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

수중전 시즌 3 역사강의 1강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3-16 22:04
조회
124
수중전 시즌 3가 시작됐습니다~ 우쌤은 요즘 들어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갑자기 늘어났다고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요즘 드라마에서 《별에서 온 그대》, 《도깨비》 등 외계인 같이 이질적인 존재들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하나같이 비밀스러운 존재들로 그려졌는데, 사실 고대 동양에서 사람과 귀신의 경계가 없었다고 합니다. 같이 술 마시다 서로 업어주기도 하고, 최치원은 무덤 앞에서 시를 읊다가 귀신 2명과 동침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웃긴 이야기로밖에 안 들리지만, 시대와 어떻게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을지 귀 쫑긋 세우고 들어야겠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흔히 우리가 은자(隱者)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삶을 살펴봤습니다. 저는 은자라고 하면 막연히 세상을 피해 몸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로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벼슬생활도 하면서 아주 잘 살았더라고요. 허허. 이들이 왜 은자로 불리는지, 이들의 삶이 이렇게 변했는지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이들의 시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유비, 관우, 장비가 활약한 삼국지의 시대가 바로 위진남북조시대입니다. 우쌤은 위진남북조를 제 2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많이 죽고 치열하게 싸운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양상이나 정도가 매우 다르다고 합니다. 춘추전국시대 때는 중원이라는 영역에서 한족끼리 서로 싸웠다면, 위진남북조 때는 유목민이 개입하면서 잔인함이나 치열함이 더욱 심해졌다고 합니다. 전국시대 때 몇 십만 명 죽이고, 생매장하는 것도 충격적이었는데 그보다 더 심하다면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요? 0_0

철학의 양상도 달라집니다. 춘추전국시대 때는 ‘그래도 통일이 되면’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공자를 비롯해 제자백가의 철학은 대부분 일통(一統)이 이루어지면 천하를 화평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는 기대가 있었죠. 하지만 통일 진(秦)나라를 시작으로 조씨의 위(魏)나라, 사마씨의 진(晉)나라, 유씨의 한(漢)나라를 거치면서 나라가 안정되기는커녕 더 혼란스러워지자 통일의 로망은 사라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진(秦)나라는 30년이 안 돼서 망했고, 위나라도 3대째에 망하고, 진(晉)나라도 팔왕의 난이 일어나면서 서진, 동진시대로 나뉘는 등 나라의 명맥만 겨우 유지합니다.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는 안으로 안정되면 밖으로 정벌을 나갔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전쟁은 끊인 적이 없었습니다. 대략 3세기부터 8세기까지 아싸리 난장판이 따로 없더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위진시대에서 절개를 지키고 청탁한 삶을 살았던 관리들, 이른바 청류(淸流)세력이 온갖 음모와 모함 속에서 죽어가자 지식인들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회의하고 점검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세상은 왕조만 바뀔 뿐 무도함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는 염세적인 태도를 갖게 되고, 스스로의 생존으로 좀 더 관심을 가지며 이전의 지배적 가치들로부터 벗어나 온갖 기행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이때의 선비들을 명사(名士)라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그 명사가 이때 생겨났습니다!) 명사의 중요한 덕목은 시(詩)를 잘 짓고, 술을 마시는 등 ‘얼마나 잘 노는가’라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표현한 말 중 취생몽사(醉生夢死)가 있는데 ‘술에 취해 살다가 꿈결에 죽는다’는 뜻입니다. 얼핏 알코올 중독자로 보이는 것 같아도 그 시대에 맨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만큼 고통스러웠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문화적으로도 그 이전의 지식인들과 여러 모로 구별됩니다. 사마씨의 진나라가 흉노의 침입으로 황하를 버리고 양자강 이남으로 도망치게 되는데(동진시대), 이때 형성된 것이 강남문화입니다. 처음 피난할 때는 그 지방 원주민으로부터 일전한(一錢漢), 구한(狗漢)이라 불리며 멸시받았는데 곧 돈을 벌면서 아주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왕희지와 사령운입니다. 왕희지의 기록을 보면 유상곡수(流觴曲水)란 말이 있는데, 포석정처럼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어놓고 시를 지으며 노는 것입니다. 다만 신라의 조그마한 포석정과는 그 크기를 비교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사령운은 조부가 남하하는 이민족의 침입을 막은 공로로 큰 땅을 받았는데 그 땅에 자기 별장을 지어서 은거했습니다. 하지만 은거했다는 게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을 뿐이지 별장을 짓고 파티를 열어서 사치스러움이 어마어마했다고 하네요. 이쯤 되니 제가 생각한 은자의 이미지가 어디서 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ㅋㅋ;; 오히려 제가 생각한 세속으로부터 벗어나서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은자의 이미지는 동양보다는 서양의 수도사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합니다.

