 구성하고 있는 시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시간은 ‘이상함’이나 ‘지식’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갖고 있는 시대를 여행한 것 같습니다. <산해경>은 단지 신기한 이야기~ 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상상력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씹어먹으려고 하는 집념을 느꼈달까요? ㅎㅎ 다음 시간은 <고사전>에 대한 강의입니다. <고사전>은 고상한 선비(高士)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고상함’일지는, 다음시간에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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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25 19:31
    조조가 양생술에 관심이 많았고 전국에서 잘 나가는 방사 8명을 모았다는 얘기가 유독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그 8명 안에는 화타가 들어있었다는 것도 삼국지와는 달라서 재밌었습니다.
    삼국지에서 조조는 신령스런 나무를 베려고 나무에 칼을 찍었다가 나무로부터 피가 샘솟고 그 피에 적셔저서 병에 걸렸다고 하죠. 그때 화타를 불러서 진찰을 받았을 때, 화타는 머리에 풍(風)이 들었다고 머리를 도끼로 쪼개서 씻어내야 나을 수 있었다고 했었죠. 하지만 암살이라고 판단한 조조는 화타를 매질했고, 화타는 매질의 결과로 끙끙 앓다가 죽었다고 하죠. 하지만 이 얘기를 박물지를 통해서 보면, 화타는 방사였고 조조와의 관계가 어쩌다 틀어져서 죽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크~ 기존의 이야기들을 다르게 구성할 수 있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