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38. 능력과 무능력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9-08 22:57
조회
421
38. 능력과 무능력

예(禮)에 있어서 그 형식과 실질이 모두 중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를 높게 치자면 실질 곧 마음이 중하다. 마음을 잃고 예가 다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말하는 구절이 있다.(子曰 仁而不仁如禮何仁而不仁如樂何 - 論語, 八佾) 공자를 예의 모범으로 본다면 아래의 구절을 통해서 상(喪)을 당한 자의 곁에서 취할 수 있는 예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을 잃은 자 곁에서 공자는 배부르게 먹지 않으셨다. 또 곡을 하되 노래하지 않으셨다.

子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 子於是日 哭則不歌
공자는 상(喪)을 당한 자의 곁에서 식사를 할 때에 일찍이 배부르게 먹지 않으셨다. 공자는 이 날에 곡하고 노래하지 않으셨다. - 논어, 술이(述而)

사실 공자가 보여주는 모습이 뭐 그리 대단한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주자도 쓰고 있듯이 사람을 잃은 자 곁에서는 슬퍼 달게 먹을 수가 없다.(臨喪哀不能甘也) 조문을 다녀와서는 그 슬픔이 남고 또 잊혀지지 않아 흥겹게 노래할 수 없는 법이다.(一日之內 餘哀未亡 自不能歌也)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어떤 상황들 속에서는 이렇게 차마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어떤 때의 차마 할 수 없음은 그의 무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그의 능력을 말해준다. 상 당한 자 곁에서 먹을 수 없고, 조문을 다녀온 후에는 노래 한 자락 할 수가 없다. 이것이 그 상황 속에서 공자가 취했던 마땅함이요, 또한 그의 능력이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공자만큼 자연스럽게 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 모습이 귀한 것이다.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자기 마음을 잘 헤아리고 또 따르는 일은 어렵다.

상례(喪禮)에 관한 한 주석에서는 슬픔(戚)을 '마음의 진실함(心之性)'으로 푼다. 사람은 진실한 자기 마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두려워하고 꺼린다. 정당화하기 바쁘고 해야 할 일을 꾸며내느라 바쁘다. 불편한 마음에서는 가장 힘껏 달아나 살만하게 되고자 한다. 상을 당한 자의 곁에서 잘 먹는 자는 가장 불량한 소화상태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잃고 노래할 수 없는 자야말로 노래를 가장 잘 하는 자인지도 모른다. 차마 할 수 없는 일에 있어서는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능력이다. 때로는 아프고 슬퍼하는 것이 그의 건강함을 말해준다. 사씨(謝氏)는 위 구절에서 성인의 성정(性情)의 바름(正)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저 마음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공부할 수 있겠느냐고도 말한다.

능력이란 무엇일까. 또 무능력이란 무엇일까. 한 사람의 무능은 무슨 일인가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은 슬퍼할 줄도 모른다. 슬퍼하기 보다는 빨리 달라져 즐거운 상태가 되고자 한다. 살만해지고자 한다. 그런데 살 것 같다는 것은 뭘까. '먹고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씹어 삼키며 토하고 체하지 않는다. 천장은 위에 있고 바닥은 아래에 있다. 목소리가 나고 또 들린다. 잘도 걷는다.', 여러 방법으로 자기를 돌보아 저와 같은 건강 상태를 얻게 되었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먹고 마시는 일에 왕성하고 잘 걷고 잘 말하고… 이와 같은 모습으로 자기를 돌볼 수 있었다는 것이 언제나 그의 능력을 말해주는 것일까.  때로는 먹고 마시고 웃고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무능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때로는 그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건강하다는 것은 뭘까. 능력이 있다는 것은 또 뭘까. 아프고 일을 해내지 못하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이 도리어 한 사람의 진실함과 건강함을 보여줄 때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얼굴 빛이 밝지 않고 건강하지 못한 모습에서 때때로 한 사람의 능력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전체 1

  • 2016-09-09 10:45
    길게 썼는데 다 날라갔네-_- ..네 말대로 힘든 것을 패스하고 빨리 좋은 상태가 되고자 하고 그걸 바라는 건 무능이겠지만, 공자 이야기는 약간 긴가민가... 공자가 능력자라면 그건 그가 기쁘고 슬퍼해서라기보다 기쁘고 슬퍼하는 마음을 헤아려줄 줄 알아서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일상에서 일희일비하는 거랑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는데. 공부나 수행하지 않고도 인간은 자기 좋은 일에 기뻐하고 안 좋은 일에 화내거나 슬퍼하니까. 기쁘고 슬퍼하되 그걸 헤아릴 줄 알아 그 감정들에 마냥 휩쓸려가버리지 않는 것, 겪되 확대재생산하지 않는 것, 차라리 그게 능력일 것 같은데. 잘 모르지만 유교에서 말하는 '中'자도 이거랑 연관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암튼, 감정들에 휩쓸려가 지금을 놓치는 것이야말로 군자가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