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 절차탁마

절탁 서양 1주차 후기 및 2주차(2.7) 공지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21-02-01 15:22
조회
233
안녕하십니까! 영광스럽게도 신축년의 첫 번째 공지를 저희 절탁 서양반에서 끊게 되었네요ㅎㅎ. 지난주의 간단한 오티에서 알게 되었지만 저희는 십대부터 오십대까지 다채로운 연령으로 구성된 팀입니다. 그런 저희가 서양 철학을 어떻게 만나게 될지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1학기는 고대철학입니다. 기원전 4세기의 플라톤, 기원전 1세기의 루크레티우스, 기원후 2세기의 아우렐리우스. 시기도 계급도 장소도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생 전체를 철학-수행으로 일궈갔을까요? 그들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그럼으로써 우리 시대와 우리의 사고를 문제 삼기 위해 고대의 텍스트를 더듬더듬 읽어갈 예정입니다.

이번에 함께 읽고 이야기한 텍스트는 플라톤의 <일곱번째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말년의 플라톤이 자신의 친구였던 디온의 추종자들에게 보낸 조언입니다. 디온은 시칠리아의 참주 디오뉘시오스1세의 처남이자 사위로, 참주를 올바른 삶으로 이끌 포부와 힘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이미 젊은 시절(40세)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그곳의 탐욕과 무질서에 실망하지만 거기서 디온과의 교제를 통해 희망을 품었던 바 있습니다. 그리고 후에 디온의 간곡한 요청과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실험하려는 꿈을 품고 두 번이나(60세와 65세) 그곳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왜 시칠리아냐구요? 저는 시칠리아가 이탈리아의 작고 예쁜 섬인 줄 알았는데, 당시에는 지중해에서 신흥 패권국가로 떠오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철학하는 지도자를 훈련해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 비전을 펴기에는 몰락해가는 아테네보다는 시칠리아에서 가능성을 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사정은 더 복잡합니다. 참주 디오뉘시오스2세는 이미 30세여서 철학 훈련을 하기에는 늦었고 또 당시 그가 배움에 관심을 가졌다는 소문도 믿기 어려웠죠. 그래도 플라톤은 갔습니다. 그가 가르쳐온 철학이 있었고, 평판과 권력의 압박이 있었고, 동지애와 우정을 배반할 수 없었을 테고, 나아가 한 사람을 잘 설득해서 그가 ‘최선의 삶과 사랑에 빠지게 되어’ 여러 타락과 부패에서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플라톤은 말합니다. “나는 온당한 이치에 따라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에 따라서 그곳에 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행은 플라톤에게 죽음의 위험과 곤욕을 안겨줍니다. 저는 그때 플라톤이 정년퇴임 나이인 65세였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국가>를 읽기 위한 워밍업 겸 인트로로서 저희는 플라톤이 살았을 시대와 그의 고민,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해 토론해보고 채운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많은 얘기들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의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플라톤은 이름이나 정의나 속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원 그 자체 같은 것 혹은 올바름 자체를 찾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는 어떤 시대적 정치적 배경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것(=올바른 것=아름다운 것)인가’하고 묻게 된 걸까? 강의에서 저희는 5세기 아테네의 치안 향상 및 인구 증가, 그리고 도래한 말들의 시대라는 배경을 배웠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온갖 ‘아는 자들 = 소피스트’들의 박학한 지식이 흘러 다니고, 그런 깊이 없는 앎들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민주정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지식을 전달하는 말재주꾼들과는 차원이 다른, 한 인간을 능동적으로 질문하고 살도록 하는 진정한 스승을 말입니다. 전쟁과 전염병과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이런 사건을 겪으며 플라톤은 물었을 것입니다. 기준도 척도도 없이 저마다의 앎과 올바름이 부유하는 것이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의 삶을 어디로 데려다주나? 자기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도시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아카데메이아로 대표되는 그의 교육관과 대화편으로 빼곡한 그의 저술도 이런 물음을 이어가는 와중에 탄생했을 것입니다.


이런 질문은 우리 시대로 가져와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령 누가 통치자가 되어야 할까요? 저희는 잘 묻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청렴결백하면 되나? 똑똑하면 되나? 자수성가한 사람이면 되나? 혹은 이런 질문도 가능합니다. 참되고 옳은 것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나의 참됨과 너의 참됨은 서로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독립적인 취향 같은 걸까? 두 주장이 충돌할 때 우리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까? 또 플라톤의 교육에 대해 물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철인은 어떤 훈련을 감내할까요? 스스로 자유로워지기 위한 목표 속에서 이뤄지는 복종은 어떤 걸까요? 반면, 우리의 교육은 어떤 사람을 길러낼까요? 또 철학하는 통치자라는 목표는 순진한 이상인가에 대해서도 물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또 역사적으로(동양의 경우는 다르다고 합니다만), 철학자와 정치가는 서로 담을 쌓고, 철학하는 사람은 정치에 정치하는 사람은 철학에 등을 돌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지요. 우리는 다수와 공익을 위해 투표하지만 왜 투기하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개그맨이나 사업가가 국회의원이 될까요? 이런저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고대철학을 배우는 것은 좋고 나쁨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 자신의 삶을 의문시하고 낯선 것으로 재발견하기 위해서임을 기억하면서, <국가>를 읽어봅시다!

다음 주에는 2권(~182쪽)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자신의 질문이 있는 짧은 메모도 준비해주시구요. 아마도 키워드는 올바름, 부(상속과 자수성가), 강자의 편익, 신화 교육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간식은 연주샘이 준비해주시기로 했습니다. 담주에 뵈어요!!
전체 1

  • 2021-02-02 10:26
    플라톤 아저씨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또 우리는 세미나에서 어떤 얘기를 나누게 될지 몹시 기대가 됩니다흐흐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