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32. 不誠則無物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7-15 12:48
조회
470
32. 不誠則無物

딱히 기억하려는 것도 아닌데 쉽게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한문 한 구절도 마찬가지이다. 어째서인지 종종 생각이 나 ‘으잉…….’하게 하는 구절이 있다. 그렇다고 그 구절을 잡고 잠을 못 이루며 고민하지는 않는다. ‘으잉?’하고 말 뿐이다. 그럼에도 신경이 좀 쓰여 오늘은 그 한 구절에 대해 짧게나마 써보아야 겠다. “不誠則無物” 《논어》 <학이>(8) 편 한 구절 - 子曰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 에 대한 주석에 나왔던 말이다.

핵심은 誠이다. 정성, 성실, 진실함 등으로 번역하곤 하는 이 단어는 《논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며 《중용》의 핵심단어이기도 하다. 허투루 《중용》을 읽었지만 어렴풋하게 다음의 구절을 기억한다. “誠者 天之道也 性之者 人之道也(...)”(중용 20장) 이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誠은 이치를 체득한 차원과 관련된다. 성실한 자는 “힘쓰지 않고도 도에 맞으며 (...)” 성인(聖人)이 그러하다.(중용20장) 그럼에도 誠은 마냥 고원한 어떤 것은 아니다. 물론 익히 아는 ‘성실함’이나 ‘진실함’으로 풀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은 그 자신의 말과 행동이 충실한지(忠), 타인과 일을 함께 함에 믿음이 있는지(信)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不誠則無物”은 <학이> 구절 중 “主忠信”(충과 신을 主로 해야 한다) 부분에 대한 주석인데 이에 대해 채운샘은 다음과 같이 풀어주셨다. ‘스스로 忠하고 信하지 못하면 오로지 외적 관계성만 있을 뿐이다. 실질이 없으며 껍데기만 있다.’ 실질이 없고 가짜 일종의 껍데기만 있다는 것은 뭘까. “不誠則無物”, 동사서독에서 《우미인초》(나쓰메 소세키)를 읽다가 저 구절이 다시 떠올랐다. 소설 속에서 ‘무네츠카’라는 자가 ‘오노’에게 “(자신에게) 진지해져야 한다”는 조언을 하는데 그 부분이 꼭 不誠則無物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설 속에서 오노는 후지오라는 여성에게 구애를 한다. 구애라고 하지만 그 사랑은 후지오가 자신에게 줄 수 있고 줄 것이라 기대되는 것을 얻고자 함과 무관하지 않다. 오노가 구하는 것은 금력이자 일종의 인정. 시인이고자 하고 또 학문을 하고자 하는 오노에게는 그와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금력을 필요로 한다. 후지오는 그러한 것들을 줄 수 있는 존재다. 한편 후지오는 자신을 지고의 존재로 보아주는 오노의 시선을 필요로 한다. 그 시선을 얻고 상대의 마음을 갖는 것을 존재 의미처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노는 시적 세계에 속하고 싶어한다. 또 학문을 하고자 한다. 이 마음을 가짜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문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가 속한 세계에서 끊임없이 대가를 요구한다. 돈을 지불해라, 증명서를 보여라. 이게 필요하다, 저게 있어야 한다…. 천황의 승인서가 곧 ‘학자’로서의 자기를 보장해주는 것처럼 여겨지는 세계에서 그는 살고 있다. 하여 저 승인서에 자기를 팔고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 - 학자, 학문활동 -을 얻고자 한다. 그럴려면 돈이 필요하고 사회적 명성도 필요하다. 어찌어찌 그것을 얻었을 때 그는 비로소 학문을 하는 자가 되긴 된다. 하지만 그 때의 학문도 학자도 시도 다 뭔가. 그것이야 말로 허울이고 빈 껍질은 아닌가. 무네츠카("진지해져야 한다"고 말했던 자)는 오노가 사로잡혀 있는 저 굴레를 보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학문을 하고자 하는 자는 증명서를 사려 한다. 사랑을 하려는 여인은 자신에게 홀린 사내의 눈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이 일종의 교환 방식으로는 자기에게 이를 수 없다. 실질 역시 언제나 유보된다. 증명서는 “학문을 하려한다”는 본래 자신의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열정을 일깨우고 사랑에 대한 갖가지 환상은 역시 그것에 투신하는 자들을 만들어낸다. ‘진짜 사랑’, ‘진짜 학문’이라 말해지는 것들을 향해 자기를 던지지만 실상 얻어지는 것이란 “얻었다”는 말 이상이 아닌 것 같다. 또, 온갖 말과 이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관계들 속에 있는지, 또 무엇을 정말 구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성(誠)하지 못하다는 것은 일종의 빈 껍데기에 자기를 팔아 얻고자 하는 것들을 얻으려는 마음 상태이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보증에서 구하고 이미지에서 구할 때에 사람은 성(誠)할 수 없다. 또 그는 정작 자기 자신을 모른다. 크게는 자기의 삶과 죽음을 모르고, 지금 자기 자신을 만들고 있는 복잡한 관계들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 행동, 말 등을 만들고 있는 조건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不誠則無物, 껍데기로 살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誠이다. 자기의 성실함이 껍데기만 교환할 뿐인 삶에서 자신을 구한다. 誠 없이 얻어지고 誠이 아니라 다른 것을 지불하며 얻어지는 것은 굳이 갖지 않아도 되는 것들 뿐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넘치는 것들이거나 아니면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가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런 방식으로 사물을 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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