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25. 자기를 잃고 살아가다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5-20 09:08
조회
559
25. 자기를 잃고 살아가다

<격몽스쿨>에서 《대학(大學)》 강독을 마치고 <대학문(大學問)>을 읽었다. 〈대학문〉은 대학(大學)에 대한 왕양명의 생각이 담겨있는 글인데 그의 제자 전덕홍이 스승에게 전해들은 것을 기록해 남겼다고 한다. 《대학(大學)》의 삼강령(三綱領)·팔조목(八條目)은 주자가 정리한 것인데 이에 대해 양명은 어떻게 달리 접근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읽어보면 좋다. 오늘은 이 <대학문> 읽은 것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대학문>이 던지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역시 마음에 관한 것이다. 다른 고전들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지만 <대학문>은 인간이 자기의 본연의 마음을 잃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천지자연의 본성을 타고난 인간이지만 그 마음을 잃고 살아간다. 덕택에 타인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해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것도 그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잃고 살아갈 수 있다.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하여 남과 자기를 파괴하며 살아갈 수 있다. <대학문>은 바로 그와 같은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대학문>에 따르면 태어난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기질이 다르지 않고 욕망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을 뿌리로 하는”(根於天命之性) 존재라는 점에서 그 누구도 아니 그 무엇도 다르지 않다. 주자 역시 같은 말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타고났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히 오묘하게 밝아서 어둡지 않은 것”(自然靈昭不昧者)으로서 밝은 덕(明德)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인간 본연의 마음인 仁이다. 양명은 이 仁을 흥미롭게 풀어 주신다.

채운샘은 양명이 말하는 仁을 설명하시며 ‘꼬물꼬물하는 병아리’ 이야기를 했다.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그 움직임은 종종 어떤 생의(生意)를 맞닥뜨리게 한다. 사실 말하기 쉽지는 않지만 양명에게 仁이란 인간적인 똑똑함이나 착함 이전에 어떤 생명력과 관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仁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을 자기와 한 몸으로 여기는 마음이다. 이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이를 대인(大人)이라고 한다. “대인은 천지만물을 일체로 여긴다”(大人者 以天地萬物爲一體者也) 대인이란 무엇인가 많은 지식을 쌓은 이는 아니다. 양명에 따르면 천지만물과 자기를 일체로 여기는 마음은 의도하지 않아도 또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양명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순간을 예로 든다. 무엇인가를 바라서 아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에 다가올 손익을 따져 아이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지점에서 무엇인가 행위하게 하는 마음 자리에서 양명은 인간 본연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우는 짐승 앞에서 차마 고개 돌리지 못하는 마음을 말한다. 초목이 꺾이고 부러지는 것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일에 대해서도 말한다. 기왓장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또 무엇인가. 어찌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이 일들에서 양명 선생은 인간이 천지만물일체의 마음을 타고났다는 것, 누구나 仁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물론 누군가는 분명히 仁을 떠난 채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천지만물과 자기가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소인(小人)이란 바로 그런 존재다. 소인이란 계급이 낮은 자가 아니다. 배움이 부족한 자도 아니다. “형체를 분별하고 너와 나를 나누는 자”는 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소인이다.(若夫間形體而分爾我者 小人矣) 양명은 “分隔隘陋(분격애루)”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 마음에 남과 나, 세상과 나가 나뉘어 격절되어 있다. 협애하고 누추한 마음이다. 문제는 이 마음, 결국 자기와 타인을 해친다는 것에 있다. 이익과 해로움을 따지며 서로 공격한다.(利害相攻) 원망과 성내는 마음으로 서로 부닥친다.(忿怒相激) 소인은 이처럼 자기와 타인을 해치며 살아가게 된다.

자기를 잃는다는 것은 자기의 계획, 뜻, 포부를 잃는 문제가 아니다. 도리어 자기의 계획, 뜻, 포부 등이 무엇에 기초한 것인가 생각하게 한다. 타인과 나를 나누고, 나의 이익을 따지며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고수할수록 자기를 해치는 일이 된다. 자신의 계획과 의도에 따라 무엇인가 성취를 이룰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정말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양명은 남과 나를 격절시키는 마음으로 행하는 일들은 자기를 해친다고 분명 말하고 있다. 소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사욕이다. 사적인 이익에 좌우되고 자기 욕망에 휘둘려 본연의 마음이 가리워진 채로 있다. 전적으로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보일 때조차 그는 스스로를 해치며 살아가게 된다.

자기 본연의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확실히 어렵다. 당장에 내가 처한 사회적 삶은 내게 손익 계산을 묻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 명령한 적 없다고 하여도 당장 나 자신이 내게 해로울까 이익이 될까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잘 살기 위해 무엇인가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세계이다. 더 즐겁기 위해 재빠르게 무엇인가를 취하고 몸을 던져야 하는 세계이다. 천지만물 일체고 자시고 행여 손해날까, 즐겁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사람들은 이미 자기를 해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양명은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양명에 따르면 사욕에 사로잡히지 않는 이상 누구나 이미 대인(大人)이다. 그는 주어진 것들을 자기 마음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주어진 것들이 약속하는 것들에 휘둘려 자기 자신을 그르치지 않는다. 주어진 것들로 인해 기대하게 되는 바로 인해 자기 마음을 외면하는 일이 없다. 조급함, 불안함, 두려움…… 이와 같은 마음을 파고드는 것들에 기대지 않는다. 적어도 양명에 따르면 그렇게 해야만 인간은 자기를 그리고 남을 해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양명은 무엇에 대해서도 자기 밖에서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에게 모든 답은 이미 자기에게서 나온다. 천지만물과 자기를 분리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은 외물에 기대어 묻고 따지지 않아도 어떻게 행동 해야 할지 안다.

누군가가 극악무도해 보인다고 할 때에도 양명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마음이 될 것이다. 그 마음이 자기를 주인삼고 있지 않는다면, 곧 천지만물일체의 자기를 부정한 채 행동하고 있다면 겉보기 아무리 선한 행동을 일삼고 있더라도 그는 소인이다. 겉보기 어떤 대단한 성취 속에 있더라도 그는 노예이고 폭군임을 피하기 어렵다.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 마음의 주인은 천지만물을 일체로 여기는 나인가. 아니면 타인과 나의 분리 속에서 만들어지는 두려움이고 불안이고 갈망인가. 무엇인가 잘 되어가고 있다고 여겨질 때, 잘 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결국은 자기를 외면한 채 희희낙락하고 있을 뿐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 때의 나나 어떤 범죄자나 무엇이 다른 것일까 싶기도 한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내가 사는 세상은 소인으로 사는 일을 경계하지 않는 것 같다. 사적인 것에 집착하고 실컷 누리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렇게 자기를 해치며 사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말하는 곳에서 이미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양명 선생님은 소인이라도 그 사사로움에 휘둘리지 않는 이상 대인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소인을 멋지다 여기고 소인을 닮고 싶어한다. 내 기준에 내게 이로워 보이는 일이 나를 해치는 일일 수 있다. 나는 결국 나를 해치는 일을 열망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대학문>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전체 2

  • 2016-08-09 02:24
    Did I interpret Ro2#78n1&;s first answer correctly? Did he say when he signed he expected Phil to use him in his normal aggressive role, and now he’s just adjusting to playing team ball? Sounds odd if read that way, hope I heard him wrong.

  • 2016-05-26 03:14
    조급함, 불안함, 두려움. 바로 이것을 느낄 때 내가 나를 떠나고 있구나! 생각할 수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