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 절차탁마

절탁 서양 3학기 열 한 번째 시간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11-27 18:39
조회
215
“규율의 역사적 시기는 신체의 능력 신장이나 신체에 대한 구속의 강화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메커니즘 속에서 신체가 유용하면 유용할수록 더욱 신체를 복종적으로 만드는, 혹은 그 반대로, 복종하면 복종할수록 더욱 유용하게 하는 그러한 관계의 성립을 지향하는, 신체에 관한 하나의 기준이 생겨나게 되는 시기이다. (...) 규율은 (유용성이라는 경제적 관계에서 보았을 때) 신체의 힘을 증가시키고 (복종이라는 정치적 관계에서 보았을 때는) 동일한 그 힘을 감소시킨다. 간단히 말하면, 규율은 신체와 힘을 분리시킨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신체를 ‘소질’, ‘능력’으로 만들고 그 힘을 증대시키려 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에너지’와 그것으로부터 생길 수 있는 ‘위력’을 역전시켜 그것들을 엄한 복종관계로 만든다.”(푸코, 《감시와 처벌》, 나남, 217쪽)

지난 시간에는 ‘규율’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규율은 ‘순종적인 신체’를 만듭니다. 순종적인 신체란 유용한 동시에 복종하는 신체입니다. 쓸모 있게 된다는 것이 길들여진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무슨 말일까요? 물론 특정한 사회적 쓸모를 가지려면 그 조건에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은 거의 보편적인 사실일 것입니다. 푸코가 ‘규율’이라는 말로 지칭하고자 하는 특정한 시대적 현상은 이와는 다릅니다. 포인트는 규율적 주체에게서 훈육의 과정을 통하여 개발되는 힘이 그 자신으로부터 분리된다는 점입니다. 규율은 수도원으로부터 신체를 훈련시키는 다양한 기술들을 차용해왔으나, 그 목표는 더 이상 주체의 구원이 아니라 생산력이 높으면서도 관리하기 쉬운 부품과도 같은 존재들을 생산해내는 것입니다.

저는 역량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학기에 스피노자를 공부하면서 역량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했었죠. 스피노자는 존재할 수 있음이 곧 역량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존재의 역량은 그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결과를 생산해내냐 하는 데 달려 있지도 않고, 어떤 업무의 수행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줄 세운 결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실존 안에서 지속할 수 있음이 곧 역량이고, 따라서 인간이 거미를 밟아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이 거미보다 역량이 크다는 것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거미보다 역량이 크다면, 그것은 그가 거미보다 더 다양한 원인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하며 그것들을 입체적으로 해석해낼 수 있는 보다 유연하고 복잡한 신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는 어떤 존재가 스스로의 행위와 실존에 대해서 적합한 원인이 되는 만큼 자유롭고, 또 능동적이라는 것을 보도록 했습니다. 공부로 치자면 그것은, 얼마나 더 높은 성적을 내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배운 것을 더욱 입체적으로 자기화하느냐, 그로부터 자신이 놓인 조건을 이해하는 자기만의 관점을 구축해내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죠. 가장 효율적으로 주어진 문제의 해답을 찾는 지능은, 자신의 앎을 삶과 연관시키지 못하고 그리하여 관념을 존재의 역량으로 변환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없이 예속적인 정신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정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발휘하는 커다란 힘은, 사실 그들이 외부적 조건에 일방적으로 규정된 결과인 것과 비슷하죠.

지금 우리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규율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하나의 규범에 맞추어 신체를 길들이는 훈련은, 더 이상 주체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작용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더 이상 많은 수의 사람을 한 공간에 몰아넣고 일괄적으로 그들의 신체를 훈육하는 것이 일상의 중요한 풍경에 뿌리내릴 수 없게 된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궁금합니다. 그러나 쓸모 있게 될수록 더욱 예속적으로 된다는 역설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부단히 스스로를 계발하고 시간을 더욱 유용하게 활용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으며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데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실천들은 혹시 특정한 사회적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고 타인의 시선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과정인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우리 스스로의 역량이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해방하는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공지가 또 한참이나 늦어버렸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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