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뉴비기너스 시즌 4/ 세 번째 시간 공지/ 앎이란 무엇인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11-30 20:20
조회
178
지난 시간에는 《테아이테토스》를 끝까지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지지난주에 읽었던 책의 전반부에서, 소크라테스는 ‘앎이란 감각적 지각이다’라는 테아이테토스의 가설을 반박했습니다. 간단히 줄이자면 앎이란 존재에 대해 말해주어야 하는 것인데, 감각은 변화만을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죠. 이번에는 지식이 참된 판단이라는 주장, 그리고 설명이 수반된 참된 판단이라는 주장이 검토됩니다. 결론은 이 두 가지 모두 진정한 의미의 ‘앎’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참된 판단은 앎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판단착오는 무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식(또는 지각) 사이의 혼동에서 오는 것이며 따라서 참된 판단과 거짓된 판단은 각각 앎과 무지에 대응하지 않습니다. 또한 설명을 수반한 참된 판단이 곧 앎이라는 주장도 만족스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참된 설명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입니다. ‘설명’이라고 하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대략 세 가지입니다. ①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것. ② 대상을 이루는 요소들을 모두 나열하는 것 ③ 그 대상을 다른 것들과 구별해주는 차별점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 그런데 세 가지 모두는 각각의 이유로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1번은 대상의 본질을 포착해내지 못합니다. 2번은 대상을 이루는 요소들과 그 요소들을 이루는 요소들, 또 그 요소들을 이루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들에까지 이르게 되면 결국 설명 자체가 불가능한 지점에 이르게 된다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3번은 비교적 그럴듯해 보이지만, ‘판단’이란 그 자체로 대상을 다른 것들과 구분해주는 차이를 인식하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에, 이 경우 판단에 설명을 덧붙인다는 것은 곧 판단 자체에 수반되는 것을 판단에 덧붙이는 일이 되기 때문에 모순에 빠집니다.

소크라테스와 테아이테토스의 토론은 여기에서 멈춥니다. 감각도, 판단도, 설명도 아니다! 저는 소크라테스가 왜 앎에 대한 위와 같은 정의들에 만족할 수 없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앎이 곧 감각적 지각이라고 하면, 우리는 상대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참된 판단이라고 하면 인식은 결국 잘못된 판단을 교정하는 것, 관념과 그 대상을 정확하게 짝짓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설명이 수반된 참된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인식은 대상들을 분별하고 그 요소들을 나열하는 것 이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경우들에서 앎은 윤리적 문제와 괴리되어버린다는 게 아니었을까요? 앎을 추구하는 것, 배우는 것,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단지 자신의 감각적 지각을 재확인하는 것이거나, 올바른 판단을 구하는 것이거나, 참된 설명을 얻는 것일 따름이라면 철학은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이 문제와 관련되어 떠오른 들뢰즈의 구절을 인용하며 마무리 합니다.

“초등학교의 어린이가 아니고서, 누가 3+2=6이라고 말하겠는가? 근시나 넋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 누가 [테오도로스를 보고서] 〈테아이테토스, 안녕〉이라고 말하겠는가? 성장한, 부지런한 사유는 다른 적들, 훨씬 심오한 부정 상태들을 갖는다. 어리석음은 사유 그 자체의 구조이다. 그것은 실수하는 방식이 아니며, 권리상 사유 속에서의 무의미를 표현한다. 어리석음은 오류도 아니며 오류의 연속도 아니다. 사람들은 전적으로 진리로 이루어진 바보 같은 사유들, 바보 같은 담론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진리들은 저속하고, 납처럼 무거운 저급한 영혼의 진리들이다. 어리석음, 그리고 보다 심오하게 말해서 그것이 징후인 것은 저속한 사유 방식이다. 반응적 힘들에 의해서 지배된 어떤 정신 상태를 권리상 표현하는 바가 그렇다. 오류 속에서뿐 아니라, 진리 속에서, 어리석은 사유는 단지 가장 저속한 것, 노예의 승리를 표현하는 저속한 오류들, 어리석은 사유들, 보잘것없는 가치들의 지배나 기존 질서의 권력만을 발견한다.”(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 민음사, 191쪽)

다음 시간에는 《소피스테스/정치가》(서광사)를 134쪽까지 읽고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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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01 06:24
    '성장한, 부지런한 사유는 다른 적들, 훨씬 심오한 부정 상태들을 갖는다.' 고 한다면 사유를 어떻게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하는 갈등이 생깁니다. 그리고 간식은 제 차례입니당~~~