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39. 안회가 보여주는 위협적인 삶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9-15 21:53
조회
540
39. 안회가 보여주는 위협적인 삶

안회(顔回)에 대한 구절 몇 개를 읽어보았다. 안회는 공자의 제자로 성은 안(顔), 자(字)는 자연(子淵)이다. 노(魯)나라 사람이며 그 아버지인 안로(顔路, 顔無繇) 역시 공자의 제자였다고 한다. <공자세가>(《사기》)에 따르면 안회는 공자보다 서른 살 어리다고 한다.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제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하는지를 물었는데 이 때에 공자는 안회를 말한다. 안회가 죽은 지금은 배움을 좋아하는 자가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스스로를 '배움을 좋아하는 자'라고 칭했던 공자가 유일하게 '배움을 좋아하는 자'라고 인정했던 자가 안회였던 것이다. 안회는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배움의 즐거움 혹은 도(道)를 따르는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다는 구절은 유명하다.

자공은 안회에 대하여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자’라고 했다. 다른 제자들도 인정할 만큼 안회는 뛰어났던 것 같지만 그렇다고 익히 생각하는 ‘똑똑이’의 모습은 아니다. 일단 안회는 말이 많지 않다. 적어도 내가 읽은 부분들에서는 그렇게 다가온다. 또, 자기에 대해 스승에게 점검받고 인정을 받고자 나서지 않는다. 배웠다며 특별한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다만 조용히 배운 것(仁)를 어기지 않았다.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子曰 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 不愚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안회와 종일 이야기를 하였는데 (내 말에 대하여) 어기는 것이 없어 (안회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함께 배우는 자리에서) 물러나 그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니 또한 깨우침에 족하였다. 회는 어리석지 않구나. (《논어》, <위정爲政>)

“亦足以發”이란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이 된다. 먼저, 안회가 스승의 가르침을 잘 이해해 그 모습이 일상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안회가 스승인 공자를 깨우치기에 족했다고 읽을 수도 있다. "나를 깨우치기에 족하였구나!"로 말이다. 어떤 경우든 확실한 것은 안회가 공식적인 배움의 자리에서든 아닌 자리에서든 배운 바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자는 깊고 순수하여(深潛純粹) 성인(聖人)의 단계가 몸에 이미 (부분적으로) 갖추어져 있었다. 그는 공자의 말씀을 들으면 묵묵히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닿는 곳마다 분명하여 (행위에) 저절로 조리가 있었다.”

안회만은 공자의 가르침을 묵묵히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 마음이 3개월간 인(仁)을 어기지 않는 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배운 것을 가만 받아들여 지니는 일은 배우는 자로서 기본 중 기본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안회만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배움을 좋아하는 자라고 칭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공자의 다른 제자들이라고 배움에 대한 열망이 없었을까. 배움에 대한 그들의 마음 역시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직 배운 바를 마음에 새기고 받아들이는 일에 힘쓰는 일은 쉽지 않다.  혈기가 앞서는 자가 있었다. 스승을 찾아 자기 자신을 확인받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자도 있었다. 배움 아닌 것이 배움을 이기는 일이 《논어》 곳곳에서 발견된다. 공자 역시 스스로가 잘하는 바에 대해 “묵묵하게 하여 (배운 것을 마음에) 기억하고, 배움에 싫증 내지 않고, 남을 가르치는 데 게으르지 않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안회는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배운 바를 늘 지니고자 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찍 죽었다. 이 일로 공자는 하늘이 자신을 버렸다며 통곡하기도 했다. 뛰어난 제자였다는 것만으로도 안회는 배우는 이에게 종종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안회에 대해 알게 되면 역시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는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배움에 힘썼다.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든 늘 자신이 배운 바를 잃지 않았다. 그는 성인의 경지에 가까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인이 된 것은 아니다.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도 없다. 높은 지위를 얻고 부귀를 누린 것도 물론 아니다. 살아 생전 무엇을 했나. 그는 그저 즐거이 배우고 또 배웠다. 그러다 일찍 죽었다. 그 뿐이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많고, 부귀영화든 뭐든 배움이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수단이 되는 이들에게 안회만큼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삶이 없다. 그가 보여주는 것만큼 위협적인 배움의 길이 또 없다. 배움을 좋아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게 하는 사람이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