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뉴비기너스 시즌 3 : 6주차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9-29 00:27
조회
144
지난 시간에는 《국가》 1, 2권을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1권에서는 우선 도입부에 나오는 케팔로스 옹의 이야기에 관해 토론을 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 아데이만토스는 축제날 피레우스 항 근처를 지나다 폴레마르코스와 케팔로스를 비롯한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붙잡힙니다. 그래서 그들과 한바탕 이야기 잔치를 벌이게 되는데요, 우선 소크라테스는 상당한 자산가인 케팔로스 노인에게 노년에 관해, 그리고 재산이 노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질문합니다. 여기서 그의 대답이 흥미롭습니다. 노년도 재산도 그 자체로는 행복이나 불행의 원인이 아니다, 행복과 불행의 진정한 원인은 바로 삶의 방식에 있다, 라고 케팔로스는 대답합니다. 사람들에게 노령이 불행으로 여겨지는 것은, 늙음이 그 자체로 부정할 만한 것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절제를 배우지 못하고 젊은 시절에 누리던 것과 똑같은 기쁨을 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만약 절도 있는 즐거움을 즐길 줄 아는 자에게, 노년은 과도한 욕망의 지배로부터 풀려난 더 없이 행복한 삶의 시기가 될 수 있다고 케팔로스는 말합니다. 저 역시 나이 들기를 피할 수 없는 이상, 새겨둘 만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케팔로스는 돈에 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정중하게) 케팔로스 선생이 노령을 긍정할 수 있었던 건 혹시 많은 재산 덕분이 아닐지 질문합니다. 그러자 케팔로스는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가난하고서는 노령을 썩 수월하게 견디어 내지 못하겠지만, 훌륭하지 못한 사람이 부유하다고 해서 결코 쉬 자족하게 되지 못할 것”(60쪽)이라고 정리합니다. 그렇죠. 사실 너무나 자명한 말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돈에 지나치게 커다란 환상을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노후의 대책을 주로 돈과 연관시킵니다. 은퇴 후부터 죽을 때까지 생활비가 얼마 들 것이고, 병원비는 얼마 정도 생각해야 하고, 또 뭐가 어쩌고저쩌고. 물론 돈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정’을 돈과 연관시키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자신의 손으로 마련하지 않고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관계 역량을 평가절하하게 됩니다. 동시에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우리의 삶을 뒤흔들 수 있는 다른 많은 위험들에 대해 스스로를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키게 되죠. 가령 나이가 들어서도 스스로의 정념을 다스릴 줄 모른다면, 그런 사람은 돈이 얼마 있든 불행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노년의 문제를 경제적 생존과 동일시하는 우리,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는 이 사회적 조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네요. 도대체 우리는, 우리 사회는 삶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1권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크라테스의 기술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통치 행위는 통치자들 자신의 편익을 위한 것이라는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에 맞서, 소크라테스는 모든 다스림은 그것이 다스림인 한, 다스림을 받고 돌봄을 받는 쪽의 편익에 기여한다고 말합니다(98쪽).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약간 궤변처럼 들리는 논변을 제시합니다. 즉 어떤 다스림이 다스림을 받는 자가 아니라 다스리는 자 자신의 편익에 기여한다면,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보수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요. 가령 의술은 의사의 편익이 아니라 환자의 편익에 기여하므로, 이익을 얻은 환자는 보수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죠. 어쨌든 핵심은 어떤 지식이나 기술도 다른 이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제게 흥미롭게 다가온 이유는, 아마도 지금 우리가 모든 지식과 기술을, 그것이 자신과 타인에게 가져다주는 고유한 이로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벌어올 수 있는 보수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실제로 그 기술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이 무엇인지와 무관하게 그것이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보수의 크기에 따라 상이한 기술들과 지식들을 줄 세우기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어떤 기술을 배우거나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충분히 긍정하고 존중하는 일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 다음 시간에는 《국가》 3, 4권을 읽습니다. 간식은 태미샘께서 준비해주시기로 했구요. 그럼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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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9 16:29
    ' 인간이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관계의 역량'이란 구절이 머리와 몸통을 훅치고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연탄재 발로차지마라 너는 남에게 그만큼 뜨거웠던 적이 있었느냐?'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물론 저에 대한 돌아봄입니다.)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그리고 서로 서로의 온기가 필요한 늦가을의 초입인듯합니다 .....
    낼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