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31. 도에 뜻을 두면 무슨 이득이 있을까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7-08 18:42
조회
706
31. 道에 뜻을 두면 무슨 이득이 있을까



오늘 날씨는 정말 후덥지근하다. 날이 더우니 할 것은 더 많은 것 같다. 몸은 계속 꼬인다. 지금 연구실에는 3명이 있는데 - 수경언니, 건화, 나 - 1인 1선풍기를 차지하고 있다. 조금 전, 어제 태욱샘이 주신 카스테라를 노나 먹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이제 무엇인가 읽고 쓰고 있다. 저녁 때 강의가 있는 수경언니가 제일 더워 보인다. 건화는 조금 여유가 있다. 나는 한문 앓이 걱정을 하는 듯 하며 이렇게 주변만 살피고 있다. 날도 더운데 무슨 《논어》인가. ‘子曰’ 대신 얼음팩을 안고 있고 싶다. 한 글자 읽으면 비가 쏟아지고, 두 글자 읽으면 冷바람이 불고, 세 글자 읽으면 계곡물에 발이 담기고……. 《논어》가 그런 책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초딩같은 생각을 하며 할 일을 미루는 중이다. 하지만 날이 더워도 공자님은 말씀하신다. 정말 쉴 줄을 모르는 분이시다.

子曰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 (述而 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에 뜻을 두고 덕을 지키며 인을 의지하고 예(藝)에서 노닌다.

도(道)에 뜻을 두라는 것이 공자님의 첫 번째 말씀이다.(志於道) 그렇게 해야 이어지는 세 과정까지 갈 수 있는 것 같다. 내 마음은 다른 데 가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도(道)에 뜻을 둔다(志於道)는 것은 무엇인가. 이리저리 요동치는 것이 마음이지만 그 방향을 도(道)에 둘 수 있다. 주자에 따르면 뜻(志)이란 "마음이 가는 바(心之所之之謂也)"이다. 마음이란 본래 절로 도(道)로 향하기 마련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우쳐 사적인 데로만 향하는 것도 역시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도(道)에 뜻을 두는 일(志於道)은 한 번의 결심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냥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부단히 마음을 내고 자기를 살피는 일, 도(道)에 뜻을 둔 자는 바로 이 일에 동참하는 자가 아닐까.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성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도(道)에 뜻을 둔 자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매 상황에 마땅하게 응한다고 한다. 주자의 주석에 따르면 도란 “인륜과 일용의 때에 마땅하게 행하는 것(人倫日用之間所當行者也)”이다. 대체 마땅하다는 것이 뭔가 싶다. 모르긴 몰라도 도(道)에 뜻을 둔 자에게 극복 불가능한 상황이란 없어 보인다. 원하는 대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에 맞게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어서 덕을 지킨다(據於德)는 내용이 나온다. 주자는 덕(德)을 ‘行道’라고 말했다. 덕은 "도를 행하여 마음에 얻는 것이다”(行道而有得於心者也) 이 풀이에서 보자면 사람은 마음에 무엇인가를 먼저 얻고 그 후에야 도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덕을 지키는 것 역시 언제 어느 때라도 가능하다. 그리고 주자에 따르면 도를 행하는 일이 시종 가능하다면 날마다 새로워지는 공(日新之工)이 있다. 그러니까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은 자기에게 달린 일 곧 자기 덕을 지키는 것에 달린 일이다. 사람은 어떤 점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절대 바꿀 수 없다. 더위가 오고 추위가 오는 일을 어찌할 수 있나. 하지만 동양에서는 매일이 새로운데 어째서 사람은 매일을 새롭게 살지 못하는지를 문제 삼기도 했따.(탕왕의 목욕통에 써 있다는 그 말이 떠오른다.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大學》) 오늘을 어제에 견주고, 같을 수 없는 말과 표정을 익숙한 방식으로만 읽고자 한다. 날마다 새롭지만 습관적인 생각과 감정 등을 되풀이하고자 한다. 덕(德)을 지키는 일은 바로 이와 같은 반복을 넘어서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덕을 지키는 일에 이어 인(仁)에 의지하는 일이 나온다.(依於仁) 사실 두 구절(據於德과 依於仁)이 잘 모르겠다. 주자의 주석으로 추측해보면 후자는 전자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게 道가 행해지는 차원으로 보였다. 끊임 없이 내 생활의 구심점으로 道를 갖고 오는 것을 덕을 지키는 일(據於德)이라면 그 일들이 완전히 갖추어져 무엇을 한들 천지의 이치에 합치하는 것이 인에 머무는 것이다.(依於仁) 또, 인(仁)에 의지함에 "사욕이 모두 없어져 마음의 덕이 온전"하다. 밥을 먹건 공부를 하건 그 마음이 다르지가 않게 된다.

마지막으로 예에서 노닌다.(遊於藝) 우샘은 어째서 구절의 마지막에 이와 같은 단계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하셨다. 예(藝)란 육예(六藝)로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말한다. 도에 뜻을 두고,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실천해 가는 과정의 끝에 활쏘기(射)나 말타기(御)와 같은 일들이 있는 것이다. 우샘에 따르면 육예(六藝))는 일상의 차원에서 사물과 만나는 일과 관련된다. 주자에 따르면 그 모두에 지극한 이치가 깃들어 있다. 어찌보면 새로운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예에서 노닌다(遊於藝)는 것은 도에 뜻을 두고 도를 행하는 것은 언제나 처한 생활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까지 《논어》 <述而>편 여섯번째 구절에 대한 간단한 정리를 마친다. 이 구절은 도에 뜻을 두는 것(志於道)으로 시작한다. 도에 뜻을 두면 무슨 이득이 있을까. 이어지는 내용들이 이 문제에 답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도에 뜻을 두고 덕을 지키고 인에 의지하며 예에서 노닌다. 그 밖에 다른 일에 힘쓸 것이 아니다!' 크고 작게 난감한 상황들에 처하게 된다. 그 때마다 '어떻게 해야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하다못해 더운 날씨 하나로도 버겁기만 한 날이 있다. 그 때에 무엇을 할 것인가. 공자님은 다른 것을 권하지 않는다. "그게 뭔가..."생각하면 골치아프지만 단지 도에 뜻을 둘 것 그리고 그 마음을 지킬 것을 말한다. 어렵고도 쉬운 출구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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