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11월 18일 5회차 수업후기

작성자
김은순
작성일
2021-11-24 00:06
조회
241
* 1교시 : 명상 & 낭송

이번 명상 시간의 주제는 ‘자비’ 였다. 자비의 다른 표현은 ‘황금률’로 성인들도 그들의 방식대로 황금률을 설하셨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상대에게 가하지 말라.” -논어-


“남에게서 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성경-


“자신의 마음으로 남을 헤아려 남을 해치지도 말고 해치도록 시키지도 마라.” -법구경-


내가 보호 받고, 사랑 받고 싶은 것처럼 다른 모든 생명체들도 보호 받기를 원하고, 사랑 받기를 원하는 본능을 깊이 공감하는 것이 자비 수행의 목적일 것이다. 이번 주는 ‘나 ‘자신에 대한 자비의 마음을 실습해보았다. 자비심을 ‘나’에게로 향하게 하는 실습이다. 만물에게 갖는 자비심은 먼저 내가 나에게 자비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2교시 : 제24장 「사성제에 대한 고찰」, 1~13게송

반논리학인 중관 논리에서는 공(空)의 이치에 근거하여 모든 실체를 부정한다. 우리가 어떤 사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판단은 ‘긍정’, ‘부정’, ‘긍정하면서 부정’ 그리고 ‘긍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는’ 네 가지이다. 우리의 생각은 이 네 가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중관 논리는 이  네 가지 판단 각각에서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어 비판한다. 이런 4구 비판은 우리의 일상적 사고 방식을 허물어 뜨린다. 또한 ‘불멸 불생’, ‘부단 불상’, ‘불래 불거’, ‘불이 불일’의 팔불(八不)로 우리의 사유 구조를 해체시키는데, 양극단을 벗어난 관점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해석한다.

제24장의 주제는 ‘사성제의 고찰’로 대론자의 질문으로 시작된다(1~6게송). 대론자는 나가르주나에게 묻는다. “그대들의 주장대로 모든 것이 공이라면, 그리고 불생 불멸이라면 부처님의 가르침인 사성제는 성립하지 못한다.”는 오류를 제기한다. 그러니까 대론자의 말은, 모든 현상에 실체가 없고 또한 소멸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는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인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는 성립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일체 법이 공이라면, 세가지 보배인 부처님도 부처님의 가르침도, 승가도 없는 것이며, 선과 불선의 업 그리고 그 인과응보인 세속의 삶도 부정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사성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앎, 제거, 수습, 작증은 타당하지 않다.


<「쁘라산나빠다」, 제24장 사성제에 대한 고찰, 1071쪽>


   ‘귀경게’와 ‘발생에 대한 분석’에서 나가르주나는 ‘생겨나는 것도 없고 소멸하는 것도 없다’고 논증했었다. 이 말 대로라면 지혜가 생겨나거나 현실의 욕구 불만이나 괴로움도 없어질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고의 발생과 고의 소멸이 모두 존재해야 하는 사성제의 가르침은 성립할 수가 없다는 오류를 대론자는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나가르주나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대론자가 놓치고 있는 공성(空性)에 대해 말한다.

 

이제(二諦)의 구별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붓다의 가르침 속에 있는 깊은 진리를 알지 못한다.


<「쁘라산나빠다」, 제24장 사성제에 대한 고찰, 1103쪽>


세간 관습에 의존하지 않으면 승의제를 가르칠 수 없다.


승의제를 이해하지 않으면 열반에 도달할 수 없다.


<「쁘라산나빠다」, 제24장 사성제에 대한 고찰, 1105쪽>


나가르주나는 공의 원리를 이제(二諦)로 설명한다. 이제란 두 가지 진리라는 의미로 승의제와 세속제를 말한다. 승의제는 ‘분별을 떠난 불변의 본질적 가르침’이고 세속제는 우리의 ‘분별적 사고 방식에 맞춘 가르침’이다.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다’고 말하면서 시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가르침은 승의제의 가르침이고, ‘수행자는 오후에 식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시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가르침은 속제의 가르침이다. ‘선도 악도 없다’고 말하는 초윤리의 가르침은 승의제이고, ‘악을 행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윤리적 가르침은 세속제이다.” <김성철,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196~197쪽)

세속제인 언어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승의제를 말할 수 없다. 공은 만법에 자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다면 현상계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작용에 대해서도 ‘자성이 없다’는 논리로 합리화하고 회피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나가르주나는 경고한다. 이어지는 사성제에 대한 나가르주나의 논증은 다음 수업에 이어진다.

* 마지막 수업 후기를 마치며

죽을 때까지 나는 실체는 없지만 현상과 작용은 존재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한다. 마치 꿈처럼, 물속에 비친 달처럼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 같은 오감과 의식으로 살아가야한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의 논리를 어떻게 하면 숨쉬듯 자연스럽게 체화할 수 있을까! 「쁘라산나빠다」와 함께한 일 년의 시간이 마무리되어 간다. 이직도 용수 스님의 가르침이 잡히지는 않치만, 마지막 후기를 쓰다보니 중론 공부로 세상을 인식하는 범위는 넓어진 것 같아 공부한 보람을 느낀다. 공부를 만나게 해준 모든 인연에게 감사하며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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