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뉴비기너스 시즌 3/ 9주차 공지/ 동굴의 비유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10-18 17:19
조회
599


지난 시간에는 드디어(!)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나오는 《국가》 7권을 읽었습니다. 동굴의 비유는 몹시 강렬합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경험하며 살아가는 세계가, 이 생생하고 현실적인 세계가 사실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주 실감나는 비유를 통하여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은 충격과 영감을 제공했을 것 같습니다. 동굴의 막다른 곳을 향해 목과 몸이 고정된 죄수들이 결박되어 있습니다. 죄수들 뒤로는 낮은 담이 놓여 있고 다양한 형상의 인형이나 조각 같은 것들을 든 사람들이 담장 뒤를 오갑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불이 놓여 있어서 동굴의 막다른 곳에 온갖 형상들의 그림자들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플라톤이 생각하는 대중들이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참이라고 믿고 있는 세계는 일종의 그림자이고 허상이다! 이건 많은 철학자들이 공통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요즘 화요일마다 영어 세미나에서 ‘데이비드 봄의 삶과 사상’이라는 다큐를 보고 있는데, 거기서도 양자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의 의식이 포착하는 것은 실제 세계의 표면적 차원, 전체적 운동의 한 국면일 따름이라고 합니다. 플라톤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보기에 끊임없이 유동하는 우리의 감각은 세계를 매우 부분적으로, 왜곡된 방식으로만 포착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부분적이고 부적합한 감각적 경험들을 토대로 의견(doxa)을 형성하는데, 이러한 의견은 원리나 본질에 대한 이해를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아무런 근거도 없이 순전히 자신의 치우친 경험적 인식에 입각해 만들어진 편파적인 결론일 따름입니다. 감각, 경험, 의견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 많은 문제들이 생길 것입니다. 우선 자신의 감각으로 만들어낸 세계에 스스로 갇혀서 감각적 대상들에 삶의 중심을 빼앗기게 되겠죠. 또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억견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에, 사람들은 서로 기질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무한히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에 사람들은 ‘다수에 의한 지배’라는 가장 수준이 낮은 정치체제에 예속되고 말 것입니다. ‘철학자가 통치를 하거나 통치자가 철학을 하지 않는 한, 인간들 사이에서 나쁜 것의 종식은 없다!’라고 했던 플라톤의 심정이, 살짝 이해가 갑니다.

제가 동굴의 비유에서 주목했던 것은, 인식의 과정이 곧 존재의 해방에 이르는 과정과 일치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비유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인식의 과정은 우선 몸을 돌리고, 자기가 있던 익숙한 자리로부터 벗어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결국에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변환되는―어떤 한 존재의 총체적 변환의 과정으로 나타납니다. 우선 상식, 즉 집단 사이에서 통용되는 관습적 사고로부터 벗어나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동굴의 비유로 치자면, 여전히 그림자가 참된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추구하는 동료 죄수들로부터 단절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감각적 경험마저도 부정하는 낯선 인식의 차원에 스스로를 적응시키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식하는 자는 전혀 다른 눈으로,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경험적이고 표면적인 차원을 넘어서 어떤 근원적인 차원에 대한 인식을 시도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게 되는 존재와 관점의 전환 같은 것을 묘사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플라톤이 이렇게 인식을 추구하여 동굴 밖으로 나간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건 너무 중요합니다. 그 깨달음이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식 안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면 그것은 독단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깨달음이 단순히 그 사람의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서 못한다면 그것을 진정한 깨달음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플라톤 철학은 얼핏 이상주의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감각적인 세계 너머의 참된 세계를 말하니까요. 이 세계를 버리고 배후의 참된 세계로 가면, 우리는 헛된 욕구에 갈팡질팡할 필요도 없고 편협한 의견들을 두고 다툴 필요도 없게 되는 걸까? 그러나 플라톤이 이상주의적이지 않은 것은, 그가 끝까지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확인됩니다. 그는 끝내 디온의 초대를 받아들였고, 디오니시오스가 철학에 대한 열정이 생겼다는 말에 (거짓일 것을 알면서도) 시라쿠사로 향합니다. 결국 플라톤은 동굴 안쪽이 자신이 살아야 할 세계이고, 죄수들이 자신이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임을 잊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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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24 14:27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세미나 시간에 나누었던 내용들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플라톤이 시라쿠사로 간 까닭도 설득력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