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24. 공자님이 화나셨어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5-05 17:12
조회
585
 
24. 공자님이 화나셨어


이번 <한문 앓이>는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한 친구를 생각하며 시작해야겠다. 대학교 2학년인 그는 요새 연구실에 꽤 자주 나온다. 예전에 놀았던 학교 친구들과 소원해진 덕이다. 또, 같이 자취하고 있는 친구들은 짝꿍을 찾아가고 있는데 그는 아직 짝이 없는 덕택이다. 요리 자신감이 충만하여 그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밥을 해서 친구들을 먹인다.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연구실에 오는 듯하다. 대학생이라 곧 또 수업을 가야 하는데 그래도 연구실에 들르니 기특하긴 하다. 그런데 이 친구, 몹시 존다. ‘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존다! 책을 든 채로 침묵에 빠져들어… 어느 순간 공기가 달라진 것 같아 쳐다보면 고개를 바들바들 떨고 있다. “야, 이따 깨워주께” - “그게 낫겠어요. 밥을 너무 많이 먹어버렸네요….” 밥을 많이 먹어서, 어제 늦게 까지 시험공부를 해서, 책이 어려워서……. 타박을 하긴 하지만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어째 밥을 더 맥여 더욱 졸게 하고파지는 아해다. 그러나 M군, 《논어》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宰予晝寢 子曰 朽木 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杇也 於予與 何誅
(재여(宰予)가 낮잠을 잤다. 그래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 할 수가 없다. 재여(宰予)에 대해 내 무엇을 탓하겠는가.” - 논어, 공야장公冶長 )

宰予晝寢(재여주침), 재여가 낮잠을 잤다. 이 일로 그는 공자에게 제대로 혼이 났다. ‘썩다(朽)’나 ‘똥(糞)’과 같은 글자들을 쓰면서 공자님께서 상대에게 맹비난을 퍼붓는 모습을 나는 여기서 처음 보았다. 그런데 낮잠 잔 것이 그렇게나 화를 낼 일인가. 낮잠 좀 잤기로서니 도무지 상종못할 놈인 것처럼 혼을 낼 것은 아니지 않는가.(“내 무엇을 탓하겠는가.”於予與 何誅) 그런데 생각해 보면 ‘宰予晝寢(재여주침)’, 이 네 글자만으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재여가 밥을 많이 먹고 잠이 든 것인지, 여자와 낮잠을 잔 것인지……. 여러 설이 있다고만 들었다. 확실한 것은 공자님께서 화가났다는 것 뿐이다. 공자에게 재여의 낮잠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째서?!

공자의 질책에 주자는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그 뜻과 기운이 혼란하고 나태하여 가르침이 베풀어질 것이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재여의 낮잠(宰予晝寢)이 보여주는 것은 재여의 뜻과 기운의 상태. 주자는 공자가 낮잠을 통해 제자의 태만한 상태를 문제 삼았다고 본다. 주자는 여기에 범씨(范氏)의 말을 덧붙인다. “재여가 낮잠을 잤으니,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自棄)에 있어서 무엇이 이보다 심하겠는가.” 이 구절은 정말 당혹스럽다. 웬만큼 막(!) 살지 않는 이상 일상의 자질구레한 행실을 보고 ‘스스로를 포기했다’는 말은 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씨는 낮잠에서 한 사람이 자기를 버리고 있음을 본다. 사람이 자기를 포기하는 일이 그렇게 쉽게, 또 작은 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주자는 호씨(胡氏)의 말을 옮긴다. “재여는 뜻(志)으로 기운(氣)을 통솔하지 못해서 편안하고 나태하였다. 이는 안락하려는 기운이 우세하고 경계하는 뜻이 태만해진 것이다.” 재여가 스스로 자기를 포기했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기 기운을 통솔하지 못했다는 것.

사람이 마음에 품게 되는 뜻(志)이란 곧 그 마음이 가는 바(心之所之)이다. 우리가 무엇인가 뜻을 품었다는 것은 그 일에 마음을 내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 뜻(志)에 따라 사람의 기운(氣)이 움직이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람이 단지 그 뜻하는 바에 따라 살지는 않는다. 이 때문인지 경전에서도 단지 뜻(志)을 지키는 일만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다. 기운(氣)이 뜻을 움직이게도 한다! 그래서 기운을 난폭하게 하지 않는 것(無暴其氣) 역시 중하다고 본다.

공자는 제자가 자신의 기운(志)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꾸짖고 있다. 그의 기운 상태가 지금 그 자신을 해칠 정도로 또 그의 뜻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난폭하고 방만하다고 본 것이다. 호씨(胡氏)에 따르면 옛 성현은 언제나 게으르고 편안하게 하는 것을 두렵게 여겼다고 한다. 게으르고 편안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듣기 싫은 잔소리이다. 하지만 게으르고 편안하게 지내는 일이 몸을 쓸 데 없이 바쁘게 굴리는 것 만큼이나 자기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일이 많고 적고, 바쁘고 한가하고가 문제일까.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를 지키는 일은 어렵다.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엎어지고 게을러지고 날뛰는 일은 흔하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를 해치는 일인지도 모른 채 무엇인가에 힘을 쓰는 일은 정말 쉽게 일어나는 것 같다.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 改是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다. 지금은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다시 그의 행실을 살펴본다. 재여(宰予)로 인하여 이것을 고치게 되었노라.” - 논어, 공야장公冶長)

공자께서는 이제 사람의 말 뿐만이 아니라 그의 행실을 살피겠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그 전에도 그는 제자들의 행실을 살폈을 것이다. 다만 이번 일을 통해 재여에 대해서도, 다른 제자들에 대해서도 더욱 경계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앞 구절에서는 재여와는 더 이상 상종도 안 할 것처럼 말씀하셨었는데 어느덧 그는 제자를 지도할 새로운 대책을 마련 하고 계신다.

아차차, 앞에서 말한 M군. 잘 조는 그가 자기를 포기한 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여기서 편안하게 졸고 수업 때, 밖에서 건강하게 잘 생활하고 있는 것이리라.(^^) 어쨌거나 자기를 해치는 일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공부합세! 자기를 해치는 일 정도는 경계할 수 있을만큼 공부합세! 이 정도로 말을 남기고 마쳐야겠다.
전체 8

  • 2016-05-05 23:52
    M군, 난 그녀석을 알지... 곽모님, 종*님(둘다 이름에 '은'자가 들어가는군)과 함께 동사서독 3대 졸음꾼! M군은 요즘에는 안 존다고 항변하지마는... 재여와 M군, M군은 규문의 재여인가, 재여보다 나은 인간인가?

  • 2016-05-05 19:32
    오오 M군의 음성이 들려요~ 0.0

  • 2016-05-05 19:40
    m군이 이글을 보려나..

  • 2016-05-07 07:34
    음... M군 덕에 댓글이 세 개나 달렸군요ㅋㅋ M군은 훌륭해요~!

  • 2016-05-12 23:29
    오, 재미나고 멋진 글이어요! 수영쌤 글은 고전공부에서 빛이 나네여!^^

  • 2016-05-15 18:42
    제가 이곳에 ㅋㅋ 빵 터집니다

    • 2016-05-16 10:52
      오늘 수영님 글 정독합니다^^
      수영쌤 목소리가 리듬을 타고 들리는듯. 이제 저두 새로운 마음으로 졸지않도록 몸에 기운을 새롭게 할께요~

      • 2016-05-17 20:22
        졸고 다니는 거슨 저랍니다 ;0;
        어쨌든 발랄한 기운으로 토욜에 뵈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