은자의 대명사격인 죽림칠현(竹林七賢)도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멤버는 혜강, 완적, 완함, 산도, 유영, 상수, 왕융 이렇게 7명으로 언제나 죽림에 모여서 술 마시면서 토론했기 때문에 죽림칠현이라고 부른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모인 장소에는 죽림은 없었다고 하네요. 우쌤은 아마도 불경의 죽림정사의 영향 받은 결과일 거라고 하셨습니다. 7명 중에서 특히 혜강, 완적, 산도가 자주 모여서 놀았는데 이들의 사귐을 금란지교(金蘭之交)라 불렀다고 합니다. 재밌는 이야기가 많지만 혜강과 산도의 이야기만 살펴보겠습니다. ㅎ

혜강은 조씨 집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조조의 증손녀인 정락정주와 결혼해서 높은 관직에 오른 적도 있고 실제로 집안에 돈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능력이 뛰어난 탓에 당시 조씨 집안과 적대적이었던 사마씨 집안으로부터 계속 회유를 받았고, 혜강은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반면 산도는 사마의의 인척이었기 때문에 사마씨 집안에서 높은 벼슬자리에 있었습니다. 산도는 사마씨 집안에서 혜강을 회유하지 못하면 죽이려는 계획을 알고 그에게 벼슬자리를 추천합니다. 혜강은 이 자리도 거절하고 자신을 사마씨 집안에 추천한 산도와도 절교를 선언합니다. 우쌤은 이때 혜강이 산도에게 보낸 절교서가 또 명문장이라고 하셨는데 원문을 못 찾아서 대신 요약문을 올립니다.

 

“길이 다르면 서로 함께 하지 않는 법이라고 했으니 각자 자신의 길을 갈 뿐, 서로가 뜻하는 바를 빼앗으려 해서는 안 된다. 똑바른 나무로 수레바퀴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고 구부러진 나무로 서까래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나는 성격이 까칠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엔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는’ 일곱 가지와 ‘절대 할 수 없는’ 두 가지가 무엇인가.”

 
  1. 눕기를 좋아하고 늦게 일어나니 문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2. 노래하고 활과 낚시를 들고 들판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것이다.

  3. 몸에 이가 많아 계속 긁고 있어야 하는데 관복이 구겨지고 상전을 뵙기 곤란하다.

  4. 글 쓰는 일에 서툴고 좋아하지 않아서 편지에 응답하는 일을 할 수 없다.

  5. 문상하기를 싫어하고, 처세에 밝지 못해 사람들 사이에 원한을 사게 될 것이다.

  6.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아, 잔치나 연회를 하면 시끄러워 견딜 수 없다.

  7. 관청의 일 때문에 평생 번뇌에 시달리게 될 것이니 견딜 수 없을 것이다.


- 《여산거원절교서(與山居源絶交書)》

 

우쌤한테 들었을 때는 웃겼는데 이렇게 보니까 왠지 감동적이네요. 여담으로, 혜강은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 혜소를 절교한 산도에게 맡기고, 산도는 혜소를 정성껏 키웠습니다. 물론 혜소는 나중에 혜제라는 황제를 섬기다 죽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도망가도 끝까지 황제의 곁에서 의연히 호위하다 죽은 그 모습 때문에 충(忠)의 아이콘이 되었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군계일학(群鷄一鶴)의 주인공이기도 했네요.

