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37. 예(禮)란 무엇인가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9-01 23:54
조회
576
37. 예(禮)란 무엇인가

엊그제 격몽에서 《논어》, <팔일(八日)>편을 읽기 시작했다. <팔일>편에는 예악(禮樂)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여기서 예(禮)란 인간관계의 질서다. 상하관계가 있고 그에 따른 행동 규범 역시 있다. 사람이 나고 죽고 하는 상황마다 마땅히 해야 할 일과 그 방식 역시 있다. 이 질서는 누가, 어떻게 정하나. 天理之節文(천리지절문)이라는 주자의 주석처럼 예는 천지자연의 질서가 인간 관계 속에서 특정한 형식으로 마름질 곧 재단된 것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행동한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는 것처럼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고 부모에게 효도한다. 물론 해와 달, 물고기와 하늘 나는 새와 달리 사람은 자연의 이치를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지 못한다. 그 모습이 예를 잃는 것으로 나타난다. <팔일(八日)>편에는 예악이 무너진 현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예악이 무너진 현실이란 도(道)가 땅에 떨어진 때 곧 사람이 천지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말한다.

<팔일(八日)>편 첫 구절은 이렇다.

孔子謂季氏 八佾 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가 계씨를 평하였다. “팔일무를 뜰에서 추게 했으니 이것을 차마 할 수 있다면 무엇을 차마 하지 못하겠는가.”

팔일무(八佾 舞)는 매 열에 여덟 명이 서서 추는 춤이다. 주석에 따르면 천자(天子), 제후(諸侯), 대부(大夫), 사(士)의 지위에 따라 매 열에서 춤추는 사람 수가 달라진다. 팔일무는 천자가 주관하는 행사에서 출 수 있는 것인데 계씨는 대부의 지위에 있는데 팔일무를 춘 것이다. 참고로 대부의 지위에서는 매 열에 여섯 사람이 서는 춤을 추어야 한다. 그러니까 위 상황은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가 대통령만이 누릴 수 있는 차를 타고 등장한 것 쯤 되는 건가. 이에 대해 공자는 심하게 질책한다. “이것을 차마할 수 있다면 무엇을 차마 하지 못하겠는가(是可忍也 孰不可忍也).”

주자는 이씨(李氏)의 말을 옮긴다. “이것을 차마할 수 있다면 부모와 군주를 시해하는 일이라도 무엇을 꺼리며 하지 못하겠나.” 천자-제후-대부-사, 각 지위에 맞는 예를 행하지 않는 것이 곧장 부모와 군주를 시해(弑害)하는 일에 견주어진다. 행사에서 춤을 출 때 각 열에 여덟 명이 서는지, 6명이 서는지가 곧장 도리를 잃고 자기 군주와 부모를 해치는 일과 연관이 된다.

예(禮)란 무엇일까. 이번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이것을 차마할 수 있다면 무엇을 차마 하지 못하겠는가.”라는 부분이었다.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을 것 같은 잔혹무도한 일들을 벌일 가능성이 이미 그가 일상에서 어떻게 먹고 노는지에서 드러난다. 문득 이전에 배웠던 구절이 생각난다. “人焉廋哉, 人焉廋哉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공자가 예를 중시했던 것은 바로 그로부터 한 사람 나아가 한 사회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한 사람의 덕성은 이미 그가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 예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물론 예란 단순히 행동이 아니다. 공자는 예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중시했고 불가피하게 하나를 강조해야 한다면 내용 곧 실질로서 마음을 강조했다. 어쨌든 이 예(禮)는 공자에게 일종의 진단 도구가 되겠다. 지금은 무엇을 가지고 한 사람을 평가하나. 무얼 가지고 사람을 보나. 그리고 그 방식과 기준들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예(禮)에 대한 구절들은 지금 내게 작동하는 평가 기준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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