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27. 까막눈의 슬픔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6-09 16:41
조회
471
 

27. 까막눈의 슬픔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같이 간 사람들은 도쿄와 교토를, 내 경우 채운샘을 따라 센다이와 교토 등을 여행하였다. 동사서독에서 소세키 소설들을 일고 떠난 나름대로 답사 여행이었고, 채운샘은 채운샘대로 루쉰 초년의 일본에서 행적을 좇아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모든 여행, 특히 타국으로 떠나는 여행에서 사람들은 곧잘 문맹자가 된다. 이번 일본행에서도 그랬다. 낯선 언어로 가득한 땅에 뚝 떨어져 이리저리 헤매다 왔다. 생각해 보면 언제 문맹 아닌적 있었나. 그동안 삼경스쿨 등에서 한문공부를 하며 곧 잘 나의 까막눈을 맞닥뜨려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수위(?)가 달랐다.

여행 둘째 날, 도쿄에 있는 마루센 서점에 갔다. 오래된 서점이기도 하고 채운샘께서 살 것이 있기도 했다. 나는 샘을 따라 쫄쫄쫄 서점에 들어갔다. 멋졌다. 처음에는 일단 규모에 놀랐던 것 같다. 그런데 서점 면적이 넓고 책 양이 많은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나는 저 메이지 시대에 이제 막 도쿄에 상경한 산시로는 아니다. 하지만 뜻 모르는 글자들이 사방에 가득하다는 것은 내게 꽤나 당혹스럽게 다가왔다. 한번 숨을 크게 내쉬었던가 들이마셨던가. 채운샘께서는 매장 직원에게 이 책 있느냐, 이 작가의 책들은 어디에 있느냐 물어보셨다. 나도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것이 없었다. 이런저런 책들이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어째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시 쫄래쫄래 선생님만 쫓아다녔다. 신경이 쓰이셨나. 채운샘은 중간에 나쓰메 소세키 책들을 찾아주셨다. 생각해보니 동사서독에서 나쓰메 소세키 소설들을 읽었다. 하지만 낯선 글자들 속에서는 아는 책도 또 다르게 다가왔다. 夏目漱石(나쓰메 소세키), 이 사람은 이 이상한 글자들로 뭘 쓴 것일까. 《こころ》(마음), 여기에는 무슨 이야기가 어떤 발음들로 써 있는 것일까. 분명 읽어본 책들이다. 하지만 처음 본 이상한 물건이라도 만난 듯 했다. 채운샘은 “여기있었구나! 이 사람 책이 한국에 번역이 거의 다 되어 있긴 한데…”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나름대로 잘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채운샘은 독백을 하신 것이다. 나 역시 호응을 하며 “이 책 말이에요…”하고 싶었지만 할 말도 없었다. 글자도 모르고 책도 모른다. 심지어는 나쓰메 소세키 이름도 읽히지 않았다. 물어보는 사람도 없건만 어디 가서 한문 공부 한다고 절대 말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까막눈의 고독이다.)

사실 마루젠 서점에서의 일은 다른 여행지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확장판이기도 하다. 센다이의 도호쿠 대학(東北大學) - 루쉰이 잠시 유학했던 센다이 의학 전문대학이 바로 이 대학의 전신이다 - 에 갔을 때다. 루쉰의 성적표, 입학원서, 편지 등을 보았다. 나는 꽤나 떨렸지만 무엇인가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사진을 찍었고, 채운샘과 몇 마디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그 앞에서 숨을 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별 것 아니지만 전체 성적 순위에서 루쉰보다 앞 등수에 누가 있는지 그 이름을 읽고 싶었다. 루쉰 역시 받아 읽었을 후지노 선생의 코멘트들을 그 자리에서 읽고 싶었다. 대단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곳 박물관에 있는 모든 글자들을 읽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니 괜히 진열장이나 쓰다듬고 만다.

이런 일로 아쉬울 줄이야. 《논어》나 《대학》 등을 읽으면서 모르는 글자들이 나오고 그 와중에 누군가 앞에서 그것을 읽어야 할 때면 늘 당혹스럽긴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달랐다. 남들 앞에서 민망한 것 이상으로 읽지 못해 답답했고 안타까웠다. 왠지 애틋한 마음까지 드는 것 같았다. 억울하기도 했다. 읽을 수 있다면 루쉰에게도, 이 서점 가득한 이야기들에도 더 친근하게 있을 수 있으려나.

번역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인터넷 번역기조차 꽤나 훌륭하다. 내가 간 도호쿠 대학 사료관에는 한국어 설명장치가 없긴 했지만 다른 박물관 등에는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정말 내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까막눈에게 생기는 마음은 누군가 대신 읽어 주고 자신에게 익숙한 말들로 바꿔 무엇인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 그 곳에서, 그 사람들 속에서 그냥 읽고 싶은 것이다. 뜻을 헤아리든 헤아리지 못하든 말이다. 또, 그저 이름 한 자 뿐일지라도 말이다.

해외 여행을 가면 그 나라 말 한 자 제대로 못해도 무엇인가 말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또 한편 낯선 말들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중요한 의미 하나 없어도 저 낯선 말들을 듣고 말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까막눈에게 허락된 슬픔이자 기쁨이다.

누군가 언어 배우는 일을 좋아하고 또 언어를 잘 한다면 그 역시 출발은 까막눈이다. 읽지 못해 답답하고 궁금하고 그립고 그래서 읽고 싶다는 유혹에 넘어가버린 자…는 아닌가. 이렇게 오늘은 멋대로 생각해버리겠다. 그리고 ‘내일’부터 한문공부도 열심히 하겠다.
전체 2

  • 2016-06-10 15:04
    ㅋㅋㅋ 자의식 핵폭발 중이었구나! 다이죠부! 그래서 한문도 일어도 공부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거잖아? 다이죠부~ 근데 왜 '내일'부터냐!!!

  • 2016-06-13 05:58
    다이죠부, 좋군요ㅎㅎㅎ 담에도 서점따라갈거심미다!
    &한문도 일어도 열공할게요! ('언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