세상이 어지러워지면서 위에서 명사들이 등장했다면, 밑에 백성들의 삶에는 종교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승려(불교)와 도사(도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병을 치료해주고 절과 도관에서는 식량을 나눠주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위진시대의 오두미교와 황건적입니다. 이들은 백성의 삶을 도와주면서 전도했는데, 민간에서 불상을 만들고 재가신도가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합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기괴한 이야기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귀신(鬼神)은 사실 서양의 기묘한 형태의 유령 혹은 괴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동양에서 말하는 귀신이란 세계를 운동하는 기(氣) 혹은 에너지 차원의 것이라 서양의 귀신 이야기와는 다르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는지 기대되지 않으신가요!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전체 6

  • 2018-03-17 09:50
    혜강마음=내마음ㅋㅋㅋ

    • 2018-03-17 11:38
      설마 '몸에 이가 많아 계속 긁어야 하는데' 이신가요? ^^
      에니웨이, 동양에서는 귀신과의 경계가 없었다니, 완전 @.@ 신기합니다! 전래 동화 속의 귀신들도 단지 '한 서린' 존재만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 2018-03-17 15:02
      어쩐지 책장에 50도짜리 술을 쟁여놓으시더라니~ 기행만 갖추시면 본격적인 은자 생활에 돌입하시겠네요. ㅎㅎ

  • 2018-03-18 18:10
    평일 저녁은 늘 아쉬워요. ^^ 후기 감사로 아래는 <昭明文選, 卷43> 의 '與山巨源絕交書" 중에 인용하신 부분입니다.

    "又人倫有禮,朝廷有法,自惟至熟,有必不堪者七,甚不可者二:臥喜晚起,而當關呼之不置,一不堪也。抱琴行吟,弋釣草野,而吏卒守之,不得妄動,二不堪也。危坐一時,痺不得搖,性復多蝨把搔無已,而當裹以章服,揖拜上官,三不堪也。素不便書,又不喜作書,而人間多事,堆案盈机,不相酬答,則犯教傷義,欲自勉強,則不能久,四不堪也。不喜弔喪,而人道以此為重,己為未見恕者所怨,至欲見中傷者,雖瞿然自責,然性不可化,欲降心順俗,則詭故不情,亦終不能獲無咎無譽如此,五不堪也。不喜俗人,而當與之共事,或賓客盈坐,鳴聲聒耳,囂塵臭處,千變百伎,在人目前,六不堪也。心不耐煩,而官事鞅掌,機務纏其心,世故繁其慮,七不堪也。又每非湯武而薄周孔,在人間不止,此事會顯世教所不容,此甚不可一也。剛腸疾惡,輕肆直言,遇事便發,此甚不可二也。以促中小心之性,統此九患,不有外難,當有內病,寧可久處人間邪!又聞道士遺言,餌朮黃精,令人久壽,意甚信之;遊山澤,觀鳥魚,心甚樂之。一行作吏,此事便廢,安能舍其所樂,而從其所懼哉!"

    • 2018-03-19 17:44
      캬~ 감사합니다! 당장은 봐도 잘 모르겠지만 ㅎㅎ;; 천천히 해석해보겠습니다.

  • 2018-03-20 10:58
    그러게~~ 우샘한테 들었을 땐 좀 웃겼는데 막상 글로보니 폭풍같은 감동이 밀려오는 듯하네!! 위진 시대는, 인간이, 역사가, 예술이 뭔지에 대해 기존의 관념이나 표상을 확 뒤흔드는 것 같다. 재밌는 시대~~~!!! 그나저나, 채운 샘은 기행은 잘 상상이 안되지만, 그래도 우리 함께 열심히 상상해 볼까나?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