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세미나

2학기 마지막 강의

작성자
동글
작성일
2021-09-30 16:47
조회
152
사유의 이미지 두 번째 시간이다. 처음 오리엔테이션에서 채운샘은 3장은 쉽게 읽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1장과 2장을 더듬더듬 읽고 읽으며 쉬운 3장은 편안하게 잘 읽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여전히 어렵다. 3장을 읽으며 우리는 그동안 생각했던 사유와는 전혀 다른 사유를 만났다. 들뢰즈의 말에 따르면 사유는 사유하도록 강제 받는다. 이 말부터 칸트와 플라톤까지 사유에 대한 이론들까지~

 

들뢰즈는 질문과 문제를 구분한다. 질문(interrogation)은 묻는 사람이 말해주는 것은 진리라고 몇 가지를 전제하고서 던지는 것이 질문이다. 이를테면 1+1=? 여기서 질문은 무엇인가? 1+1은 왜 2가 되는지에 대해서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선 공통감은 전제하고 진리를 전수하듯 설명을 한다. 이 과정에서는 기껏 잘해야 모르는 자가 아는 자가 된다.

 

선문답을 보면 질문과 문제를 구분할 수 있다. 부처님이 뭡니까? 이렇게 묻는 것은 부처를 대답할 수 있는 무언가로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거기에 대한 답으로 스승이 부처는 000다란 전제를 붙여주면, 스승은 부처가 무엇인지 이미 아는 존재가 된다. 제자는 아직 모르는 자고, 스승은 아는 자가 된다. 부처에 대한 답을 말함으로써 답을 이미 아는 존재가 된다. 이것은 의미가 없다. 선문답에서 부처가 뭡니까? 이 물음은 스승은 제자가 답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고, 제자가 부처는 000이라는 대답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여기서 답은 제자 자신이 구하고, 스승은 전제를 깨줘야 한다. 제자의 질문을 깨기 위해서 질문을 무화시켜 버려야 한다. 그러니까 이상한 대답을 한다. 똥 막대기로 답을 하거나 할을 하거나 몽둥이 30대를 날린다. 자기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맞고 알기도 한다. 그것도 아는 제자나 때린다. 스승은 아무나 때리지 않는다. 맞아서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나 때린다.

 

“질문은 어떤 공동체의 틀 안에서 문제와 물음들을 분해하고 재구성하는데, 이런 재구성은 경험적 공통의식의 명제들, 다시 말해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어떤 단순한 독사에 따라 이루어진다.”(348)

자기가 문제를 던지는 방식을 보면 무엇을 전제하는지 알 수 있다. 문제를 던진다는 것은 내가 어떤 사안을 어떤 것과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는가? 어떤 것과의 관계 속에서 계열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1은 왜 2인지는 아무런 계열화가 없다. 내가 내 질문을 보고 질문의 전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질문을 다른 것과 관계시키든 또 다른 지평 속에서 바라보든,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이제 그 의미나 문제가 이 명제 속에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어떻게 구조화하느가 중요하다. 문제를 잘 만들면 거기에 해로 가는 길이 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결론을 정하지 않아도 어딘가로 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글을 쓸 때 문제는 만들지 않고, 종종 결론만 만들어 논다. 내가 문제를 풀다 보니 어디에서 새로운 질문이 생기는지? 새로운 질문 때문에 무엇을 공부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공부에 답은 없다. 대답은 우리를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다른 관점에서 볼 것인가가 문제다.

 

“문제들을 만드는 것은 바로 기호들이고, ~무엇보다 먼저 기호 안에서 이루어지는 감성의 역설적 사용은 이념들에 의존하고~ 배움은 문제(이념)의 객체성과 마주하여 일어나는 주관적 활동들에 부합하는 이름인”(362) 『차이와 반복』을 읽으며 반복되는 가운데 차이를 포착하며 문제에서 배움으로
전체 2

  • 2021-10-02 09:42
    늦어도 매우 늦게 올라온 후기를 보고 당황스럽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후기를 보면서 가라앉게 됐네요. 차이와 반복을 읽고, 정리 강의를 들으면서 '사유'라는 키워드가 계속 남네요. 질문을 던지고 수용하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문제의식을 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도 곱씹게 되고요. 정말 상식을 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그만큼 상식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럴듯한 단어로 '사유'를 쓰는 게 아니라 들뢰즈적 의미의 '사유'를 해야 하는데 말이죠? ㅎㅎ 그나저나 다음에는 이렇게 늦게 올리시면 안 됩니다!

  • 2021-10-04 20:07
    문제를 어떻게 구조화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